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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 미세스

by 야간선비

마치 지하철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것처럼,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 지금 여기가 무슨 역인가 싶어 고개를 들면 언제 벌써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인생을 통과하는 속력은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10대가 시속 10km라면 50대는 시속 50km다. 시속 30km만 되어도 차창 밖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 힘들다. 아직 나에게 있어 남은 생은 무한해 보이는데, 그 위를 달리는 속력은 점점 빨라져 간다. 끝은 정해져 있고 나이듦에 감속은 없다.


올해도 막바지다. 적응할 겨를 없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공기는 차갑고 건조한데,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코를 통과하면 그 서늘함에 놀란 허파가 들숨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옹송그린다. 겨울 초입의 바람에는 풍화된 낙엽 부스러기의 빛바랜 냄새가 섞여 있다. 길바닥의 낙엽들이 바스러지며 풍기는 메마른 풀냄새가 바람줄기마다 묻어나고, 이 냄새를 맡게 되면 나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몸으로 알게 된다. 봄에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노릇이 익숙지 않아 하루하루를 허우적대며 넘기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마감 직전이다.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 한 이 작은 아이를 내 앞에 내려놓을 때, 나는 무엇에서부터 무엇까지를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아기를 키워보니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대단해 보인다. 나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비롯하여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그네들의 자식들을 먹이고 키웠고, 그렇게 우리 모두 여기까지 왔다. 잠자는 법과 이불 개는 법, 양치하는 법과 똥 닦는 법, 젓가락 쥐는 법과 뒷정리하는 법, 가나다라와 에이비씨디, 각종 사회규범과 도덕관념···. 그 모든 것들을 가르침 받아 세상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일을 하고, 식당 앞에서 순번에 따라 알아서 줄을 서고, 신호등 적색신호 앞에서 스스로 차를 멈춰 세운다. 집집마다의 규범들과 식탁마다의 밥상교육이 한 데 모여 이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것인데, 정부의 국정방침이나 금융당국의 경제정책 같은 것들은 그다음 일이다. 사회가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고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계속하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그 생명력과, 엎치락뒤치락 격동하고 변화하면서도 아수라가 날뛰는 혼돈까진 이르지 않는 그 자제력은 결국 가가호호의 젓가락질과 가나다라에서 시작한다. 그 벽두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식탁에는 자식을 키우고 먹이는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앉아있다. 그들을 그저 아저씨와 아줌마라고 가볍게 부르기엔 그들 모두는 너무나 대단해서, 나는 그들을 미스터 앤드 미세스라 부르고 싶다.


미스터와 미세스는 외관만을 놓고 보면 볼품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말쑥하지 못한 채 후줄근할 수도 있고, 유행이 한참 지난 촌스러운 옷차림일 수도 있고, 뱃살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것들을 신경 쓸 겨를 없이 거친 삶을 돌파하여 여기까지 왔음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만 해내어도 시간은 쏜살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그 시간 속에서 온갖 고민걱정에 머리는 아프고 밤잠을 줄여가며 일만 하다 보니 몸은 망가진다. 그렇게 매일을 버티고 주변을 지키며 지금껏 살아온 사람들이다. 삶의 바닥에 무릎이 으깨지고 세월의 칼바람에 영혼이 베이면서 그렇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인 것이다. 중장년들이 짊어진 생의 무게는 눈에 보이진 않아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청년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게 된다. 아, 이것이 이토록 무거운 것이었구나······. 반드시 직접 들어봐야지만 알 수 있게 되는 생의 중압감을 처음 짊어지고서, 어깨가 부서지고 허리가 꺾일 것만 같은 고통과 위기를 느끼게 되는 그 순간 세대 간의 소통은 비로소 이루어진다. 꼰대로 불러왔던 그들의 노고와 수고를 몸소 느끼면서 청년들은 그렇게 미스터와 미세스로부터 짐을 넘겨받는다. 생의 주기에 따른 임무교대의 그 순간에 가수 싸이의 노래는 울려 퍼진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삼시세끼 밥을 먹고 가족과 내가 건강하고 푼푼이나마 돈을 버는 평범한 생활,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맞이하는 일상다반사는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시간의 씨실과 공간의 날실은 쉴 새 없이 교차하며 생의 4차원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 모든 씨실과 날실의 교차과정 및 일상의 짜임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내 삶을 직조하는 사방팔방에 별다른 탈이 없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행운이다. 가끔씩 힘들고 지치는 순간은 있을지언정 액운의 씨실과 재난의 날실이 단 한 올도 끼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특별함과 걸출함이 없어 내 삶의 무늬가 밋밋한 민무늬일지라도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선사하는 편안함. 미스터와 미세스는 이 평범함을 사수하기를 원한다. 아무런 권능도 위세도 신통함도 없는 미스터와 미세스는 뉴스를 매일같이 수놓는 각종 사건사고가 나와 내 가족을 비껴가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 또한 나와 나의 가족이 특별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아서 세상의 눈초리를 피하고 하늘의 변덕을 비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별 것 아니로되, 그것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면 삶은 비통함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나의 아내, 나의 아기, 나의 부모, 나의 건강, 나의 오감, 나의 사지, 나의 정신···. 하나라도 잃는 순간 일상은 산산조각 난다. 평범한 것들을 그러모으고 있을 때 생은 불완전하여도 불안정하진 않게 된다. 별 볼 일 없지만 별일 없는 삶, 이 안전하고도 안정된 생활을 위해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미스터와 미세스들은 한평생을 달려왔으리라. 별 것 아닌 것들이 별 것으로 느껴지는 일이 없도록, 별 것 아닌 것들을 별 것 아닌 상태로 계속 둘 수 있는 삶.


오늘도 나는 서둘러 퇴근한 후에 만원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고서 집으로 돌아온 뒤, 아기를 식탁 앞에 앉혀놓고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밤늦은 시간, 아기는 내 앞에서 공갈젖꼭지를 빨면서 킁킁대며 자고 있다. 아내는 내 옆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부엌의 냉장고는 조용히 웅웅거리며 돌아간다. 집안 구석구석 주황색 조명이 아늑하게 켜져 있다. 아들의 목덜미에서는 고소하고 포근한 분유 냄새가 풍긴다. 나는 이 무사안일함 속에서 감은부복感恩俯伏한다.


아내가 종로에서 직접 골라 설치한 거실 조명은 저녁마다 집안을 주황빛으로 감싼다. 이 포근한 거실조명이 꺼지는 일 없기를 나는 바란다.

오늘 나와 같은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각자의 저녁 식탁을 향해 가고 있었을 모든 미스터 앤드 미세스에게 언제나 행운과 안녕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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