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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선비 Sep 19. 2024

다 돈이다

  도대체 살 게 얼마나 많은지, 그 끝도 없는 구매목록에 나는 매일 아연실색이다. 주저앉고만 싶다.


  숨만 쉬어도 돈은 나간다. 먹고 자고 싸는 생활비용 일체만을 감당하기에도 벅차 숨을 몰아쉰다. 무릎이 빠지도록 한 달 간 일을 하면 매달 중순께 새벽에 월급이 들어온다. 그 돈은 분명 내가 내 몸을 갈아서 번 돈인데, 그 돈 전부가 내 것이 아니다. 그 돈의 상당 부분은 나라의 것이고 과거의 것이고 미래의 것이다. 월급에서 원천징수되는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는 내 나라가 거두어가는 몫이고,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대출원리금과 카드값은 지난달의 내 삶이 징발해가는 몫이고,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연금은 먼 훗날의 생존을 담보로 내 미래가 가압류한 몫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인생인데, 시작부터 생의 바닷속에 득실거리는 백상아리들로부터 몇 백만 원을 가차 없이 물어뜯기고 나면 남는 것 없이 초전박살이다. 이제 살점 몇 조각과 뼈다귀만 남은 앙상한 돈 몇 푼을 수확이랍시고 집으로 가지고 와서는 다음 달 식비와 관리비와 보험료와 통신비와 경조사비와 분유값과 기저귀값 등등의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항목들을 어떻게든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인데, 찌꺼기만 남아 너덜거리는 볼품없는 계좌 잔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는 아찔하고 가슴은 답답해서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만약 13년 된 중고차가 고장이라도 나거나 몸이 어디라도 크게 아프게 되는 순간 그달은 또 몇십만 원이 추가로 깨진다.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삶은 전쟁 같은 삶이며, 벼룩의 간은 물론이거니와 염통과 콩팥과 창자까지 전부 뜯어감에 얼마 안 되는 남은 부위로 살아가는 맛은 힘겨워 죽을 맛이다.


  6년 전, 취업에 성공하고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손에 쥔 액수가 생각보다 너무 적음에 민망하였지만서도 앞으로의 일상을 꾸려가는 것에 지장이 있을 것이란 막막함까진 없었다. 그렇다, 그땐 분명 희망과 전망이라는 게 있었다. 그러나 고작 몇 년 사이에 물가는 날아올랐고, 그에 반해 내 소득 수준은 제자리였고, 내 소득의 정수리 위에서 고공비행하는 물가는 생활고라는 폭탄을 머리 위로 마구 투하했다. 여기저기로 폭탄이 떨어짐에 이를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궁상맞은 삶의 자세는 묘기에 가까울 만큼 기묘해지며, 이쪽저쪽으로 얻어맞은 폭격에 일상은 무너지고 여유는 실종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그래서 뭘 어쩌겠으며 누굴 탓하겠으며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살아가야 한다. 살다 보면 살아지게 된다는, 논리도 대책도 없는 주문을 애써 외워본다. 살아내야 한다. 전쟁이 났으면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자 보급이다. 안정적인 물자 공급을 위해 오늘도 가계부를 쓰며 다음 달 작전을 짜본다. 올해는 일단 추석까지 어떻게든 막아내었으니 이제는 아버지 생신과 장모님 생신과 크리스마스가 남았다. 다가올 겨울 난방비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쉽지가 않다. 쉬운 건 없다. 쉬웠던 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몇 년 전까지는 분명 순대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이면 만 원 한 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그것은 가벼운 주머니사정에도 주린 배와 추운 마음을 넉넉히 달래줄 영혼의 한 끼였으며, 금요일 저녁에 만 원으로 만끽하는 수수한 호사였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즐거움을 누리려면 만 원짜리 두 장은 있어야 한다. 같은 양의 즐거움이 두 배 가까이 비싸진 것이다. 그러니 즐거움을 절반으로 줄이거나 버는 돈을 두 배로 늘려야 하는 노릇인데, 전자는 쉽지 않으며 후자는 매우 어렵다. 나는 이제 소주를 밖에서 5천 원(또는 6천 원!) 주고 사 먹는 미친 짓은 사무실 회식이 아닌 이상 하지 않는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소주는 여럿이서 왁자지껄 마시는 우정의 술에서 혼자 조용히 마시는 고독한 술로 변화한 지 오래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면 1,800원이지만 마트에서 사면 1,550원이다. 250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퇴근길 먼 길을 돌아 마트를 들러 소주 한 병을 사서 가방에 질러넣고서는 집으로 간다. 애당초 소주를 안 사 먹으면 그 1,550원마저 아낄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번씩 숨은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 양치를 하기 위해 얼마 안 남은 치약을 있는 힘껏 짜본다. 더 이상 안 나올 것 같아도 눈에 핏발이 설만큼 쥐어짜면 양치 1회분의 치약은 어김없이 나온다. 그렇게 계속 짜다짜다 정말 더 이상은 안 나올 것 같으면, 칫솔을 세면대에 걸쳐 올려놓고, 치약 튜브를 맨 아래에서부터 손으로 눌러 내용물을 위쪽으로 최대한 끌어올린다. 그 후, 양손으로 치약 대가리를 있는 힘껏 쥐어짜면 최후의 한 덩이가 입구 밖으로 나올랑말랑 삐질거리는데, 부들거리는 손으로 칫솔모에 그 마지막 한 덩이를 긁듯이 올려놓으면 성공이다. 쥐포처럼 납작해진 치약은 그제서야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내핍은 서커스와도 같이 기이한 자세로 생활을 통과해나가는 생존기술이다. 궁상 떠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고 느끼며 피식거리다가도, 올라간 입꼬리 안쪽에선 피할 수 없는 씁쓸함이 한 번씩 입 안 가득 맴돈다. 치약 튜브를 가위로 잘라서 그 안쪽 표면에 묻어있는 것들까지 긁어내어 양치해볼까 생각했으나, 그렇게까지 하면 그날 하루가 더없이 비루해질 것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지난 주까지 회사에서 쓰던 치약. 주인을 잘못 만나 마른안주처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괴롭힘을 당하는 치약은 한 덩이도 남김없이 내용물을 토해낸 후에야 비로소 버려진다.


  며칠 전 아내가 팥빙수를 사 왔다. 옆동네 빵집에서 파는 5천 원짜리 싸구려 빙수다. 첫 입을 먹더니만, 아내는 빙수에 들어간 통조림 파인애플이 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내는 아깝다며 찡그린 얼굴로 빙수를 기어코 몇 입 더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두어 숟갈을 더 시도하더니, 아프기라도 하면 아기를 볼 수가 없다며 그제서야 빙수를 싱크대에 버렸는데, 그러고서는 또 곧이어 빙수 샀던 5천 원이 너무 아깝다며 한참을 자책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작 5천 원일 뿐이지 않냐며 위로하였지만, 어느샌가 아내도 나처럼 돈 몇 푼에 절절매는 사람이 된 것을 보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돈도 많이 못 벌면서 맨날 돈돈거리는 남편을 옆에 두었음에 아내도 자연스레 한두 푼에도 민감한 체질로 변한 것이다. 돈 못 버는 남편은 아내로 하여금 5천 원에 하루 기분을 저당 잡히는 삶을 살게 만들었다. 나는 혹여 어린 아들마저도 나중에 그렇게 될까 봐,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 가족의 풍토병이 될까 봐 두렵고 죄스럽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넉넉한 돈으로 가족을 돈 걱정 모르게 돌봐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남들 앞에서 아버지를 자랑했으며, 커서 뭐가 될진 몰라도 아버지처럼 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외쳤던 아버지처럼 사는 삶이란 돈을 많이 벌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그리고 그게 절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임을 아둔했던 나는 오래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아버지는 돈이 없어도 가정에 심신을 바쳤을 헌신적인 사람이었지만, 아버지가 베풀었던 그 가족애라는 것은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더욱 원활하게 작동하고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법이다. 아버지처럼 돈을 벌어 가족을 먹이고 입힌다는 것은 내 능력으로는 택도 없는 것임을 나는 직접 돈을 벌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렸을 적 공부만 하고 책만 읽을 게 아니었다. 공부를 할 거였으면 기가 막히게 잘했어야 했고, 책을 읽을 거였으면 목숨 걸고 읽었어야 했다. 아버지의 경제력에 기대어 편하게 살았던 방구석 유생은 너무 순진했고 현실감각은 전무했다. 세상은 사농공상이 아니라 상공농사이거늘, 아둔했던 나는 그걸 모르고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며 내 마음에 드는 쉬운 선택만을 골라 해왔으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해 있었다. 나이는 먹어가고 밥값은 벌어야 했음에 결국 무난한 선택지를 찾아 쫓기듯이 취업하게 되었고, 변변치 못한 돈을 벌게 되고 나서야 나는 나의 무능함과 돈의 전지전능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나는 나를 직시한다. 나는 누구인가.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보이지 못한 아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못 미더운 사위. 이번엔 반대로 나를 기준으로 나의 가족들을 정의해본다. 나의 가족들은 누구인가. 자식 농사에 실패한 부모님. 사위 선정에 실패한 장인장모. 결혼 상대를 잘못 고른 아내. 아빠 뽑기에 실패한 아들. 볼품없는 현실이 나만의 것이었다면 모르겠으나 가족들의 일상마저 저렴해지는 걸 보는 것은 맨 정신으로는 힘들다. 냉혹한 현실이라고 자조하기엔 이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며 자초위난이다.


  아기를 위해 무언가를 구매하려는 때에 돈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은 아비 된 자를 얼마나 초라하고 서글프게 만드는가. 벗어날 수 없는 돈의 굴레 안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비루하고 비참한 일일진대, 그것이 부모 된 입장에서는 더욱이 비통한 비극으로 다가온다. 새 육아용품이 필요해도 웬만하면 중고를 먼저 찾게 된다. 몸에 좋다는 외국산 분유 대신 값싼 국산으로 애써 눈을 돌린다. 돈이 넉넉했다면 아들이 가져갔을 새 유모차와 고급 분유를 돈이 없는 내가 빼앗아간다. 철없던 지난 인생, 게을렀던 지난 과거가 아들의 몫을 야금야금 빼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선택들이 한탄스럽고 천하태평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움에 때늦은 탄식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나온다. 아,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었어야 했는데···. 아, 더 좋은 곳에 취직했었어야 했는데···. 어렸을 적 나의 태만함과 안일함이 내 아들 앞에 놓여진 삶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로되, 이미 늦었다. 나의 과거와 아들의 미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혈연이라는 핏빛 실로 이어져 있다. 나의 순간의 선택과 오늘의 태도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 아들의 저 멀리 미래에까지 분명히 가닿아 있고, 그렇게 뻗어간 피의 명주실은 부자지간이라는 날카로운 갈고리에 묶여 아들의 운명 여기저기에 꿰어져 있다. 내가 잘못된 판단으로 엉뚱하게 움직이면, 그에 따라 아들의 미래도 덩달아 잘못되고 우스꽝스러워진다. 이것은 피로 연결된 혈연이기에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피의 꼭두각시 놀음이며, 내 손으로 내 아들의 목을 쥐고 있는 꼴이다. 발걸음 하나도 조심히 내딛어야 한다. 나의 오늘이 아들의 미래를 인도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것이다.


  돈이 많고 적음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집집마다 척도가 제각각이므로, 내 삶이 누군가에겐 꽤나 곤궁해 보일 수도, 혹은 대단히 풍족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 그것은 방금 말했듯 지극히 상대적임에 나의 저울과 남의 저울은 같은 무게를 달아도 같은 눈금을 가리키지 못한다. 나는 나의 저울을 바라보며 내 삶의 현실을 저울질하고 내 맘속 욕망을 가늠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매일 악착같이 아끼고 긁어모은다. 티끌 모아 태산은 못 되어도 야트막한 동산 정도는 될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쉬지 않고 기어코 떠오름에 오늘 가까스로 채운 배는 내일 또다시 꼬르륵거릴 터이고, 따라서 내일도 주릴 배를 위해 오늘도 돈을 모아야 한다. 다 돈이다. 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내고야 마는, 돈에 완전히 찌들고 절여진 저열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나에게서 어느샌가 지독한 돈 냄새가 난다. 나에게는 있지도 않은 돈 냄새가······. 아내와 아들이 이 냄새를 맡을까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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