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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리 Jan 02. 2025

둘이 벌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어쩜 이리도 시간이 째깍째깍 빨리도 흘러간단 말인지. 퇴사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아직 이렇다 하게 해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마치 발등의 불이라도 떨어진 듯,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진다. 새롭게 달이 바뀌며 지난달 가계부도 싹 정리했다. 둘이 벌다 외벌이가 되니 확실히 돈 씀씀이가 신중해졌다. 


겨울 방학이 되자 아이 학원에서는 어김없이 학원비 인상 문자가 날아왔다. 커리큘럼을 보면 그다지 필수로 보이지도 않는데, 마치 듣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은 방학 특강비가 또 한 번 허리를 휘게 한다. 


며칠 전 읽은 기사에 따르면 최근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소비 전반이 줄어들었지만, 사교육비 지출만큼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나 역시도 무작정 사교육비를 줄이자니 아이의 미래를 위축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고, 그대로 유지하자니 가계 부담이 만만찮다. 소비에도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걸까.






가계 수입이 줄었으니 당연히 지출의 규모도 줄여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존에 해오던 것에서 뭘 어떻게 더 줄여야 할까? 이미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던 나로서는 더 줄일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따져 봐도 나 자신에게 쓰는 돈부터 줄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미용실 비용, 의복비, 품위유지비, 의미 없는 모임과 티타임, 커피 베이커리 같은 사소한 소비까지. 생활비 쥐어짜기의 첫 희생자가 나라니, 서글픈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가족들은 이런 나의 희생을 알기나 할까. 문득 원망의 화살표가 그들에게로 향했다.






다음으로 줄인 것은 가족과의 외식 횟수다. 예전에는 주말마다 외식을 하며 맛집 탐방을 즐기곤 했지만, 이제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거나, 그마저도 간단히 해결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지난 크리스마스도, 한 해의 마지막 날도, 신년도, 모두 집에서 식사를 준비했다. 다행히 요즘은 온라인에서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 레시피가 많고, 필요한 식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약간의 수고만 더한다면 외식 못지않은 요리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물론 그 수고는 대부분 내 몫이지만.






쇼핑 습관 또한 바꿨다. 쓸데없이 대형 마트를 설렁설렁 돌아다니거나 온라인 장보기를 무심코 하는 것도 그 횟수를 크게 줄였다. 쇼핑 전에 꼭 필요한 물건을 미리 목록에 적어 두고, 그것만 사고는 재빨리 나왔다. 쓸데없이 매장을 돌아다니거나 쇼핑 페이지를 둘러보지 않으니, 불필요한 욕심도 덜 생기는 듯했다. 2주에 한 번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장을 보던 때와 달리, 매주 신선한 재료를 소량으로 구매하니 식재료 낭비도 확연히 줄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나의 소비 철칙은 집에 물건을 쟁여 놓지 않는 것. ‘할인을 한다고, 한 번에 많이 사야 할인 폭이 크니까, 미리 사둬야 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이것저것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다. 집에 세제가 몇 통 남았는지, 샴푸나 칫솔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물건의 위치까지 모두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물건들은 애초에 들여놓지 않는다.






이전과 비교해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건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주 고민한다는 것이다. 퇴사 전에는 "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과소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둘이 함께 버니까 라는 이유로 씀씀이가 커진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하기 전 "내가 정말 이걸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예를 들어, 화장품도 이전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신제품을 사들이기에 바빴지만, 이제는 잘 맞는 제품 몇 가지에만 집중한다. 옷도 마찬가지다. 유행을 좇아 옷장을 채우기보다는 기본 아이템 몇 가지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살림살이를 줄이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돈을 덜 쓰는 것이 꼭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니 정작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런 시기를 겪으며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앞으로 다가올 중년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결국 외벌이의 경제학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인 듯 하다. 덜 소비하면서 오히려 더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둘이 벌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둘이 함께 돈을 번다는 이유로 흘려보낸 소비가 얼마나 많았는지 말이다. 이제는 소비를 통해 내 삶의 가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돈을 쓰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 퇴사를 선택하며 시작된 이 여정이 단순한 절약을 넘어 나를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길.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할 나는 어떤 모습일지, 혼자 조용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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