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개편

2020년 2월 10일

by 선량한해달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과장이 없어진다? 대리도 책임이고, 과장도 책임이고? 이게 무슨 짓이지?'


모 과장이, 아니, 책임이, 인사처, 아니, 인사복지부문의 막내와 멱살잡이를 했다는 소문이 19층에 퍼진다. 과장은 과장대로, 대리는 대리대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주임은 구 과장 카르텔과 구 대리 카르텔이 눈에 띄게 갈라선 모양새를 보며 이번 조직개편의 파장이 클 것 같다고 예상한다.


"책임님, 티에프팀 통계 자료 요청 메일 드렸습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임님, 저 책임이에요? ...하, 너무 싫다. 돈은 대리 돈 받는데 왜 과장 것까지 해야 돼?"

"아, ...네."

"전략처, 아니아니, 이제 기획재정부문이던가 거기? 그럼 우리꺼보다 먼저 해드릴게요. 17시까지면 되죠?. 보내고 전화드릴게요."


어색한 호칭이 입에 붙지 않는다. 온 회사가 혼란스럽다. 처에서 부문으로, 차장은 수석, 과장과 대리가 통합되며 책임, 주임과 사원이 통합되며 주임이 되었다. 강주임의 예상대로 수석, 책임, 주임제로 개편되며 통합된 직급 중 책임 직급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과장은 권위를 상실했고, 대리는 책임을 떠맡았다.


"참 내, 책임? 기껏 과장 달았더니!"


이과장의 볼멘소리가 강주임의 귓전을 때린다.


"어이구야, 거긴 승진해서 좋겠네, 우리 땐 2년은 지나야 주임 달았는데. 것도 자리가 있는 처나 그랬지. 어딜 막 신입이 주임 소릴 들어? 하기사 돈은 사원이나 주임이나 원래 같았으니까, 같은 6급 아냐, 그치?"


강주임은 이책임의 핀잔에 대꾸하기 않기로 한다. 숫자에 민감한 작업 중이다. 통계 추출 중에 공중에 던져진 의미 없는 질문에 대꾸해줄 의리는 없다. 묻는 이도 없는데 허공에 대고 혀를 놀리는 꼴이 제법 구 과장답다. 과장, 대리급의 불만과는 동떨어진 송수석이 공문 몇 장을 들고는 황급히 기재부문 라인으로 들어선다.


"우리 부문은 말여, 응? 공문 오타 내지 말고, 응? 쩌어기 저.. 이봐 이거."


귀퉁이가 닳아 힘없이 날리는 공문을 들고 흔드는 송수석이다. 종이 몇 장이 흡사 휴짓조각 같다.


"영업, 시설. 이것들 난리도 아녀. 아직도 영업처, 시설처라니께? 응? 과거들을 살고 앉았어. 우리 부문은 절대 안돼이, 응? 잘 하자이."


이번 조직개편의 주역인 송수석은 쏟아지는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사무실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닌다. 괜히 양조장 송씨가 아니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구 과장들의 주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보다 오늘 있을 개편 기념 술파티가 더 기대될 뿐이다. 수석들끼리 한 번, 책임으로 전락한 과장급들과 한 번. 그는 적어도 두 번의 거한 술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이책임, 따라 나오고."

"넵"


강주임은 두 사람의 담배 타임이 반갑다. 드디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숫자를 추출해 합치고 나니 벌써 17시. 메일함을 열어보니 티에프팀의 메일 한 통이 전부다. 참으로 신성한 정민 책임이다.


'그래, 이 와중에 통계 보낼 정신들이 있겠어?'


구 과장들의 반이 급히 반차를 내고 사무실을 떠났고 나머지 반은 담배 타임 중이다. 그 중 반은 송수석의 술조합에 합류하기로 한 듯하다. 주임들만이 남아 있는 괴상한 사무실의 공기를 뚫고 웬 시커먼 사람이 날렵한 바짓가랑이를 펄럭이며 기재부문 쪽으로 다가선다.


"미리 주임님, 이로운 책임님은요?"


감사실 이 책임이다. 한창 티에프팀의 통계치를 눈여겨 보던 강주임은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억지로 입을 열어 대답한다.

"아, 예. 담배 피우러 가셨습니다."

"...으응. 그래...요?"


숫자에 집중한 나머지 시야가 좁아진 강주임이다. 그를 지나 쌩하니 떠나는 이책임을 따라 작지 않은 바람이 인다. 바람결이 각 부문의 끝에 앉은 막내들을 각성시킨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욥."/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익살맞은 막내 주임들의 인사에 오른손을 살짝 들어 품위 있는 손짓을 남기는 이책임님이다. 19층 중앙문으로 빠져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기재부문 쪽을 흘깃 보니 엉거주춤 서있는 강주임이 보인다. 드디어 숫자에서 눈을 뗀 강주임이 그제야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책임은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짧게 목례를 하고는 휙 돌아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어으~ 뭐야, 기분 나쁠 뻔했잖아.'



<14기 신입 단톡방(13)>


(인사 김규빈)

하... ₃


(재무 유미)

우리 전략이랑 합쳐진거? ₃


(인사 김규빈)

몰러... 19층 분위기 어때요 ₃


(재무 유미)

개판 ₃


(인사 김규빈)

어제 김과장 쌍욕하던데 신발놈 ₃


(영업 최단)

왜 너한테?? ₄


(인사 김규빈)

내말이 ₄


(재무 유미)

하여간 승질머리들 하고는... 대리님들 빡쳤던데 ₄


(인사 김규빈)

나 같아도... ₄


(기재 강미리)

대화중 미안한데 우리 이름 좀 바꿔야하지 않을까? ₄


(인복 김규빈)

그러네. 누나 고마어... 다음 조직개편 전엔 나가자 모두 ₄


(영관 최단)

우리도 현장 쌩난리.... 못 다니게땨... ₄


(인복 김규빈)

나도 쌍욕 머금... 센터라고 이름 붙였다고 난리던데... 본부에서 센터로 격하됐다고 ㅈㄹㅈㄹ ₄


(영관 최단)

기분 더럽다고 나한테도 ㅈㄹㅈㄹ ₄


(인복 김규빈)

너나 나나 뭔죄냐. 송저씨가 한건데 ㅅㅂ ₄


(기재 유미)

야 내 말 죰.. 기재부문은 뭐야? 전략이랑 합쳐지면 처장이랑 수석이랑 꼬여서 뭐 어쩌자고?? ₄


(인복 김규빈)

나도 몰라요 누나 송씨한테 무러바 ₄


(기재 유미)

미리언니 나와봐요 뭐 좀 들은 거 없어? 거기서 바꾼 거자나 ₄


(기재 강미리)

다들 통계 자료 주고 퇴근 부탁욤... 기다립니다. ₄





2020년 2월 10일 월요일 흐림


<티에프팀 정책임> 멋대로 책임 달아놓고 뭘 또 시키려고

여우 같은 놈들. 내가 뭐 하나라도 더 하나 봐라. 일 안 하는 데 목숨을 건다. 수당도 없이 포괄임금에 최저 연봉 주면서 뭐? 과장 일을 하라고? 웃기고들 있네. 원래도 일 안 하던 놈들이 이제 구실까지 생겨서 대리한테 다 떠넘기려는 거 모를 줄 알아? 송저씨 술조합들한텐 천벌이 내릴 거야. 내려야 돼. 미친*들. 미친*들. 미친*들.


<감사부문 이책임> 살곰살곰 거슬린단 말이지

저거 저래서 오빠한테는 잘하나? 민이 언니 없으니까 살판나셨다? 전부터 음침하니 별로였는데 민이 언니가 좋아해서 봐줬거든 내가. 최유빈이 그 새*가 워낙 난 놈이라 상대적으로 예의 있어 보이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꾸벅 인사하는 꼴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단 말이지. 재무 유미씨 같은 싹싹함이 없어. 우리가 어떻게 단 주임인데 입사하고 반년도 안돼서 막 달아? 안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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