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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May 13. 2020

편지

보호자가 된 의료인

#
아빠
그곳은 좋아요?
정말 좋아요?
고통과 슬픔 없이 편안하세요?


#
아빠
왜 그렇게 빨리 가셨어요?
우리 곁에 조금만 더 있어주시지...
우리 사는 거 조금만 더 지켜봐 주시지...
우리랑 조금만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게 해 주시지...
왜 그렇게 빨리 가버리셨어요...


#
아빠
그곳에서 우리 사는 모습 지켜보고 계세요?
시완이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말할 때 항상 아빠 이름 말해요.
유하는 아빠 사진 보면 오래 그 자리에 머물면서 옹알이를 해요.
아빠 이 모습 다 보고 계시죠?
아빠가 제일 좋아하셨을 모습일 텐데, 다 보고 계시겠죠?



#
아빠
요즈음 시완이가 한동안 미니 특공대라는 TV 프로그램에 빠졌었어요.
맨날 미니 특공대를 보여달라는 시완이를 보며 이걸 계속 보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즈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심이 없어졌어요.
그렇게 그냥 다 때가 있는 것을...
저는 사실 조금 전전긍긍하기도 했거든요.

나는 가끔 아빠가 내게 무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루 종일 게임하는 나를 지켜보셨을 때
성적이 곤두박질쳐도 공부하라는 말 한마디 안 하셨을 때
늘 취해 들어오는 나를 눈감아 주셨을 때

나는 아빠가 나의 때를 기다려 주신 거라는 걸
그때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지금 깨달아가요.



#
아빠
시간이라는 건 참...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똑같이 정직하게 흐르네요.
벌써 1년이 되어가요.
그곳에서 엄마 보고 계세요?
아빠를 많이 그리워해요.
엄마에게는 아빠가 제일이었어요.
엄마도 요즈음 새삼 그 사실을 더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아요.
엄마를 지켜봐 주세요.
너무 많이 야위셔서 걱정이에요.



#
아빠
왜 이리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들이 많이 생각날까요?
나는 아빠 닮아서 자신감 충만하고
늘 자기애가 강하고
잘한 일 자랑하며 당당한 아이인데
아빠를 보내고 나서 나는 아빠에게 그럴 수 없음을 알았어요.
아빠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 전에는 난 내가 잘한 줄로만 알고...
아빠가 가시고 나서야 왜, 이제야 왜 내가 이리 작아지고 못 해 드린 것들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플까요.
아빠 미안해요.
내가 많이 부족했어요.



#
아빠
보고 싶어요.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주이가 아빠를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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