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이 Sep 21. 2024

걸음

중력을 거슬러 한걸음 내딛는 행위가 우리 삶에서 많은 것을 이뤄주었다.

늘 내가 당연하게 걸었던 발걸음이 아빠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일이 되었다.

중력을 거슬러 한걸음 내딛는, 걷는다는 행위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어주고 있었는지 나는 아빠를 보며 너무도 가슴 아프게 깨달았다.




허리 통증으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던 아빠가 병원에서 진단받은 첫 진단명은 척추의 압박골절이었다. 이유 없이 발생한 압박골절의 원인을 찾다가 다발성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이 그 원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압박골절의 치료법은 뼈가 잘 붙을 때까지 절대적 침상안정을 취하며 누워있는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조금 회복된다면 허리에 차는 보조기를 맞추고 일어서는 것이 가능한데 이때도 뼈가 완전히 붙은 것은 아니기에 자세는 반듯하게 눕거나 보조기를 차고 똑바로 서는 자세를 해야 한다. 아빠는 압박골절을 진단받고 약 한 달 정도를 똑바른 자세로 누워계셨다. 누워서 밥을 먹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아빠는 잘 드시지 못했다. 누워있는 동안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게 되었는데 치료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오심, 연하곤란으로 인해 더욱 잘 드시지 못하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허리에 맞추는 보조기를 착용하고 바른 자세로 서는 연습을 했다. 아빠의 주치의 선생님은 아빠에게 식사도 바른 자세로 서서 드시라고 했다. 비스듬하게 앉는 자세는 피해야 하고 반듯하게 눕거나 똑바로 일어나서 서 있거나 둘 중 하나의 자세를 유지해야 뼈가 잘 붙는다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한 달 동안 누워있었던 아빠가 다시 일어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의 다리 근육은 눈에 띄게 감소고, 얇디 얇아진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체중을 버티는 일은 아빠에게 너무 힘든 일이 되었다. 입원 전날까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직장을 출퇴근하던 아빠가 한 달 동안 누워계셨다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빠가 보조기를 차면 다시 전처럼 일어나서 걸으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건강해진 아빠와 함께 집으로 퇴원하리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아빠는 5분 동안 서계시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척추를 다친 환자들의 걸음을 보조해 주는 의료장비인 보행기를 잡고서도 한걸음을 스스로 내딛지 못하셨다. 그렇게 아빠는 다시 침상에 눕게 되었다.


침상에 장기로 누워있다 보니 여러 가지 합병증들이 추가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부동은 폐렴, 욕창 등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야기시키는데 아빠에게 이런 합병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흡인성 폐렴과 욕창이 생겼다. 주치의 선생님은 보조기를 착용하고 휠체어라도 타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빠는 이마저도 힘들어하셨다. 그렇게 아빠는 스스로는 침상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컨디션이 되어갔다.


과거 어느 날 나도 언니도 엄마도 아빠도 지금의 우리보다 많이 젊었던 그 어느 봄날, 우리 가족 모두 감수성이 충만해져서 흐드러진 벚꽃을 구경하고자 여의도 벚꽃축제에 간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의나루를 출발해 국회의사당을 거쳐 벚꽃나무를 따라 꽃을 보면서 걷고 또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길거리 간식도 사 먹으며 벚꽃 사이사이 우리의 웃음꽃, 이야기 꽃을 피우며 추억을 남겼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빠는 열공성 뇌경색(lacunar infarction)이라는 허혈성 뇌졸중 중에서는 그래도 증상이 경미한 뇌졸중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보행 장애, 구음 장애, 안면비대칭이라는 증상을 갖게 되셨기에 가족이 느끼는 무게는 적지 않았다. 신경과 치료와 재활 치료 이후 감사하게도 아빠는 다시 직장생활도 하시고 일상으로 돌아오셨지만 자세의 균형이 예전처럼 잘 맞지 않았고, 마비가 있었던 우측 팔, 다리의 힘이 전과 같이 않았다.  

    

어느 봄날 여의도를 걸었던 그때의 나는 내가 아빠와 함께 오랫동안 거리를 걷는다는 것의 행복과 폴라로이드 사진 속 아빠의 정정함을 그리워할 날이 올 줄 알지 못했다. 뇌경색 진단 이후 아빠와 함께 여행을 다녀와서 아빠가 오랫동안 거리를 걷는 일을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여행 사진 속 아빠가 내가 늘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보다 많이 늙고 지쳐있음을 알았으며 이제 앞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아빠에게 기대는 일보다 아빠가 나에게 기대는 일이 많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그 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빠는 보조기를 차고 잠깐씩 휠체어를 타거나 일어서기도 했지만 결국 침상을 벗어나 스스로 걷지 못하셨다. 첫 입원 기간인 약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대부분 침상에 누워계신 상태로 계셨다. 그리고 퇴원을 하는 그날까지 아빠는 스스로 걷지 못하셨다.


아빠는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다. 맛있는 것을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고 맛 집을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셨다. 나는 아빠와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많으리라 생각했고, 좋은 곳을 다닐 시간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의 시간은 자식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모르지 않았는데, 또 놓치고 말았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빠를 보며 나는 다시는 아빠와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벚꽃 구경도, 여행도, 맛 집 투어도 이제 아빠와 함께 다니기는 힘들 것이다.


늘 내가 당연하게 걸었던 발걸음이 아빠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일이 되었다.

중력을 거슬러 한걸음 내딛는, 걷는다는 행위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어주고 있었는지 나는 아빠를 보며 너무도 가슴 아프게 깨달았다.


걷는다는 것, 그 걸음 한 걸음이 나와 아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도 간절했다.



이전 04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