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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Sep 28. 2024

나아가기

더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이 슬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과 감사와 즐거움을 발견하며 우리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어가자고 우리 자신 스스로를 격려했다.




아빠는 입원 치료 중 계속 퇴원을 원하셨다. 낯선 병실 환경을 늘 불편하게 생각하셨다. 집에서 좀 쉬면 더 나아질 것 같다고 늘 말씀하셨다. 아빠의 담당 의사와 우리 가족 모두는 아빠의 퇴원을 반대했지만 결국 아빠를 설득하지 못했고 아빠가 원하시는 대로 병원에서 퇴원하게 됐다. 나는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많은 환자들이 좀 더 오랜 기간 입원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상급종합병원의 현실 상 급성기 치료가 끝나면 퇴원의 절차를 밟게 되기에 입원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입원기간의 연장은 때론 환자에게 굉장히 간절한 바람이지만 의료시스템의 현실 앞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였다. 늘 그런 대상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우리 가족은 그 반대의 경우가 되었다. 담당 의사가 입원기간의 연장이 필요하다고 하는 데도 퇴원을 한 환자와 가족이 되었다. 퇴원을 하면서 아빠의 바람대로 우리 모두는 집으로 가면 친숙한 환경에서 아빠가 기운도 차리고 컨디션이 더 호전될 수도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 좋아질 줄 알았던 아빠의 컨디션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그날 이후 아빠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병원에 계실 때는 보조기를 착용하고 타인의 부축을 받거나 의료용 부행기를 잡고 잠시 잠깐 서 계실 수 있었는데 집에 오고 나서는 투 명의 성인이 부축해도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셨다. 그렇게 아빠는 침대 밖을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고 아빠의 컨디션이 점점 나빠지면서 우리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엄마와 나 언니는 교대로 아빠의 곁을 지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모두가 자신의 시간 일정 부분을 아빠의 간병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전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행했던 일들을 지금은 쉬이 할 수 없게 됐다.


아빠를 씻겨드리거나 자세 변경, 식사 준비 및 보조 등 간병을 위해서는 2명 이상의 어른의 힘이 필요한 때가 많았다. 가정과 직장이 있는 두 딸은 계속 아빠의 곁을 지키기는 어려웠고 아빠 옆을 지키는 몫은 고스란히 엄마의 일이 되었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전처럼 기력을 회복하시리라는 우리의 바람은 점점 멀어져 갔고 엄마 혼자 간병을 지속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했다. 장기요양등급판정 절차를 받고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게 되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타인의 손길은 낯설고 어려웠다. 타인에게 당신의 몸을 맡기는 아빠는 그것을 편해하지 않았으나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낮동안 그래도 몇 시간씩 방문보호사 낮동안 그래도 몇 시간씩 요양보호사님의 도움을 받아 아빠를 간호했다.


퇴원 전 아빠의 담당의는 아빠가 힘들어하시더라도 꼭 몇 시간씩은 앉게 해 드리고 휠체어를 태워드리라고 했다. 부동으로 생긴 아빠의 합병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었다. 우리는 전동침대와 휠체어를 대여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방 안에서라도 휠체어에 앉혀드렸다가 다시 침대로 눕게 해 드리는 일을 반복했다. 질병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부지런히 알아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었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질병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빠의 모든 질병의 과정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건 자연스럽게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감사한 일들을 생각하며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있고 이 일을 같이 헤쳐나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아가기로 했다. 아빠의 컨디션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해야만 했다. 그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이 슬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과 감사와 즐거움을 발견하며 우리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어가자고 우리 자신 스스로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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