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애 데리고 친정에 갔다. 이것이 바로 유부남 선배들이 그토록 열망해 마지않는 해방의 시간이렷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단 하루도 혼자 있었던 날은 없었다. 혼자라는 것이 이토록 홀가분한 것이었던가.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배낭과 양발에 묶여있던 모래주머니와 양손에 들려있던 생수병 묶음을 모두 내던진 것과도 같은 기분이다. 군대를 전역한 지 10년이 족히 넘었지만 여전히 개인정비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부작위不作爲의 자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부동不動의 자유. 난 오늘 하루 마음껏 거실바닥에 널브러질 수 있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술부터 고른다. 오늘만큼은 주종과 도수를 가릴 것 없다. 소주와 맥주는 물론이요 막걸리도 좋고 고량주도 안 될 것 없다. 동네 마트 매대에서 이 술과 저 술 사이를 오가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소주를 고른다. 소주를 마신다는 것은 그날 하루의 셔터를 내리고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소주의 찌르는 취기에 얼큰히 취한 채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해야 할 집안일이 넘치고 돌봐야 할 아기가 있는 평소에는 소주를 마시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나 아기도 아내도 없는 오늘은 이야기가 다르다. 오늘은 진즉에 영업 마감이다.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한 후, 냉장고를 뒤져서 나온 재료들로 대충 고추장찌개를 만든다. 달궈진 뚝배기에 식용유를 두르고, 고추장 크게 한 숟갈과 된장 반 숟갈을 넣어 이리저리 치대며 볶다가 물을 붓고서 돼지고기와 양파와 다진마늘과 애호박과 감자와 두부 등등 넣을 만한 것들을 있는 대로 때려 넣는다. 고추장찌개를 끓일 때 중요한 점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완성된 찌개를 한 숟갈 푹 떠올렸을 때 갖은 재료들이 숟가락질 한 번에 전부 오종종하게 숟가락 위로 올라탈 수 있도록 재료를 작게 썰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재료가 다름 아닌 감자라는 점이다. 감자를 작게 깍둑 썰어 찌개에 넣으면 국물이 진득하고 걸쭉해지는데, 감자는 품고 있던 전분을 서서히 사방으로 풀어내면서 찌개 맛의 무게를 잡아내고 국물의 두터운 질감을 형성해낸다. 이렇게 완성된 찌개를 식탁에 올려놓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지은 밥을 한가득 그릇에 퍼서 그 옆에 놓은 후에, 냉동실에 잠시 넣어두었던 소주를 꺼낸다. 팔팔 끓는 용암 같은 시뻘건 국물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투명한 소주를 번갈아 입에 집어넣으면 그 달큰한 열기와 찌르는 냉기에 입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이렇게 반주를 즐기면서 오랜만에 아이패드를 꺼내 유튜브 세계를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동영상들을 시청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 특별할 게 없는 것들인데 오늘따라 재미만 가득하다.
일전에 같이 일했던 형님을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셨을 때, 남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아이를 데리고 한 번씩 본가로 떠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아내에게 주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출퇴근을 하는 나로서는 회사를 오가는 시간이나마 아기와 잠시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있지만 육아휴직을 한 아내는 그럴 수가 없어 온종일 말이 안 통하는 아기와 씨름한다. 아내는 요즘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시간이나 이유식에 쓸 다진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에 가는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10kg에 육박하는 아기를 계속 몸에 얹고 있던 아내는 잠시나마 아기를 내려놓고서는 야구모자를 쓰고 바람막이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서 가을바람처럼 가벼운 발길로 집을 나선다. 찰나일지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그 자투리 시간을 아내는 놓치지 않는다. 집을 나선 아내는 이어폰을 끼고서는 평소에 지겹도록 귓가에 울려대던 동요나 자장가가 아닌 가요와 팝송을 듣는다. 아내 또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것이다.
아이를 키운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삶의 양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퇴근하고서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이어진 아기의 생떼거리에 지친 아내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아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운다. 빽빽거리는 아기를 안아 들고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겨우 잠을 재우면 이제 하루종일 이어진 육아로 너저분해진 집안 여기저기를 정리하고 청소해야 한다. 쉬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면 아기가 잠을 자는 시간 혹은 내가 잠을 자는 시간일 것인데, 겨우 잠든 아기는 칭얼대며 금세 잠에서 깨고 이로 인해 나 또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결국 쉬는 시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매일 쌓이는 피로가 풀리질 않고 누적되어 만성 두통이 긴고아처럼 머리를 시도 때도 없이 조여온다. 그러나 오늘 저녁은 다르다. 오로지 쉬는 시간뿐이다. 할 일이 없어 어색할 지경이다. 갈아야 할 기저귀도, 씻어야 할 젖병도, 닦아야 할 장난감도 없다. 평소 정신없이 이어졌던 가사와 육아가 갑자기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대리석 같은 자유시간의 첫단에 발을 디뎌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아기가 없던 때에 내가 도대체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옛날의 그 자유로웠던 시간은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었던가.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달은 우둔한 중생은 넋이 나간 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아이가 없었던 때의 신혼시절과, 더 나아가 그 이전의 총각 시절 때의 그 자유로움이란..! 그 정도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이었으면 나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녔어야 했다. 책임져야 할 대상도 없고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도 없었던 그 초고순도의 자유시간을 나는 화장실 수돗물처럼 하릴없이 흘려보내버렸다. 자유로웠을 때는 자유로운 줄을 몰랐다. 지금의 내가 그때 그 시절의 자유시간을 누릴 수만 있다면, 무슨 공부를 하든 장원에 급제하여 어사화를 꽂고 다녔을 것이며 무슨 운동을 하든 경지에 이르러 문파를 창시했을 것이며 무슨 책을 읽든 수백의 서적들을 탐독하여 나만의 도서관을 설립했으리라. 그러나 이제 자유시간이라는 것은 아내가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갔을 때만 잠깐씩 주어지는, 개기일식과도 같은 놀랍고도 희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들이 마음속에 생겨도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저 언감생심이다.
신나게 보던 유튜브도 몇 번 보다 보니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재미가 없어져서 아이패드를 덮는다. 알딸딸해진 정신으로 집을 둘러본다. 적막만이 가득하다. 하고 싶은 게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혼자 있게 되니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 이젠 혼자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혼자 있어도 대단한 시간을 보내질 못한다. 아내와 아기가 없다는 해방감은 잠깐이고, 이윽고 한밤중의 골목길 같은 외로움이 마음속에 뻗어나간다. 그러다가 문득 아기 생각이 난다. 아기가 보고 싶다. 휴대폰을 꺼내서 아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혼자 실실 웃는다. 술 마시며 보았던 유튜브 영상들보다 아기가 목욕을 하면서 손으로 찰박찰박 목욕물을 때리는 영상이 훨씬 재미지다. 빈 소주잔을 만지작대며 생각한다. 나는 이미 나도 모르게 나의 가족과 하나가 되어 있었구나.
나는 어느새 혼자 존재하는 것이 어색해지고 어려워졌다. 아무리 힘들고 정신없어도 아내와 아들이 내 곁에 있을 때 나의 영혼은 비로소 평안해지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닥이 잡힌다. 산더미처럼 쌓인 자질구레한 일들과 앞으로 해야만 하는 삶의 당면과업에 나만의 시간은 이제 없게 되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러한 귀속된 시간들이 나를 평화롭고 안온하게 만든다.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서 청소기를 돌리는 시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기의 젖병을 닦는 시간, 아기와 눈을 맞추며 기저귀를 갈아주는 시간, 품 안에서 잠든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고서 가만히 토닥여주는 시간,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내와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는 시간. 혼자였던 시절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은 시간이 다 되어 반납하였으되,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의 품 안에서 비로소 마음이 평탄해지니 이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자유로움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낫다. 그렇다면 셋보다는 넷이 나을까..?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