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글
한 번씩 당근에 살림살이를 내놓는다. 당근에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전부 매물로 올라온다. 아파트와 중고차,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운동기구와 헬스장 이용권, 유모차와 아기욕조, 맥도날드 해피밀 장난감 피규어···. 물건부터 일손까지 시장가치가 있는 모든 것들이 사겠다거나 팔겠다는 게시물로 올라와 있다.
살다 보니 살림살이가 많아졌다. 대단한 물건은 없는데 잡동사니만 켜켜이 쌓여 집안에 발 디딜 틈이 사라져 간다. 집 안에 물건을 들일 때에는 그 물건이 깔고 앉게 될 면적의 값어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아내가 해준 적이 있다. 집안면적 대비 물건의 수평투영면적, 즉 건폐율을 유념하라는 것이다. 24평짜리 아파트 가격이 5억이라 치면, 1평의 값은 대략 2천만 원이다. 공용면적을 뺀 전용면적으로 따지면 1평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3.3제곱미터의 그 어중띤 공간 위에 무엇을 놓기 위해서는 2천만 원어치 이상의 심사숙고를 거쳐야 하는 것인데, 그런 건 딱히 고려하지 않고 살다 보니 각종 집기와 비품이 점점 늘어나 집안바닥을 다 차지해 버렸다. 어느새 살림살이에 집 전체를 내줘야 하는 지경에 이른 나와 아내는 각종 가재도구와 가간집물을 당근으로 팔거나 폐기물로 버렸다. 책상, 책장, 손목시계, 토스터기, 청소기, 운동매트, 턱걸이 철봉···. 물건을 팔겠다고 올린 게시글에 채팅이 걸리면 당근 당근 알림음이 울린다. 그렇게 정든 물건들, 아직 쓸만한 물건들, 더 쓰고 싶은 물건들을 떠나보낸다. 이별과 처분의 신호음이 휴대폰에서 울린다. 당근···. 당근···.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해도 집이 넓어지지는 않았으니, 이것저것을 팔거나 버려서 생긴 빈자리에 각종 육아용품이 대신 들어섰기 때문이다. 집 평수를 넓히고 싶은데 그럴 능력은 없어서 살림도구와 가전가구를 내다 버린다. 제한된 공간에서 어떻게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들을 옮겨보고 내다팔고 갖다버리는 3차원 테트리스가 계속된다. 감가를 맞을 대로 맞은 중고품들은 팔아도 많은 돈을 받지 못한다. 나와 아내는 당근으로 이케아 책장을 팔고서 받은 만 원으로 닭강정을 시켜 먹었다.
작년 겨울, 돌 지난 아기를 키우는 동갑내기 직장 동료와 사무실 근처를 걷던 도중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제네시스 차량을 발견하고는 길을 안내해 준 적이 있다. 그 차는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운전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안내받은 은색의 제네시스 G80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고궁의 연못에서 유영하는 은빛 잉어처럼 우아한 자태로 멀어지는 제네시스를 보며 나와 직장동료는 서로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속마음을 토로했다.
“나도 내 아내가 제네시스를 몰고 다니게 해 주고 싶다.”
“나도 와이프한테 제네시스 한 대 정도는 뽑아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지금 상태로는 50대가 되어도 제네시스는 꿈도 못 꾼다.”
나와 동료를 사로잡았던 그날의 제네시스는 많은 것들이 함축된 상징물이었다. 안정된 생활, 풍족한 재산, 남부럽지 않은 미래···. 제네시스는 고만고만한 형편의 우리 마음속에서 별처럼 반짝였다. 블루투스 연결도 잘 안 되고 승차감은 달구지에 가까운 우리집 중고차의 대척점에 제네시스가 있었다. 제네시스를 호소하는 우리를 길 위에 남겨두고서 은빛 제네시스는 멀어져 갔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던데 말이다. 과연 인생에 정답은 없는가. 인생을 시험으로 간주하기엔 사는 것이 너무 팍팍해지겠으나, 인생은 연습이 없으므로 시험과 다를 바 없으며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매 순간들로 삶은 이루어져 있으니, 그렇다면 인생은 시험이라고도 볼 법하다. 다만 그 시험은 선택지 몇 개 중에 하나를 골라내는 객관식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내 몸을 연필 삼아 생의 바닥에 고개를 박고서 온 얼굴을 그 바닥에 갈며 필생의 답안을 써내려가는 주관식 시험에 가깝다.
20대 땐 나만의 문체와 나만의 표현을 통해 나만의 답안을 써 내려가는 것으로도 충분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보니 그 나만의 무언가라는 것이 검증된 기술도 아니고 공인된 면허도 아니어서 도대체 그것을 무어라고 정의내려야 할는지 나조차도 알기가 힘들거니와, 또 그 나만의 뭔지 모를 무언가가 있다고 한들 그것들은 탁월함이나 월등함과도 매우 거리가 멀어서, 결국 나는 알 수 없는 내용의 답안지를 깨작깨작 끄적여오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살아보니,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지금 여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표준답안은 존재한다. 사는 데 있어서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안분 및 지족하며 탐진치를 멀리하는 슬기로움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쓰는 곳간 안에 볏섬을 넉넉히 쌓아두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속물근성과 영민한 배금주의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오활한 선비였던 나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다 같이 뒤섞여서 사는 세상인지라,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의 비준표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속세에 발 붙이고서 가정을 꾸린 이상 세속적 가치를 초월하여 도사 행세나 신선 놀음을 할 순 없다. 무지렁이로 책만 읽고 술만 마시던 나는 이제 그간의 추상적인 서술 내용은 뒤로 하고 싶어졌는데, 그렇게 새로운 마음의 나는 나의 어린 아들에게 내가 써내는 새로운 답안의 서술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졌다. 아들아, 노력하고 애쓰면 그래도 이 정도의 서술은 가능하단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나름대로 이 수준까지는 써 볼 수가 있더라···.
진즉에 가졌어야 할 마음가짐을 이제야 마음먹고 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미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 이만치 한참을 날아왔는데, 출력이 딸리는 엔진과 볼품없는 날개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륙하기 전에 미리 준비했어야 할 강력한 제트엔진, 튼튼하고 견고한 랜딩기어, 연비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무겁고 두꺼운 동체, 끝을 모르고 뻗은 거대한 날개···. 이미 가족을 싣고서 돌이킬 수 없는 고도까지 올라 비행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와중에 이 모든 것들을 마련하고 싶어진 나는, 빌빌대며 날아가는 비행기 밖에 위태롭게 매달려 이것저것을 손보고 바꾸려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웃기지도 않는 꼴이고 나로서도 환장할 노릇이지만, 나는 더 나아지고 싶다.
이것은 남편이자 아비된 자로서 가슴에 품어보는 소망이다. 날개를 바꿔달고 엔진을 뜯어고쳐 초거대 수송기와도 같은 사내가 되고 싶다. 그렇게 나의 가족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 나는 지금 경비행기와도 같이 작고 약해서 싣고 있던 짐들도 다 밖으로 내던지고서 겨우 날고 있지만, 얇은 동체와 뚫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일상의 풍절음에 우리 가족 모두 귀가 얼얼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언젠가는 초거대 수송기가 되어서 아내와 아들은 물론이고 아내가 탈 제네시스와 아들과 함께 거주할 넓은 평수의 아파트와 양가 부모님을 위한 해외여행패키지 등등의 온갖 진귀한 것들을 그득그득 싣고서 멀리 날아가고 싶다. 매일을 절절매는 나는 틈틈이 꿈을 꾼다. 천지를 뒤흔드는 웅장한 엔진소리, 등장만으로 위용을 떨치는 든든한 모습. 당근에 살림살이를 팔지 않아도 되는 삶. 돈 걱정 없는 풍요로운 삶. 사소한 것들에 전전긍긍할 필요 없는 삶. 참거나 버티지 않아도 되는 삶. 아내와 아들이 자고 있는 매일 밤, 덜덜거리는 엔진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겨우 날아가는 경비행기는 밤하늘 구름 속에서 남몰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