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연말이다. 창밖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거리는 반짝이는 조명으로 가득하다. 내년이면 내 나이가 벌써 마흔 중후반. 그토록 거부해 마지않던 ‘아줌마’라는 호칭을 스스로 인정한 지도 꽤 되었고, 이제는 ‘중년’이란 단어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득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당시의 나는 40대를 어떤 모습으로 그렸을까? 아마도 모든 것이 안정되고 성숙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4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는 팔랑귀인 데다, 지름길 놔두고 이길 저길을 둘러 여전히 방황 중이기도 하다. 40대의 어른은 오히려 20대보다 더 많은 질문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았을까.
세월은 늘 빠르고 무심하다. 연말은 으레 한 해를 되돌아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그리는 시간일진대. 하지만 올해의 연말은 뭔가 다르다. 주변과 세상의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무겁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온라인 속 친구들도 모두 지갑을 닫고 조심스레 숨을 고르는 듯하다.
모임과 여행을 자제하는 사람들,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대외 환경 속에서 희망보다는 걱정을 품은 사람들. '나 홀로 여행'이니 '욜로 라이프'니 하는 말들은 어느새 '짠테크'나 '무지출 챌린지' 같은 말들로 대체된 지 오래다. 내년은 올해보다 나아질까? 글쎄.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얼마 전 우연히 SNS에서 흥미로운 글을 하나 보았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누군가 정리해 둔 내용이었다. 부채 없는 30평 이상 아파트 소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그리고 해외여행을 1년에 한 번 이상 다닐 것.
이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기준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나,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이 모든 기준을 다 충족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순간 자괴감이 밀려왔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더니, 결국 이것이 흙수저의 한계인가? 러닝머신 위에서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이 기분. 내가 뭐 대단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기껏 대한민국 중산층도 되지 못하다니. 더구나 나는 지금 일까지 그만둔 상태가 아니던가.
갑자기 유죄 인간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도 팍팍한 이 시기에, 내가 이렇게 잉여롭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 매일 아침 바쁘게 출근하던 예전과 달리, 느긋하게 아이 등교를 챙기고 집안일 하며 글까지 쓰고 있는 내가 갑자기 대단한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에 다다랐다. 내가 지금 누구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고 있는 거지? SNS에 떠도는 익명의 누군가가 정한 중산층의 기준. 그것이 나의 삶을 재단하는 잣대가 되어야만 하는 거야?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그저 경제적 안정을 상징할 뿐, 그 속에 담긴 개인의 행복이나 만족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거잖아? 30평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1억 원의 저축이 없어도 우리는 모두 우리 삶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것 아냐?
요즘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네가 쉬는 동안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진 것 같아." 딸도 하교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엄마가 따뜻한 인사로 맞아주고, 혼자 쓸쓸하게 데워먹던 냉동 볶음밥 대신 엄마가 손수 저녁을 차려줘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신이 났다. 그동안 나는 워킹맘으로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달리기가 우리 가족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도록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내게 현실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을 생각하면 가끔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물가가 오르는 속도는 월급 상승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지고, 학령기 아이의 교육비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일만 남았다. 남편과 나, 그리고 부모님도 이제 앞으로 병들고 아플 일이 더 많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시간은 분명 투자에 가깝다. 일에 치여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아이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남편과 진득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앞으로의 40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 이런 것들이 모여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중산층의 자격이 아닐까. 물가는 오르고 금리는 치솟고 모든 것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이 불안한 시대에,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때로는 걷거나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다시 더 멀리 달릴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누구는 직선의 길을 걷고, 누구는 곡선의 길을 걷는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지다. 쉬어가는 지금의 시간은 내가 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