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스 공사 강모씨 (현장편)
2020년 1월 29일
"여기가 뭐라고 생때같은 자식을 박아?"
"기사 봤냐? 우리가 신의 직장이란다?"
"살다 살다 9시 뉴스에 회사 나오는 건 또 첨 보네."
최담당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김없이 '나무1'과 같은 구석 포지션을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
'채용 비리? 참 내, 가지가지하네.'
없는 정까지 싹 떨어진다. 본사의 승진 퍼레이드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채용 비리까지 터져 뉴스에 나오니 이제는 일을 하지 말자는 분위기다.
'이딴 지옥에 자식새끼 구겨 넣을 정도면 그게 부몬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낙하산이라는 작자들도 딱하다. 몇 명이나 숨어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생고생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쌍포인트인 것이다. 거의 입사와 동시에 이직을 꿈꾸게 만들었던 회사 아닌가. 이곳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도 비참하기 그지없다. 오죽 못났으면 비리까지 저질러가며 겨우 여길 올까. 빽 없는 나만큼이나 불쌍한 족속들일지도 모른다.
"최담당님, 얘기 들었어요? 전략처 난리 났겠던데?"
"아, 예. 뭐... 여기가 뭐라고."
오랜만에 스케줄이 겹친 준우 선배다. 현장 대리급 승진 0명이라는 대기록 속에 더욱 빛나는 막차 승진자. 오늘따라 유독 멀끔한 자태가 빛나 보인다. 왜 하필 저 선배와 캐비닛이 맞붙어 있을까. 이곳은 이 구질구질한 제복조차 어울리는 저 사람의 직장이다. 남의 직장에 빌붙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꼴에 급히 우울이 드리운다.
"에에이, 우리 정도면 괜찮지. 그래도 서른여섯 개밖에 없는 공기업 중 하난데."
"...네. 뭐."
"몇이나 되려나? 소문에는 의혹 있는 놈만 수백 명 이라던데?"
"...아, 네."
"감사실도 뒤집혔겠다. 감사실 동기는 없어요?"
"...아. 네."
"..."
신통찮은 반응이다. 잠시간 옷을 걸고 매무새를 다듬는 소리만이 사락사락 들린다.
"이직 준비는 잘 돼가요?"
헤어를 정리하고 강한 향을 온몸에 입힌 신위원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채용이 ...없네요."
비스듬히 땅을 쳐다보며 단발성 대화만을 추구하는 최담당의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워진 신위원은 한 손으로는 캐비닛 속 사복을 정리하면서 이따금씩 고개를 빼 최담당을 스캔한다. 현장 발령 이후 점점 더 수척해져 가는 후배가 신경 쓰여 자꾸만 말을 더한다.
"그치, 옆동네 감기가 단순 감기가 아닌가 보더라고."
"..."
"보건 쪽 친구가 당분간은 일할 때 마스크 꼭 쓰고 조심하라더라고요."
"..."
"우리도 그렇고 다른 공기업들 채용도... 준다더라고요. 뉴스에. 나오던데."
"..., 네."
멈칫하는 최담당이다. 나도 양심이 있다. 상반기 탈출은 바라지도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반기를 노리자 생각하며 어학 업그레이드와 NCS 공부에 전념하느라 잠도 못 자고 있다. 그런데 채용이 준다니. 전염병 돈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설마 채용을 줄이기까지야 하겠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얼마나, 준다던가요?"
"글쎄, 공항 쪽은 꽤 많이 줄겠고, 교통도 그렇고 운송도. 도로, 철도 이런 데 다 줄지 않겠어요? 복지부 다음으로 국토부가 쳐맞을걸? 부동산 빼면 결국 다 여객 관련이잖아."
"..."
얼어붙은 최사원이 기류를 바꾸고 있다. 신경 써주다 되려 주변 공기를 얼려버린 신위원은 어찌할 바를 몰라 캐비닛 문짝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갑자기 뒤돌아 최담당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목을 조인다. 갑작스러운 헤드락에 어설프게 놀란 최담당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사람의 스킨향은 왜 이리도 독한 것인지. 머리가 띵하다.
"괜찮아, 인생 뭐 있나."
목이 점점 더 조여 온다. 최담당이 신위원의 가느다란 하완을 급히 두어 번 친다. 그러자 스르르 팔을 풀고 저만치 앞서 나가는 신위원이다.
"사람 줄면 잘됐지, 뭐. 일 편하고. 적체 줄고."
트는 동에 찬란한 햇빛이 환복실 문의 열린 틈을 타고 들이친다. 역광 효과로 새까매진 신위원의 실루엣이 고전 영화 같다.
"내가 먼저 라운딩이니까 유빈씨는 포스트 잘 지키다 나와요."
깔끔하게 떠난 신위원의 자리에는 시원한 잔향만이 남았다. 그 향과 최담당 단둘이 남아 앞으로 있을 채용을 섬세히 헤아려보고 있었다.
"그놈이 쩌어기저기저, 공가 아들이자너."
"아, 거기가 그래?"
"김가 딸래미도 있다드만."
"김가가 누구여?"
"왜 있잖어, 그 기술연구 1급"
조심성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들 조심성이 없다.
"유빈이, 아가야, 니는 아이재? 니는 아닐그라 믿어."
말없이 술을 한 잔 받아 드는 최담당이다. 분명 회식 금지 공문이 떴는데 왜인지 오늘도 술조합이 결성되고 말았다. 술판 뒤로 지급되어야 할 마스크 박스만 수십 개가 쌓여있다. 미개봉 상태의 저 박스가 마치 버려진 나와 같다.
"에에이, 서울대 나올 정도면 부모가 손 쓸 필요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옆에 앉아 말없는 최담당 대신 주거니 받거니 넉살 좋게 받아치는 신위원이다. 취기 오른 최담당은 준우 선배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고군분투하는 준우 선배를 돕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괜히 나섰다가 분위기만 망칠 게 뻔하다. 대체 비싼 돈을 주고 왜 에탄올을 사서 마시는 걸까.
"그 본사에 거 강짱돌이, 알지?"
"아? 아, 네. 뭐..."
또 시작이다. 회의 자료만 주구장창 인쇄하다 온 최담당이건만 아저씨들은 말을 시작할 때마다 의미 없이 그를 걸고 넘어진다. 어린아이들이 수족관의 수조를 한 번씩 툭툭 치듯이 무의미하게 사람을 건드리는 것이다. 우연히 배치를 본사로 받았을 뿐인데 꼬리표가 참 무섭다.
"강가가 대단했지. 뭐 결국 그리돼서 이리 왔지만."
"..."
"모르긴 몰라도 액세스공사에 강씨가 유독 많다아 그런 얘기여. 크흐."
"..."
'정대리님은 잘 지내시나? 영업에 이대리님도 참 좋으셨었는데... 아 이번에 과장 되셨던가? 좋겠다. 지아 주임님도 이번에...'
마음이 멀어지니 머릿속이 온통 딴생각이다. 몸은 중부 본부에, 머리는 본사에 있다. 채용이 준다면 이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여긴. 아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강미린가?"
"!"
오랜만에 귓전을 때리는 이름이 들린다.
"...예, 예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는 최담당을 보고 옆에 붙어있던 신위원도 놀란 눈치다.
"그, 왜 있잖아. 강미리. 공사 다니다가 들어온."
덥수록한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말을 잇는 부본부장의 묵직한 목소리에 귀가 곤두선다.
'맞다, 미리누나!'
"본사에 그런 애가 있어? 강씨여?"
괜스레 조마조마해지는 최사원이다. 미리 누나가 그럴 리가 없다. 그 똑 떨어지는 성깔로 보아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내 옆자리 동기 얘기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다 내 쪽으로 화살이 돌아오면 뺄 수도 없다.
"거기가 티에프 하다 그 사단났던 멤버 아냐? 강짱돌이랑."
"아아..., 그래서 주워왔다?"
화살은 돌지 않았다. 뜻밖에도 저쪽 공사 출신들의 옛이야기 속에 봉인된 미리 누나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는 아주 먼, 사뭇 거리가 있는 영화 속 배우 같은 사람이었다.
"에헤이, 아녀 아녀. 강짱돌이가 사람을 챙겨? 차함내."
손과 고개를 파닥파닥 내젓는 저 모양새를 보니 처장님의 이미지도 알만하다.
'그렇지, 사람을 챙기는 사람이면 나를 현장으로 내몰지는 않았겠지.'
아무래도 처장님은 적이 많은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빈 잔을 바라보다 엑스트라 같은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초라하다. 같은 신입이어도 결코 같은 신입이 아니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거리감을 현실적으로 느끼고 나니 기분이 새로이 더럽다. 어쩌면 퇴사를 꿈꾸는 이유는 이런 초라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최담당은 언제까지나 빛나는 아들이고 싶었다. 꼭 필요한 한 사람이고 싶었다.
"강대리님은 잘 계세요?"
"예에?"
취기 오른 신위원의 한 마디에 저 멀리 흘러가는 아저씨들의 대화에 차양막이 드리운다. 먼 귀가 홀연히 닫히고 가까운 귀가 열린다.
"미리 누님 잘 계시냐고."
"...아, 아세요? 미리 누나를?"
'쿵!'
"어허이, 저 신준우 저거 또 저런다. 야. 막내, 저 놈 숙소 가서 눕혀."
"아, 예... 예."
굽은 새우처럼 머리를 식탁에 처박은 신위원을 겨우겨우 끌고 나온 최담당이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미리 누나로 가득 찼다. 저쪽공사, 티에프, 강처장, 채용 비리, 그리고 미리 누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이 끝도 없이 뇌를 스치며 압력을 가한다.
"누님 되게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라고. 알아? 응?"
"아 선배, 쫌!"
의외의 무게로 최담당을 짓누르는 신위원의 입에서는 오류난 페이지가 모니터에 겹쳐 흐르듯 끝없이 미리 누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맑음
<감사실 이대리> 마음 같아선 싹 다 한 번 갈아엎고 싶은데
경력직은 채용 과정에서 객관적 평가 과정이 없었던 시절이니 오히려 문제가 없어. 문제는 신입인데... 전공과목 도입 전이라 필기는 그렇다 쳐도 처장들이 전부 면접위원이었다? 당시 처장, 현 처장 합쳐 스물. 저쪽 고위급과 친인척 관계인 처장이 셋, 업무상 친분은 전원 해당. 어? 실장님 메일 왔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회사 내부 친인척 관계라... 스물. 하고도 여섯? 아니, 잠깐. 이게 다 뭐야? 이 파일이 다가 아냐? 첨부 파일이 몇 개야 대체. 이게... 전부 다 리스트라고?
<전략처 강사원> 시작인가
가리는 것 많은 내가 이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는 게 액세스공사가 전직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증거겠지. 그놈이 그놈인데 다를 게 뭐 있겠어. 거기도 채용 비리로 골머리를 썩었으니 여기도 시작해야지. 강짱돌이. 어디 이번에도 빠져나갈지 두고 본다. 내 저주 리스트엔 언제나 당신이 부동의 1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