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맨

2020년 1월 31일

by 선량한해달

"아니, 다 아프고 그런 거 아녀? 응? 독감 걸려도 나와 앉아 있어야, 응? 직장인이지. 염병들을 허고..."


아침부터 송차장의 심기가 불편하다. 이동 및 집합 금지 공문이 떴다. 떠버렸다. 월초만 해도 가벼운 경고 정도였는데 몇 주 사이 현장의 회식이 연달아 발각되며 전염병 대응 기준이 격상된 것이다. 술조합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송차장에게는 가혹한 공문이다.


"현장에서 회식하다 걸렸다며?"

"중부 본부에서 누가 신문고에 투고했다나 봐."

"지급된 마스크는 뜯지도 않았고, 마스크 담당자도 없었다던데?"


괜한 불똥이 튀어 본사에도 방역 수칙 관리 인원 지정 방침이 섰다. 이제 각 부서 1인은 무료 봉사를 해야만 한다.


"뭐, 이런 걸 다 해. 귀찮게시리, 에이그. 미리씨 고생하겠네."

"현장 때매 말여, 응? 우리 미리씨 고생만 하고 말여, 응?"


'...'


당연스럽게 강사원에게 일이 넘어간다. 보아하니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다. 방역 수칙 리스트가 철된 노란 정부 파일이 팀장 자리에서 옆으로 옆으로 이동해 막내들의 데스크에 안착한다. 더럽고 티도 안 나는 이런 일의 특성을 잘 아는 강사원은 받자마자 일주일치를 작성해둔다. 평소에 봐둔 사번을 잘 옮겨 적고 사인 연습을 두어 번 한 뒤 근무 일자에 맞추어 사람별로 필체와 필압을 조정해 감쪽같이 감사에 대응할 문서를 만든 것이다.


'상반기 업무 평가에 한 줄 장식은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 치솟았던 화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전략처 띄고 방역수칙 띄고 관리 띄고 인원 띄고 지정 띄고 알림...... 끝. '


공문을 띄우고 나니 똥을 주고 자리를 비운 송차장과 이과장 자리가 평화롭다. 그들의 담배 타임 동안 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강사원은 새로 산 향수를 한 번 뿌리더니 휴대폰을 들고 1층 카페로 이동한다. 니코틴 중독자들에게만 허락된 30분은 부당하다. 나는 오늘부터 카페인 중독 선언을 하겠다. 그런 마음가짐이다.


'응? 정대리? 아, 미리씨구나.'


제법 긴 머리 때문인지 언뜻 지나는 강사원을 정대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사와 재무를 지나 사공처 앞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중단발의 강사원이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빨려 들어간다. 사무실에 먼지 섞인 공기와 잔향만남자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보란 듯이 아래로 아래로 자기장을 거슬러 날카롭게 움직인다.



"차함나, 거긴 뭐 하는겨, 응? 한 달을 마스크는 뜯도 않고 회식이나 쳐하고, 응?"

"그러게 말입니다."

"아아니, 할 거면, 응? 쫌 말여, 응? 요즘 것들 눈 피해서 하든가, 으이고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응? 뭐 전염병 별 거 있냐? 감기 좀 걸린 거 가지고 더럽게들 난리여. 안 아픈 사람 어딨나? 난 맨날 아픈데? 응? 마음이 문드러진다, 내가."

"네."

"이 바닥 이거 한두 번 아녀, 사스다, 메르스다 전염병 대책이고 나발이고 말짱 헛짓거리라 이거여."

"..."

"막말로 미리 저거는 지금 경력이 원투데이도 아닌데, 삼심 중반에 내 사인이나 조작하고 앉아 있고 말여. 아까 보니 한 달치 다 해 놓은 것 같던데. 응? 그런 잡일이 사람 잡는거여. 응? 니들 말로 현타 오지게 온다는 거여. 저거 저러다 또 더럽다고 나가네 마네 하면은, 우린 그냥 다 죽는거여, 응?"

"..."


"에휴, 씨, 박민혁이 생각나네."

"..."

"알어?"

"아뇨."

"정대리랑 민혁이랑 죽이 잘 맞았거든."

"아, 그때 그. 네네."

"요즘 놈 같잖게 허라면 허고, 회식도 안 빠지고 말여. 그런 놈들이, 응? 일 잘하는겨. 일의 근본을 아는 거여."

"네."

"근데 고것도 요즘 놈이라고 뭐라는 줄 아냐?"

"네?"

"딱 한 번 뺀 적이 있었거든."

"조개탕집 회식이었는데, ...크큭. 그놈이 내 귀에다 대고 얼굴 벌개져서는. 크크큭."

"..."

"'과장님, 저 조개 알레르기라 못 갑니다.' 그러는겨. 크크크크. 미친놈이."

"아, 의외네요. 조개 알레르기도 있구나. 흐흐."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겠냐. 거, 좀 참으라고. 본부장님도 오시는데 가서 얼굴 비춰야 한다고. 너 넘어가는 거 같으면 바로 응급실로 쏠테니까 가자고 끌고 갔지. 그 모습 보면 본부장님도 충성심에 감탄할거다, 이럼서 말여."

"..아."

"그랬더니 가 가지고는 조개만 빼놓고 이리저리 안주거리 찾는데 볼만하더라고. 그러다 나랑 눈 마주치면 술 한 잔 마시고. 또 안주 찾고 그러더라고. 크큭."

"..."

"다음 번엔 배려해줄라 그랬더니만 고게 또 그 길로 빠져나가네. 응?"
"..."

"일 잘하는 놈은 이직도 쉬운거여."

"그쵸."

"우리처럼 이러고 궁뎅이 승부하지 않아도 된다 이거여. 응? 고 놈 참 이뻐했는데, 배신감 들드만."


1층 화단 구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발암 솜사탕 속에서 송차장과 마주서 네봇만 하고 있는 이과장의 시야에 저 멀리 카페로 입장하는 강사원이 잡힌다. 이과장은 저 큰 사이즈의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내 것이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야, 여봐라. 막내야, 최가야. ...없냐?"


물방울이 아로 맺힌 거대한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울린다. 입도 안 댄 커피를 책상에 올려둔 채로 맨발을 까딱이는 중부 본부의 고인물이 권한을 발동한다. 중부 본부의 방역 수칙 담당자는 최담당으로 결정됐다. 결정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최담당의 캐비닛에 파일 하나가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 일이다.


"어떤 새*가 꼰질러서 이 사단을 만들어, 만들기는?"


새 사장 부임 후 시범 케이스가 될까 조마조마했던 현장이었지만 다행히 견책으로 끝이 났다. 이렇게 되면 역공이 시작된다. 사내 신문고에 찔러댄 놈이 언놈인지 색출해내려 노조가 움직이고 있다.


"걔 밖에 읍자너. 표정도 썩었드만. 준우 뒤치다꺼리도 걔가 다 했잖아."

"서울대 나와서 할 줄 아는 게 고작 꼰지르는 거?"


묘하게 몰고 가는 분위기에 눈칫밥을 먹던 최담당은 준우 선배를 통해 급히 연차를 냈다. 회식 날 떡이 된 선배를 집까지 데려다줬을 뿐이다. 착한 일 하고 욕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리라. 전략처 시절에도 나날이 술몸살을 앓았는데 현장에서도 술과는 연이 곱지 않다. 모처럼의 늦잠에도 도통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사무실과는 또다른 무게감이다. 문득 어느 쪽이 더 고된가 저울질해보다 의미 없는 고민이라는 듯 피식 웃음을 짓고는 식빵 하나를 물고 노트북을 연다. 모아둔 채용 예정 공기업 리스트가 한두 줄씩 줄어가는 형국이다.


'시*!'


나와 있는 채용이라고는 전부 다 기술직이다. 이토록 라이선스가 부러웠던 적이 있었던가. 서울대가 무색하다. 공기업인으로 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고졸 채용에 응시하는 편이 현명했다. 가만히 자격증을 검색해보다 손을 멈추고 휙 하늘을 올려다본다. 물고 있던 식빵이 볼록 나온 아랫배에 튕겨 나가떨어진다. 꽉 막힌 천장이 내 처지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현장에 배치되고부터는 살까지 올라 헐렁한 실내복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고무줄을 좀 헐렁한 걸로 바꿀까?'


휴일의 무거운 고민은 뱃살 속에서 희석되어 생활감 넘치는 격 없는 고민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행복한 미래와 함께합니다. 티에프팀 정.민.입니다. 공문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티에프도 방역 수칙 담당 지정해야 할까요?/ 아, 예. 여기... 저밖에 없어서요. /...아, 감사랑요? ...층도 다르고 업무도 다른데. / ...네. 아,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쇼."


'...'


여기 1인 체제로 수개월 섬생활 중인 사람이 있다. 어차피 혼자 쓰는 방. 그에게 마스크 따위 출퇴근용일 뿐이다. 1인 티에프에도 방역수칙 담당자 지정이 필요한 것일까? 애초에 전사원에게 지급됐다던 마스크는 본 적도 없는 정대리다. 아무도 1인 티에프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예쁘지도 않은 마스크 받아서 뭐해. 내 꺼 쓰지 뭐.'


회사 방침에서 소외된 데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관한 정대리에게도 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이상적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정대리에게 방역 수칙 담당자 지정이라는 예기치 못한 난제가 날아들자 티에프실에 처박힌 이후로 한 적 없는 자잘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거 공문 접수를 해야 하나? 그럼 명단 보내야 되잖아. 아냐, 하지 말자. 기밀 티에픈데 뭐. ...그래도 이딴 걸로 감사받는 거 보다는 하는 게 안 낫나?'


그렇게 인사처에 전화를 걸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외치는 행복한 미래와 오랜만에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새삼 서럽다. 정대리는 울적해진 기분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아, 대리님 티에프팀 정민입니다."

"언니! 대리님 하지 말라 그래찌! 그럼 나도 정대리님이라 그런다?"

"흐흣, 알았어."

"왜? 티에프실 올라갈까? 나 채용비리건 때매 죽겠는데. 커피 좀 내려줘."

"응, 언제든 와. 그리고..."

"그리고?"

"그... 방역 수칙 담당자 지정 말야."

"응?"

"인사에서 너네랑 같이 묶어서 하라 그러네."

"...우리랑?"

"응."

"거긴 일도 다르고, 층도 다른데?"

"...그러게."

"..."

"..."


"언니, 우리는 이미 지정 알림 공문 보냈어."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맑음 뒤 흐림


<티에프팀 정대리> 더부살이 신세

어디에 빌붙어야 하나.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는데 서무가 얽히니 입지가 애매해지네. 예산도 없는 티에프인데, 뭘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까지 감춰야 하는 거지? 지금 내가 조직인이기는 한가? 감사에서는 그 뒤로 연락도 없고. 보고 받던 헌 사장은 가고, 새 사장은 내가 누군지, 이 티에프가 뭔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나조차도 이 티에프가 뭔지 모르겠는데. 일이 없다는 것이 ...두렵고 비참하다.


<중부 본부 신위원> 한 판 붙어야지

구린 놈이 많으니 벌써부터 입질이라. 겨우 회식 몇 번으로 감사? 비리는 본사 것들이 더 많은데 현장을 치고 들어오셨다? 그렇게는 안 되지. 강성 노조가 뭔지 뼈저리게 느껴보라고. 이렇게 나오면 신문이 뭔지, 투고가 뭔지, 방송이 뭔지 알려줘야지. 강짱돌이, 너 이새*, 속이 시커먼 새*. 나이 50줄이면 슬슬 떠날 준비를 하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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