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까맣게 잊곤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엄마도 본래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사실. '누구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던 시간이 있었다는 생경한 사실 말이다. 어찌 보면 많은 이들에게 있어 엄마의 존재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자판기 마냥 매 끼니마다 딱딱 차려지는 밥상과 위즐리 부인이 마법이라도 부린 듯 자동으로 깨끗해져 있는 집은 사실 엄마의 노동으로 유지된 럭셔리였다는 것을 자취 후에나 알게 된다.
나는 엄마가 아팠던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녀라고 아프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강철 인간도 아닌데. 그저 숨겼을 것이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나는 엄마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 낱 치킨 닭다리 하나도. 그녀에게 있어 우선순위는 자신이 아닌 자식이었으니까. 엄마의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그 은하에서 내가 태양이라면 엄마는 자기 자신을 그저 위성쯤으로 강등시켰다.
내 나이쯤의 엄마는 이미 자식이 2명이나 있었고, 그 시기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딘가 다 큰, 성숙한, 책임감 가득한 어른의 느낌이 난다. 막연히 시간이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어느 기점으로 여자들은 디지몬 마냥 뿅 하고 성숙해져서 엄마나 할머니로 진화하는 줄로. 하지만 서른이 된 나는 가끔 철없는 중학생 같고, 오버를 떨기도 하며, 지금 이 글의 타이틀에도 개쩌는 따위의 형용사를 쓰고 앉아 있는 것이다.
여자는 저절로 엄마로 진화하지 않는다.
사회는 마치 여성이 삶의 어느 기점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자애로운 어머니와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어깨에 한 손을 차분히 얹으며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써 자아는 이제 그만 접어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둘 때라고. 당신 자신으로 존재하기보다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되라고. 당신의 희생은 아름답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고. 그보다 단면적인 시선이 있을까. 나 역시도 그런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나 할머니에 대해서는 더더욱. 나에게 있어 할머니는 모든 걸 통달하고, 오직 사랑뿐이며, 조용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80살이 넘은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나의 편견을 망치로 부수고 그 조각난 편견을 다시 한번 1톤 트럭으로 친절히 즈려밟아 주었다.
드라마는 40년 넘는 결혼 생활을 한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남편인 로버트와 솔이 사실 자기들은 게이고, 몇십 년 간 서로를 사랑해 왔으며, 이제 그만 서로와 함께 행복한 마지막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3타 개막장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다. 화장품 브랜드의 전 CEO이자 빈틈없이 철저한 그레이스와 자유로운 영혼의 히피에 타이다이 원피스를 즐겨 입는 프랭키는 그야말로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되면 서로에게 의지하며 진정한 인생의 파트너로 거듭난다.
재밌는 것은 그녀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할머니의 삶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들은 여전히 유치하게 싸우고, 질투심을 느끼고, 오해를 산다. 드라이 마티니를 잔뜩 마시고 말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지고, 일상은 작은 모험과 사건들로 가득하며, 무엇보다 꿈을 꾼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사치재로 취급되는 꿈을. 별 기대 없이 드라마를 시작했던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고, 진심으로 그녀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졌으며, 포카칩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런 게 있었다고...? 완전 난장판이지만, 멋진데?'
매우 자주, 여성은 엄마나 할머니가 될 때 존재와 욕망을 표백할 것을 강요받는다. 드라마는 그런 편견과 정면 승부하면서 '인생에 통달하는 순간은 오지 않구요, 당신의 삶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과 Shit이 뒤범벅이 된 난장판일 테지만 그게 바로 인생의 묘미죠'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찾았다. 내 꿈은... 개쩌는 할머니가 되는 것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나를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바로 '쩌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는 꿈. 그 전에도 나라면 막연히 자유로운 할머니가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조용히 난롯가에 앉아서 뜨개질하는 게 몇 없는 옵션인 줄 알았지. 하지만 이젠 다르다. 나는 제 멋대로 살고, 여전히 꿈을 꾸며, 드라이 마티니를 간지 나게 마시고, 내 바운더리 밖으로 용감하게 진출하고, 그러다가 쪽을 당하고, 하지만 금방 다시 회복하는 그런 개쩌는 할머니가 되련다. 우리 엄마와 함께.
덧붙이는 말로, 과거의 엄마에게 미래의 딸로서 전보를 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매 끼 새 밥을 안 먹여도 돼. 난 부대찌개를 끓일 수 있고 사흘 지난 것도 잘 먹는 걸. 내가 두 시간마다 일어나 빽빽 울어 대면 그냥 옆 방에 두고 혼자 그칠 때까지 내버려 둬. 외국 엄마들은 다 그렇게 한대. 가끔은 이기적으로 엄마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사고 싶은 거 사. 철들지 않아도 괜찮아. 알잖아, 그래도 난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거야.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브런치 독자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다름 아니라 그동안 제 글에 공감하고 소통해주신 독자 여러분 덕에 2월 중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따로 연락 주셔서 언젠가 브런치 글을 출간해 달라고 응원해주신 독자 님도 몇 분 계셨는데 이 글을 보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계신 방향으로 절을 올립니다..!
책의 주제는 '여성으로서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삼켰던 말들과 억지로 지어 보였던 미소를 버리고,
당당하고 뻔뻔하게 스스로가 정의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실용적인 가이드를 여러 개 제시했고, 제 경험에서 우러러난 에피소드도 많이 공감이 가실 것 같습니다.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이 책이 몇 여성 분들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출간하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책에 기록된 경험과 교훈을 통해 지금의 저 역시 과거의 제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시행착오를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덜 겪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집필했습니다.
특히 한 번이라도 아래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은 특히 공감이 가실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기분 나쁜 말에도 억지로 웃어본 적
✔️쌀쌀맞은 여자라고 프레이밍 당하고 싶지 않아 미소 지은 적
✔️나보다 남의 욕구를 우선한 적
✔️무례한 참견에 대응하지 못했던 적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이라는 젠더 박스에 스스로를 가두려고 했던 적
✔️ '난 원래 공감 능력이 부족해'라는 맨스 플레인에 속았던 적
✔️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겨 준 적
책에 관심이 가는 분이 있으시다면 현재 출판사 인스타그램 페이지(https://www.instagram.com/p/CLYpGtxlUJJ/?utm_source=ig_web_copy_link)에서 리뷰어를 모집 중에 있습니다.
간단히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면 된다고 하니 다음 주 수요일까지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제 마음은..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시고 조용히 좋아요를 눌러주셨던 브런치 독자 여러분이 꼭 당첨되셔서 책이 어떤지 알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