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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pr 11. 2020

보고 싶은 아빠

보호자가 된 의료인

#
추석이다.
온 가족이 함께 아빠를 보러 간다.
시완이한테
- 엄마가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싶다.
라고 말하니
시완이가
- 나도 김기치 할아버지 보고싶다.
라고 말한다.

그 말에 코 끝이 찡했다.
내가 울면 시완이가 같이 울 것 같아서
순간 다른 생각을 해버렸다.


#
내가 근무하던 신경외과에는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임상에서 환자들보다 보호자들과 많은 라포(rapport)를 쌓았다.

그때 나는 보호자들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다.
환자를 간호하기 위해 무너져버린 그들의 삶에 많은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아빠를 간호하면서 알았다.

그래도 제일 힘든 사람은 환자라는 것을 말이다.



#
나는 한때
열심히 재활을 받지 않는 아빠를,
온몸이 아프다며 짜증 내던 아빠를,
늘 옆에서 간호하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던 아빠를
원망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던 날,
평소에 안면이 있던 교수님이 아빠의 지정의가 되셨는데 그 교수님께서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 아버님이 참을성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보통 이 상황까지 견디시기 힘드셨을 텐데...
다음에는 좀 더 빨리 모시고 와요.
아버님이 힘든 내색을 하는 분이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그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 내가 너무 괘씸해서

내가
너무 못된 딸이라
너무 나쁜 간호사라



#
그 뒤로 나는 아빠에게 잘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아픔을 잊고자
내 수준의 최선을 다해놓고 나는 꽤 효도한 딸이라 자찬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뒤로도
아빠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 날들이 있었고
아빠 옆에 오래 있는 게 힘들었던 날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부족함 가득이었다.



#
아빠의 인생이 조금 더 찬란하기를 바랐던 철부지 같던 시절이 있었다.
아빠가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면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더라면
나의 인생이 조금 더 멋져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

나의 부족함 들을 마주하고는 부모의 능력 뒤로 숨고 싶어 했던 찌질한 20살 어른이 내 인생에 있었다.



#
아빠는 그런 내 마음을 다 아셨을까?
그 부족하고 못난 마음들을...

엄마가 늘 병환 중에 있던 아빠에게
보고 싶은 사람은 없는지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으셨는데
그때마다 아무 말씀 없이 고개만 저으시던 아빠가
어느 날 입을 여셨다

- 소이 주이에게 제일 미안하지.



#
그것이 나에게는 아빠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말속에 숨겨진 많은 의미를 알고 있다.

아빠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 많이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희에게 많은 것을 받아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말이 정말 많이 사랑해서 나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아빠의 미안한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아빠의 마지막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며 새삼 가슴 저리게 깨달았다.



#
아빠는 알고 있었다.
부족하고 못난 내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까지도 사랑해주셨다.
그런 마음을 갖는 모자란 딸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당신이라며 늘 낮추며
미안해하셨다.

그렇게 부족한 내 마음 하나까지 아빠는 모두 품어주셨다.


#
부족한 딸이 부모가 되었다.
시완이와 유하는 나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이지만
혹 나의 아이들이 나처럼 부족한 마음을 갖는 순간이 내게도 오면
아빠가 보여주신 인자함과 포용력을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딸로서는 부족했지만
부모로서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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