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스 공사 강모씨 (본사편)
2020년 1월 29일
'채용 비리의 온상, 액세스 공사'
'이대로 괜찮은가, 신의 직장 채용 비리'
'ㅇㅇ공사 본부장 강모씨 자녀 프리패스'
"어제 뉴스 봤냐?"
"야, 씨,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
"어우, 고향에서 전화 오고 막... 후..."
"설마 난 아니겠지? 아이씨, 우리 삼촌 전에 저쪽 공사 다녔다 그랬었는데."
"강모씨가 누구야? 그 강이야 저 강이야?"
수요일의 한중간을 가르는 액세스 공사의 화젯거리는 단연 간밤에 9시 뉴스를 장식한 '채용 비리' 건이었다. 각 처장들은 긴급 회의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쳐내기에 바쁜 실무진들은 뉴스보다는 눈앞에 산재한 과업만이 보일 뿐이다. 사심위로 바쁜 이과장은 통계 자료 반출로 왔다 갔다 정신이 없는 강사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미리씨 바쁘네. 하..."
"아? 아, 네, 죄송합니다. 19년도 자료 숫자가 안 맞아서 확인하려니 정대리님이 안 계셔서..."
"그래요, 알지. 숫자 더럽지. 나도 난데, 너도 너다 싶거든."
"죄송합니다."
감정이 섞이기도 전에 짧은 대화가 끝난다. 넥타이 사건 이후로 송차장과 약간의 거리가 생긴 이과장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사심위를 맡기로 했다. 전략처는 분위기가 다른 곳이다. 모든 일이 추상적인 이 부서는 무엇이든 하나 확실한 내 분장이 있어야만 한다. 명확히 눈에 보이는 숫자를 쳐내던 시절과는 다르다. 어서 이 유령 같은 업무에 적응해야 한다. 전략처에서 정대리의 뒤를 잇는 실무자로 자리매김하려니 일초가 아쉽다. 무엇보다 사심위 분장을 가져오면 저 능구렁이 중고 신입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전임자였던 정대리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쪽 공사 꼬리표를 달고 있는 강사원이 아래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잘못하면 잡아먹힌다.
'가만..., '강'?'
잠시 이과장의 머리에 강사원의 성씨가 스쳐 지났지만 역사 깊은 공사 신입으로 입사해 대리 달고 흙밭에 구르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 작고 귀여운 액세스공사에 연줄로 들어올 리가 없다.
'그치, 저 인간이 뭐가 아쉽다고...'
이과장은 헛생각을 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자도 와닿지 않는 사업심의위원회 규정을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
'소집 알림은 최소 21일 전...? 자료 송부는 7일 전으로 하며...?'
그간 단 한 번도 제 때 들어온 적이 없는 사심위 자료다. 영업 시절에는 사업 기밀 유지를 위해 자료 송부는 당일로 했었는데 정대리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구나 싶다. 돌이켜보니 언제나 매주 수요일에는 사심위 소집 관련 알림이 왔었다. 읽지도 않고 완.전.삭.제.를 클릭했지만 말이다. 정대리는 빠짐없이 규정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빠짐없이 어기고 있었다.
'하, 시*, 뭐 챙길 게 이렇게 많아.'
이과장은 극혐했던 오른쪽 부서들의 문서플레이의 근원을 깨달아가고 있다.
'일도 할 줄 모르는 것들이 종이쪼가리에 목을 메다니까 우리가 사업을 못 하는 거야.'
'일을 할 줄 아는 것들이 없고, 응? 감사가 뭐 바로 들어오나? 응? 4년 후에, 10년 후에 들어오는 거여.'
분명 한차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송차장도 틀리지 않다. 이과장은 몇 달 전 정대리가 그러했듯 두 팔을 데스크에 걸쳐둔 채로 키보드 위로 손목을 가볍게 든다.
"흐아!"
된숨을 내쉬는 고개가 그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이과장은 아직 자신이 사무실 왼쪽과 오른쪽의 입장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다.
"60명, 아니. 100명?"
감사실 분위기가 심상찮다. 머리를 모은 사람들이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고개를 살짝 들고 눈동자를 굴리며 그들을 번갈아 보는 이대리다. 감사실의 부름에 새벽부터 홍보처 사람들이 감사실로 모여든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도 모르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지침을 줘야할 거 아냐?"
언론사의 자료 공개 요청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홍보처장이 이를 악물고 조용히 악을 쓴다. 감사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제보인지도 알지 못한다. 몇 주 전부터 블라인드가 들끓더니 일주일 전에는 웬 기자가 건물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감사실 침입을 시도했다. 그날 홍보처장은 사장 주재 회의로 18층에 내려와 있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다 우연히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감사실 앞에서 경비원에게 끌려나가며 기자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노라 호언장담하는 정신병자를 하나 보았던 것이다.
'날 추우니 별놈이 다 기어들어오네.'
1층 로비를 무사 통과해 18층까지 올라온 것이 의아했지만 일이라고는 도통 모르는 바지사장을 마주하는 무의미한 회의보다는 정신병자 구경이 더 흥미가 있었다. 그의 목에 걸린 처절하게 생겨먹은 사원증과 네 귀퉁이가 닳아버린 가슴팍의 녹음기가 유독 눈에 거슬렸지만 못 본 체 하기로 했다. 어차피 국토부에 드나드는 기자는 이미 다 안다. 생경한 저 모양새는 기자가 아닐 것이리라. 이해도가 바닥을 치는 사장 탓에 반도 못 온 회의 탓에 방심한 것이다.
"100명은 더 될걸?"
감사실장이 감사실 귀퉁이 쪽방에서 나오며 한 마디 툭 던진다.
"야! ...잇."
"뭐."
저쪽 공사 동기인 감사실장과 홍보처장 사이에 급격히 장벽이 허물어진다.
"재희 인마, 너... 그러는 거 아냐."
"내가 뭐."
"..."
홍보처장이 주변인들을 인식하는 듯 잔뜩 움츠린 목을 하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래서. 그.... 얼마나... 심각한데?"
"모르는 사람도 있냐?"
"..."
이대리는 두 사람의 대화가 불편하다. 이대리처럼 신입으로 입사한 사람들은 입사 후 새로이 출발한 공기업의 신선한 분위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이 꼴이다. 정년까지 꽉 들어찬 타기관 아저씨 아줌마들이 경력직으로 넘어와 새 회사를 꾸렸다. 입사하고 나서야 이곳이 그들의 회사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대리였다. 다른 이들도 다를 것 없었다. 정대리도, 최사원도 멋도 모르고 신생 공기업에 지원해 못 볼 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야, 그래도... 그, 거기보단 낫잖아. 거긴... 8촌에 걸쳐서 다니잖냐. 우린 뭐, ...안 그러잖아."
"그래서."
"..."
"일이 이 마당인데 그게 될 말이냐?"
"..."
한숨을 몰아쉬더니 이대리가 신경 쓰이는지 곁눈질을 하며 마주 앉은 유실장과 말을 이어가는 홍보처장이다.
"하이씨, ...넌 구린데 없고?"
"넌. 있나 보네."
입이 바짝 마르는 홍보처장을 한동안 꿰뚫는 듯 바라보던 유실장이 이 대리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대리, 알지? 여기서 나오는 말은 함구하고."
"네."
침묵이 흐른다.
"..."
말없는 홍보처장이 두 손을 모아 엄지끼리 맞부딪치며 고개를 까딱까딱 흔든다.
"담배 태우든가."
실내 담배가 허용된 유일한 곳, 감사실의 소파에 자욱한 구름이 드리운다.
"니들은 여 이대리도 그렇고, 그 누구야, 그놈, 택이도 그렇고 여긴 다 신입이었잖아. 우린 경력 아니면 안 되는 일이고. 하아."
입이 터진 홍보처장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음, 그런 점에서는 감사실이 운이 좋았지."
유실장의 맞장구에 경계태세가 수그러든다.
"까놓고 말해서. 씨, ...경력직은 전부 다 채용 비리지, 이 씨*."
흩날리는 1급 발암물질들도 까딱이는 고개만큼은 멈추지 못한다.
"관리를... 하지 그랬냐."
까딱이던 고개가 딱 멈추더니 정면으로 쏘아보는 홍보처장이다.
"이 씨*, 관리를 하긴 뭘 어떻 게 해, 씨*. 일을 해야 할 거 아냐, 아무것도 없는 회사 처음 열고, 씨*, 얼마나, 어? 필요도 없는 회사 만들어놓고, 씨*, 맨땅에 헤딩도 그런 헤딩이 어딨냐? 앙?"
이대리는 급발진하면 입에서 욕파티가 벌어지는 인간들로 둘러싸인 업무환경이 새삼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실장이 부탁한 자료 확보를 위해 담배연기를 마시며 소파 구석에서 녹음을 뜨고 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이직하리라. 타기관으로 가자. 이 정도로 더럽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찰 때쯤이었다.
"나는 ...했어."
"뭐?"
"나는 관리를 했다고."
"뭔 개소리야."
짐짓 놀란 이대리가 유실장의 동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의 혀에서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고백이 흘러나온다.
"열 명도 아니고 백이다."
"..."
"난 잘라 냈지. 지난 달에."
홍보처장의 손끝에서 타다만 담배가루가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혐오와 깨달음으로 일그러진 얼굴의 모가 점점 더 줄어든다.
"우리도 하나 있었거든. 낙하산 꼬마."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맑음
<티에프팀 정대리> 이게... 전부 몇 명이야?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은 했었지만 의혹자만 백이 넘어? 일단 이번 주에 전수조사 방침으로 보고 하나 올리고, 대국민 성명 시나리오 두 개에 비상 체제 가동... 가만, 이거 직위 해제가 몇 명이야? 몇을 내려는거지? 해당자 전원... 아닌가? 하, 씨. 관뒀어야 했는데 또 남는 사람들끼리 몸 갈아 넣으라고? 아무래도 나,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봐.
<감사실 유실장> 한 번은 정리하고 가야 할 일
수두룩 하구만. 경력직만 수십이니... 인원 많은 현장이 더 심각한데 일단 회사는 굴러가야 되니 본사부터. 강짱돌이가 어디까지 버티려나? 팔다리 잘라내고 나면 남는 놈들도 보이겠지. 니들의 회사가 아니라 이거야. 쓸고 쓸리고 나면 곧 이 유령 회사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때 이후로 16년 만인가? 난장이 한 번 올때가 되었어. 예나 지금이나 어차피 원흉은.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