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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가 먹고픈 날

<매일 만보 걷는 남자> 힘들 땐 수제비를 먹었다

by 이춘노

우울한 날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수제비를 먹고 싶었다. 그렇게 당연한 듯 나는 8월 말, 어느 힘든 시기에 수제비를 먹으로 단골집에 갔었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서 얼큰한 손수제비를 주문했는데, 당분간은 콩국수를 판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었다. 가장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 단골집에서 수제비조차 먹지 못하니, 마음이 더 요동치던 8월이 흘러서 막판에 뜨거웠던 9월이 지났다. 그리고 낙엽이 지고, 추석이라는 명절이 지나고서야 다시금 수제비집을 찾았다.


내가 가는 단골집은 남원에서 수제비를 파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과거 대강면에서 근무하기 이전부터 차를 타고 찾아가던 <큰집해물칼국수>. 그 오랜 인연 덕분인지. 주방에서 조리하던 사장님도 어깨를 툭 치면서, 아는 척을 해주셨다. 간단한 근황을 묻고는 살짝 어색한 격려를 받고는 오늘은 맑은 해물 손수제비를 주문했다.

10시 반이면 참 이른 시간.

흔히 말하는 오픈런이었다. 원래는 사무실에 가서 일을 좀 하려고 했는데, 9월 내내 나를 괴롭히던 두피염증에 이른 아침에 피부과 진료를 기다리며, 앉은자리에서 50 페이지 책을 읽고 처방을 받으면서 잠을 자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꾸중을 들었다. 역시 만병의 근원은 결국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닮을 얻었다.

생각해 보니, 8월 말부터 일이 쌓였고, 9월에는 몰린 업무에 정신이 없었음에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고,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는 걷고, 밤에는 생각하다 심야에는 잠깐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47일 정도 이어지다 보니, 몸에서 아프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 지는 꽤 되었다.

그런 나에게 오늘은 포상이라도 하듯이 사무실을 가지 않고, 바로 이른 아침 겸 점심으로 빨간 국물의 수제비가 아니라 맑은 수제비를 선물해 줬다.

사실 나는 매운 국물을 좋아한다. 땀도 많은 남자가 이마에서 흘리는 땀을 휴지로 닦으면서도 얼큰한 국물을 포기하기 힘들었다. 특히나 단골집에서 얼큰 해물손수제비와 만두 하나를 시켜서 마지막에 먹는 맛으로 퇴근 후에도 종종 찾았다. 평소에는 곱빼기로 시켜서 배가 터지게 먹었을 것을 매운 것도 배부름도 만두의 감칠맛도 포기했다.

그냥 순수하게 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어릴 적에 나는 아프거나 힘들면 수제비를 챙겨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가 정성껏 반죽한 수제비를 멸치와 다시다로 맛을 낸 국물에 듬성듬성 썰어 놓은 감자와 파와 고추만으로도 배가 터지게 먹었던 추억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야 감자 수제비 말고 해물수제비나 얼큰한 맛을 찾아낸 것이지. 본래의 맛은 그저 뽀얀 국물에 시원한 수제비였으니까. 지금의 상황에는 맑은 수제비가 어울렸다.


사장님의 위로가 담겼기에 그럴까?

맑은 국물에 해물의 시원함은 그리 과하지 않은 담백한 바다 맛이었다. 홍합과 조개를 까먹으면서 쫀득한 수제비를 하나하나 마시듯이 씹었다. 그리고 배추김치 한입과 단무지 무침 하나. 그렇게 아무도 없는 홀에서 혼자 온 손님의 먹방을 찍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빈그릇만 남기고 자리를 일어났다. 자극적인 맛을 포기한 내 선택은 맞았던 것일까? 그냥 시내로 돌아가려던 길을 무작정 곡성으로 차를 몰았다. 차에는 리메이크 발라드 모음을 틀어 놓고는 날씨가 너무 좋은 오늘 달려봤다.

도착한 곳은 내가 종종 즐겨 찾는 곡성 기차마을 근처의 카페.


헤이즐럿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켜 놓고는 책을 읽거나, 습작 노트에 감정을 끄적끄적하는 나만의 안식처였다. 오늘은 아무래도 연휴의 마지막 주말이기에 가족 손님이 많았는데, 커피 하나를 주문하고는 2019년부터 써오던 노트의 마지막 장을 조심스럽게 펜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적어 나갔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7번의 인사이동. 그 사이에 많은 인연도 사건도 있었다. 그런 내 감정을 한 페이지씩 담아 온 노트가 신기하게 뭔가 결심을 하는 시점에 마무리가 된다는 우연. 흘려 쓴 나의 감정을 담다가 잠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이제는 청년이 아닌 중년의 마음으로 다음 노트를 이어 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살짝 묘해졌다.


이 노트에 담긴 나는 우울했고, 고통스러운 일에 흔들렸고, 현실에 좌절하기도 했고, 도망치고도 했고, 기쁨을 함께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아직도 홀로서기를 못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그것마저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의 내 중년으로 달려가는 삶에서 화려하고, 멋진 삶은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과거의 삶보다 더 나은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도 못하지만, 아저씨답게 슬쩍 넘어가 보려 한다.


그래도 힘들다 하면서도 걷기 시작한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나 비가 온다는 탓으로 운동을 안 했는데, 마음을 덜어내고자 비가 오는 날에도 걷는 내가 참 대견하다. 그리고 그것 하나로 내 미래의 모습도 담담하게 그려볼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렇게 매일 만보를 걷는다면, 뭔가 변하겠지.' 그런 인생의 스케치를 그릴 수 있는 것도 이미 만보를 걷는 것이 루틴이 되어버린 것이 클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걸을 수 있는 것은 힘들면 수제비를 꼭 챙겨 먹는 변하지 않는 마음의 습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살짝 기대해 본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중년이 되어가는, 그렇게 아저씨가 된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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