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커피타임

2020년 2월 3일

by 선량한해달

"저 집 나올까봐요."


심야의 티에프실에 두 여자가 마주 보고 앉았다.


"언니는 요즘 어떠세요?"

"그냥 그래요."


숨가쁜 월요일이 지났다. 강사원은 족히 20부는 되어 보이는 두툼한 회의 자료를 응차 들고 파쇄기로 향했다. 한 묶음 당 서른 장이 넘는 회의 자료다. 파쇄 전 좌상단의 스테이플러를 맨손으로 찢어내다 손이 미끌리며 심이 엄지의 중앙에 박혀버렸다. 소심하게 새어 나오는 혈액을 한 방울 바라보며 왜 인간은 이런 별 것 아닌 일로 비참해지는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제법 두꺼운 머그를 씻으러 나온 골방 정대리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다만 기묘한 자세로 서있었다. 엉덩이도 얼굴도 강사원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환한 얼굴로 제 얼굴만한 커피 머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살랑살랑 유혹하는 것이다.


"커피가 참 맛있네요."

"그쵸? 이거 저희 집에서 직접 수입한 거거든요. 역시 뭘 좀 아신다니까!"


한 때 같은 처에서 일했던 것이 무색하게 대화가 툭툭 끊어진다. 이 대화의 틈은 정대리의 긴 골방 생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로가 알지 못하는 포인트에서 하나둘 쌓인 '비참'에 기인한다. 정대리는 공기에, 강사원 잡무에 지쳐가고 있었다.


"언니."


정대리가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고 입을 뗀다.

"네."


애매한 타이밍에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다가 급히 꿀떡 삼키고는 대답하는 강사원이다.


"회사란... 뭘까요?"

"...네?"


'...'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 시간에. 싫어하는 사람과. 먹는 것. 매일. 수차례."


그의 답은 의외로 현실적이고 담백하고 명료했다.


'...!'


대개의 깨달음이 그렇듯 정대리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모든 것을 깨우쳤다.


"그러네요. 흐흣, 어쩐지 요즘 계속 혼자 먹으니까 소화가 잘 되고 살도 빠지고 기분까지 좋더라니까요."


맑은 웃음이 한 차례 지나고 급격이 몰려드는 우울감이 번지기 전까지 정대리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가만 보면 언니도 되게 웃긴다니까. 개그 욕심이 있어."

"네, 뭐..."


처량하게 미소 짓는 강사원을 바라보던 정대리가 커피 머그를 입에 댔다가 무언가 아니라는 듯 다시 내려놓는다.

"언니는 언제부터 자취하셨어요?"

"한 5년 된 것 같아요."

"저쪽 공사 다닐 때부터 하신 거예요?"

"도중부터요. 티에프 때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회사 근처로 옮겼어요."

강사원의 홀짝이는 소리가 작은 골방을 가득 채운다.


"그 티에프... 뭐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뇨."

"네. 죄송해요."


정대리는 여우 같은 아저씨들의 입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내리는 '그 티에프'가 궁금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괜히 알게 되면 골치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방금 전은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잠시 양가감정의 균형을 깨뜨렸다. 강사원의 빠른 거절에 감정의 균형은 금세 돌아왔다.

"대리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


커피 맛을 충분히 즐긴 강사원 쪽에서 말을 잇는다.


"...모르겠어요. 이게 힘든 건지. 편한 건지."

"생각이 많으시겠어요."


정대리는 강사원이 말을 이어주자 마음이 놓인다.


"언니, 여기 요즘 일이 없어요. 한 2주 된 것 같아요."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네?"

"아, 아뇨. 임기말 티에프가 보통 마지막에 일이 없어요. 여긴 이미 새 사장까지 왔으니..."

정대리는 감사실장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괜한 말을 하는 것 같아 티에프의 표면적인 성격을 유지하기로 한다.


"그쵸. 저는 이런 일 처음 겪는 거라 갈팡질팡해요. 나가라는 건가, 이직을 해야 하나 고민도 하고 그래요."

"조직개편이 돼봐야죠. 기다려 보세요."

"하아, 정말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돼..."


반쯤 식은 커피를 맥주처럼 들이켜는 정대리다. 강사원은 정대리의 모습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누군가의 모습인 것만 같아 잠시 빤히 들여다본다.


'그때 딱 저 나이였던가?'


온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던 그 시절의 나에 비하면 저 아이는 훨씬 명석하고 차분하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러다 귀가 달아오르자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이고 만다.


"언니, 저 집 나올까봐요. 집에 제 편이 없어요."

"..."


강사원은 지나치게 차분하고 낮은 정대리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들린다. 어딘가에서 희미한 통곡이 섞여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언니, 저희 집은 아파트 하나가 전부예요."

"..."

"저는 저희 집이 부잔 줄 알았거든요. 강남에 아파트가 있다고 하면 다들 금수저라고 무슨 벌레 보듯이..."

"그렇죠. ...대개는."

"조금 덜 가난할 뿐이데..."

강사원은 이게 주사보다 무섭다는 커사인가 생각하며 잠시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 이 똑똑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져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인생이라는 게. 좀 더 가난하냐, 덜 가난하냐일 뿐인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최근에 생각한 건데요. 부모가 자식을 속이더라고요."

"..."

"이 정도면 괜찮다고. 이 정도면 부족함은 없다고."

"...네."

"내가 너 책 못 사주겠냐고. 택시 못 태우겠냐고."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냐고."/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냐고."


가만히 듣던 강사원은 그만 정대리와 입을 맞추고 말았다.


"어? 언니네도 그러세요?"

"...다 그럴걸요?"


강사원은 커피를 홀짝이며 두뇌 명석하고 일 잘하는 정대리가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 진짜요? 다 그래? 다른 집도 다 그래요?"

"그렇죠. ...대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정대리는 태연한 강사원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왜에...? 그러실까요?"

"...힘드니까?"

"뭐가요?"

"자식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정대리는 지난 날을 가만히 돌아본다.


"언니."

"네."

"맞는 것 같아요."

"네?"


"제가, 어릴 때 음악을 했었거든요."

"아, 잘 어울리세요."

"왜, 언제, 무엇을 계기로 관두게 됐는지... 몰랐어요. 저."

"아..."

강사원은 갑자기 남의 인생에 너무 깊게 관여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차 싶다. 하필 커피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집을 샀거든요. 강남에. 레슨 관둘 때. 집을 샀었어요."


멍하니 시간여행자가 되어 급히 노화하는 정대리를 바라보던 강사원은 그가 눈앞에서 묘비를 세우기 전에 이 여행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잘 사셨네요. 흔한 일이에요. 자산 증식을 하면서 자식 교육을 겸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어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강남에 집을 사면서 그럴만한 여유가..."

"아뇨, 그때 선생님이 여러 번 집에 찾아오셨었어요.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아."


강사원은 뭔가 대단한 것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빠가 남한테 욕하는 걸 봤어요."

"..."

"꺼지라고. 내 애는 공부를 시킬 거라고."

"..."

"초등학생 때 음악 선생님들이 피아노에 적성이 있다고 잘 개발하라고 하셨었거든요. 그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셨어요. 레슨 선생님까지 연결해주실 정도였으니까..."

"..."

"그래서 중학생 때까지 잘 따라가다가. 한 순간이었어요. 인생이 공부 노선으로 바뀐 게."

"음악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어차피 조성진 아니면..."

"그때 계속 피아노를 쳤었더라면."

"...대리님."


이미 정대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강사원은 제대로 버튼을 누르고만 자신을 책망하며 골방 밖으로 나갈 타이밍만을 엿보고 있다.


"그때 계속 피아노를 쳤었더라면..."

"대리님, 피아니스트는 못 돼요. 걔들은 그런 일이 있어도 피아노를 쳐요. 세상이 그렇게 만들거든요."

"아뇨,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네?"

"살면서 단 한 번도요."


'그럼 뭐가 문제지?'

강사원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제가 피아노를 계속 쳤었더라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을 수는 있었겠죠?"


멍한 눈으로 담담하게 발화하는 정대리의 모습에 그 정도면은 뭐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어 역으로 말문이 막힌다. 부모도 힘겨운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시점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현실감 100%의 총명한 젊은이가 가진 작은 소망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깨달음의 시기가 늦은 만큼 결론 도출이 현실적이다. 나보다는 후폭풍도 적으리라. 한시름 놓은 강사원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심야의 커사 분위기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는다.


"저희 경우는 건물이었어요."

"네?"

" 그 시절 정대리님댁이 강남 아파트를 선택했듯, 저희는 건물을 선택했어요. 집 앞으로 도로가 났거든요."

"그럼 언니네... 건물이 있으세요?"

"네."

"서울에?"

"네."

"..."


정대리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강사원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언니..."


이 말을 할까 말까, 해도 되나 안 되나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정대리는 결심한 듯 입을 연다.

"제 말 오해 마시고 들어주세요."

"네."

"회사 왜 다니세요?"


정대리는 기어코 귀가 헐도록 들어온 그 나쁜 말을 스스로 내뱉고야 만다. 그러면서 지금껏 내게 그 말을 했던 사람들이 반드시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대리님과 같은 이유로."

"에이, 아파트랑 건물은 다르죠. 아파트는 개나 소나..."

"저희는 없어요."

"네?"

"저희는 아파트가 없어요. 저희 부모님은 주택과 건물을 동시에 다 가질 여유는 없었어요."

"...아?"


정대리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인생을 선택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를 처음 만난다. 집이 없는데 건물을 지어 올리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다. 그리고 그 가족은 여전히 아파트가 없는 상태로 건물을 소유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정말 죄송한데. 언니네는 어디서 살아요? 전세?"

"건물에서요."

"아, 아아아! 주상복합!"

"아뇨. 그냥 동네 건물이에요. 주상복합이 아니라. 한 층을 가정집으로 허가받아서 살고 있어요."

"그게 주상복합이죠, 주상복합이 별 건가. 내 건물 있으면 저도 그렇게 살겠어요. 사람들이 내 건물이 없으니까 아파트 아파트 하고 살죠, 언니."

강사원은 정대리의 의견에 일부 수긍하면서도 현실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밤마다 음산하고 불쾌한 귀신 울림 소리가 들려요."

"네?"

"건물에 노래방이 있거든요."

"아..."

"볼끼리 딱하고 부딪치는 소리와 담배연기가 집에 가득해요. 당구장도 있거든요."

"...아."

"치킨집과 김밥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가 주차장을 메워요. 구역질이 나죠."

"..."

"한 번은 아침에 현관문이 안 열려서 보니 술 취한 아저씨가 문 앞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아이고..."

"시체 아니라 다행이죠. 건물이 사거리 도로변에 있어서 것도 제법 봤거든요. 심야에 사고가 잘 나서."

"..."


정대리는 아파트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중이다. 꼭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주택가의 소중함이란 그것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정대리는 그렇다는 사실조차 방금 알았다. 이제는 정대리 쪽에서 버튼을 잘못 눌렀다 싶어 고민한다. 골방이 본거지인 입장이라 뛰쳐나갈 수도 없다. 들어야만 한다.


"중학생 때는 따돌림을 당했어요. 김밥 건물에서 산다고요. 그래도 고등학생 때에 비하면 애들이 착했죠."

"..."

"고등학생 때에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쟤 노래방에서 일한다고요. 유럽 살다와서 문란하다고요. 하루하루 비참했어요."


정대리는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진다.


"...죄송해요."


태연한 강사원의 얼굴에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모르겠다.


"뭐가요, 이게 인생인데요."


강사원의 종결의 한 마디로 심야의 커피타임에 해산의 깃발이 게양된다. 정대리는 차마 골방을 나서는 강사원을 배웅하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다 대고 단단히 목소리를 올린다.


"언니! 또 얘기해요. 우리."


저만치 걸어 나가던 강사원도 문을 닫으며 담담하게 인삿말을 남긴다.


"저는 저를 구하기 위해서 살 거예요. 대리님, 대리님을 구하기 위해 사세요."





2020년 2월 3일 월요일 맑음


<전략처 강사원> 꼭 한 사람은 있지

어딜 가나 꼭 한 사람은 있지. 누가 봐도 회사가, 조직이 맞지 않는 사람. 철학이나 예술이나 연구가 맞는 사람. 제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를 등에 지고 억지로 억지로 스스로를 상처 내며 버티는 사람. 바른 사람. 웃는 사람. 꼭 그 시절의 나 같은 바보 인간.


<티에프팀 정대리> 지랄 맞은 파랑새를 찾아

방법을 찾자. 더 늦기 전에 내 삶을 찾자. 인턴이든 뭐든 다시 처음부터 해야 돼. 이 거지 같은 물경력 따위 버리고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자.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안전하게 사는 것... 하지만 난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제발 나도... 이제는 좀...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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