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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리 Dec 26. 2024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그날이 오고 있다.

일 년 중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기가 있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명절은 며칠만 견디면 그만이지만, 며칠로 끝나지 않기에 오히려 더 힘들고 두렵다는 시기. 바로 아이들의 기나긴 방학이다. 


그래도 여름방학은 어떻게든 4주를 버티면 끝이 보이지만, 겨울방학은 무려 2개월이나 이어진다. 말이 2개월이지 이건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다. 한 계절의 절반을 함께 보내는 여정이다. 부산에서는 봄방학이 있어 중간중간 숨이라도 고를 틈이 있었는데, 수도권으로 이사 온 뒤 겨울방학이 두 달 내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서 나는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마라톤 같다고나 할까.






나는 중학교 1학년 딸 하나를 둔 엄마다. 그래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으니 육아는 이제 남의 이야기, 내 생활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제법 독립적인 존재가 될 거라 기대했던 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다. 더 이상 엄마 손을 잡고 다니지도, 뽀뽀를 조르지도 않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외치며 하루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바쁜 아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기엔 아직 서툴고, 정성스레 준비해 둔 반찬도 라면이나 냉동식품에 밀려나기 일쑤. 이 정도 키웠으면 거의 다 키운 줄 알았는데, 아이는 여전히 ‘아이’였던 것이다. 아직은 둥지 안의 작은 새처럼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지난 여름방학은 딸이 중학생이 되고 처음 맞는 방학이었다. 그래도 일찍 귀가해 살림이라도 챙겨 보려고 8 to 5 탄력근무제를 신청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내가 출근할 때 아이는 아직 늦잠을 자고 있었고, 아침과 점심은 물론, 학원 시간 전 미리 먹고 나가야 하는 이른 저녁까지 준비해 놓고 나가야 했다. 맛이 없다고 아이가 항상 툴툴거렸던 학교 급식이 이토록 고마운 존재였다니. 새삼 그 감사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저녁이었다. 남편이 밤 9시에야 퇴근하는 날이 많아, 나는 아이의 저녁, 나의 저녁, 남편의 저녁까지, 저녁 식사만 하루에 세 번씩 준비해야 했다. 아이의 방학으로 겨우 한 끼가 더 늘었을 뿐인데도 하루하루가 너무 버거웠다. 남편이 나의 이런 힘듦에 동참하지 않는 듯해 내심 화가 나기도 했다. 아니 맞벌이면서 이런 고민은 왜 나만 해야 하는 거지? 아 지금 생각해도 아이의 지난 여름 방학은 너무 힘겨웠다. 






겨울 날씨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아이의 학기 말 종업식이 다가오니 내 마음속에도 작은 알람이 울리는 것 같다. '아, 또 겨울방학이다.' 워킹맘으로 일할 때는 '방학 동안 아이는 어떻게 하지?' 늘 고민이었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이의 방학이 두렵기만 하다. ‘엄마, 나 심심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며 핸드폰과 함께 누워 뒹굴뒹굴하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벌써 눈앞에 선하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조금 다르다. 퇴사 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온전히 아이와 마주해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에 대한 고민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 겨울방학, 나는 세 가지를 결심했다. 첫째,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시간 보내기. 둘째, 아이에게 혼자만의 슬기로운 시간 보내는 법 알려주기. 그리고 마지막 셋째, 그 시간을 내 성장의 기회로 삼기. ‘함께라서 더 좋은 우리들의 방학 레시피'라는 이름으로 우리만의 계획표도 만들었다. 하루 한 번 함께 요리하기, 매일 아침 도서관 출근 후 책을 읽거나 각자의 공부하기, 그리고 겨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짧은 여행 자주 떠나기. 처음엔 딸이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내심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뭐, 나쁘진 않겠네’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은근한 설렘을 읽을 수 있었다.






다가오는 아이의 방학을 걱정하며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나만의 방학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내게 아이의 방학은 언제나 ‘이중 업무’로 느껴지곤 했다. 직장에서의 책임과 아이와의 시간 사이에서 나는 늘 줄타기를 해야 했고, ‘엄마로서 나는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직장을 내려놓은 지금, 아이와의 시간을 온전히 마주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물론 여전히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아이의 방학이 끝난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퇴사 후의 삶은 여전히 낯설고, 엄마의 역할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역할이기도 하니까. 방학 동안 아이와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다짐과 동시에,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챕터 역시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아이의 성장 속에서 내 성장의 단서를 찾는 것. 결국 아이의 겨울방학은 엄마인 나의 겨울방학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겨울, 우리는 함께 ‘쉼’의 의미를 배워볼 생각이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 그렇게 우리의 겨울방학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겨울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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