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노량진 <형제상회>에서 모둠회로 인생을 논하다

by 이춘노

"인생이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언제는 우리 뜻대로 잘 풀렸던 적이 있었나?"


"하긴..."


수십 년을 함께 각자의 삶을 지켜봐 온 친구와 노량진 수산시장의 익숙한 강변식당에서 소주잔을 부딪히며 했던 말이다. 마음이 번잡한 순간에는 밤기차를 타고, 노량진에 와서 주말 낮에 친구를 부르면 함께 모둠회에 소주를 마시고, 사육신 공원에서 한강을 바라보던 십 수년이 지난 일정을 보낸 우리였다.


나와 친구는 성별이 남자이고, 같은 고향이며, 의경이라는 군 복무 과정도 같았고, 초중고등학교를 같은 곳에 나온 이른바 절친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절친의 조건에 부합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의외로 이러한 조건에 중복되는 인연들은 더 있을 테니까. 그러다 찾은 조건이 일관된 루틴 아닐지. 계획적인 삶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에 흐트러지지 않는 행동과 패턴은 지겨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남들이 뭐라 하건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아마도 그것은 장점이기도 했지만, 본인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분명 단점이기도 했다. 그건 확실히 청춘이라 불리던 20대와 30대에 우리에겐 고통이었다. 남들처럼 쿨하게 넘기면 될 것을 고민하는 것은 자칫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여지는 충분했으니까. 돌아보면 왜 그렇게 그러한 사소한 것에 민감했던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처음 친구와의 대화처럼 어제도 인생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평소에 나라면, 금요일 일과를 마치고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는 자정이 되기 직전에 찜질방을 도착한다. 그리고 사우나를 즐기고, 오전에 종로의 서점을 구경하고, 노량진에서 친구를 만나서 모둠회에 소주를 마시고는 남자들의 수다를 떨다가 용산에서 춘식이 물건을 하나 사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 절친의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를 받은 것이다. 나는 영풍문고를 가기 위한 버스에 타고 있었고, 일정을 급하게 조정했다. 친구와의 일정을 급하게 당기고, 함께 내려갈 기차표를 예매했다. 빈소는 오후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은 기존 일정을 빠르게 앞당긴 상태로 천안으로 가야 했다.

원래는 4시간의 여유가 2시간으로 줄어들자. 나는 세 곳을 갈 서점을 두 곳으로 압축했다. 새로운 신간과 올해 읽을만한 책을 빠르게 체크하고는 종로서적에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일정을 정리했다. 여유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급하게 한 것치고는 많은 책을 골라놨다. 앉은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책을 4권 주문하고는 천안에서 고향으로 내려갈 기차표를 예매하는데, 역시나 직통은 매진이었다. 그래서 익산에서 환승하는 기차를 찾아 예매하고는 노량진으로 향했다.

수십 년은 함께 지낸 절친과의 매번 같은 식사에서 질릴 법도 한 메뉴 선정이지만, 오히려 난 편하고 좋았다. 묻고 따질 일도 없이 가장 좋은 모둠회를 골랐고, <형제상회>에서 추천한 식당이 <강변식당>이라 더 반가웠다. 초창기 신 노량진 수산시장이 생기고 제법 많이 갔던 식당이었고, 다른 것보다 이곳 라면사리는 신라면이 선택이 가능해서 종종 가던 곳이다.

어차피 천안에 가서도 소주를 마실테니까. 적당히 마시자고 말은 했지만, 좋은 안주에 어쩔 수 없이 소주 2병을 마시고 있었다. 각자의 인생의 변곡점에서 타인에게는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답답함을 이야기하는 순간은 아마도 익숙한 이곳 노량진에서가 유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명절을 앞두고 내가 서울을 올라온 것은 친구의 우려를 풀어주기 위한 일정이었다. 갑자기 브런치 글을 올리지 않는다는 말은 나를 잘 아는 지인들에게는 꽤나 우려스러운 일이니까. 혼자 사는, 그리고 우울증이 있어서 휴직도 했던, 최근 심리적으로 타격이 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일은 아닐 테니까.

우린 천안 가는 기차 시간인 2시 반까지 툭툭 서로의 마음에 담은 말을 쏟아 냈다. 나도 친구와 있을 때는 연기가 아니라 철없는 중학교 까까머리 소년이 되어서 주절거렸다. 이미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 반백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기차 타고 어디 가는 건 참 오랜만이다."


사실이 그랬다. 어릴 때는 서울도 한 번 같이 가겠다고 무궁화호도 함께 타고, 무작정 전주도 기차로 타고 가기도 했는데, 각자 멀리 살다 보니 기차역에서는 만났어도 둘이서 어딜 가는 것은 기억에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의 우리는 젊어서 가는 내내 수다를 떨었지만, 지금은 술기운에 피곤해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미안하다 사랑한다> 음악을 듣고 있었다.


2004년쯤인가? 제대 후에 복학을 준비하면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자주 듣던 노래. 개인적으로는 <눈의 꽃> 보다는 정재욱의 <처음 그때로>라는 음악을 좋아했다. 당시에는 너무나 외로웠을 주인공과 귀여운 임수정 때문에 봤던 드라마였지만, 힘든 시기에 이 음악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 것은 이유를 모르겠다.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장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감정 이입이 되어버려서 한동안 듣지 않았던 노래. 요즘 그 음악을 다시 꺼내 듣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친구와 만나고, 다시금 소주를 마셨다. 사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소주를 마시긴 처음 같았다. 매번 차를 가져와야 했고, 굳이 소주를 마셔야 할 이유가 없어서 밥과 국, 수육만 먹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술이 필요했다. 어쩐지 남일 같지 않은 불안감. 슬슬 친구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라서 혼자인 나도 그런 일은 생길 테니까.

오래전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었다. 간암 수술을 받고, 뜬금없이 본인이 죽으면 외가에 누구에게 연락해 달라는 정리를 하시다가 나는 직장에는 문상을 거절하겠다고 말했었다. 형제도 없이 솔로인 내가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촐하게 장례를 진행할 것이며, 화장을 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덤덤하게 했던 것이 소주를 마시며 생각났다.

한동안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부모님을 마지막까지 지켜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그리고 아직 죽지 못해서 사는 이유도 그게 가장 크니까. 언젠가는 생길 일이라서 두렵긴 해도 소주를 넘기고는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잊어 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친구가 천안아산역을 가서는 호두과자 한 상자를 사준다.


"이거 먹고 푹 쉬어."


"너무 많은데?"


"그래도 가져가 그리고 너 마실 양주는 설 명절에 줄 테니까. 담에 보자."


그래서 그럴까. 기차에서 호두과자를 하나하나 먹으며 <처음 그때로>를 듣다가 눈가가 촉촉해졌다. 사람들이 없는 틈에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 봤다. 호두과자 먹으며 기차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마흔이 넘어서 감수성이 풍부해졌을까? 이 주책은 남원역을 도착하면서 멈췄다.


아마도 그날은 눈병이 난 것 아닐지.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갔나 보다.

인생도 내 맘대로 안되지만, 가끔은 눈물도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