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는 순간에 대하여(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미운아기오리)
안데르센의 세계 명작 중 미운 아기오리를 읽고 재해석하여 쓴 첫 단편 소설입니다.
3이라는 숫자는 어째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까. 하나가 되기에는 너무 많고, 둘이 되기에는 하나가 남는다. 문제는 내 인생이 언제나 3이라는 숫자와 지긋지긋하게 얽혀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세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둘을 위해 떠나야 하는 한 사람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우리가 친구가 되었을 때도 알았다. 언젠가 은수와 민영이 그리고 나 이 중에서 한 사람이 떠나야 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건 나일 것이라고.
운행을 마친 롤러코스터가 속도를 늦추며 들어왔다.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에서 은수와 민영이가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 미안 미안, 우리만 타서 어쩌냐. 자리가 하필 두 개만 비어 가지고.
-나 원래 무서운 거 싫어해서 괜찮아. 이거 엄청 무서운 거라며. 원래 타기 싫었었어.
민영이의 말에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대답했다.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민영이와 은수는 너덜거리는 놀이공원 책자를 양쪽으로 나눠 들고 벌써 다음에 탈 놀이기구를 열심히 골랐다.
-야 대박. 우리 여기 가자. 호러 하우스. 야 우리 반 집합시간 담임이 언제랬지?
-2시. 야 근데 이거 호러 하우스......
은수가 민영이를 쿡 찌르더니 둘이서 눈빛 교환을 했다. 둘의 눈빛 교환. 이때 나는 있지만 없는 척을 해야 한다.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소리를 듣지만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 민영이의 시선을 피해 서둘러 크로스백을 열고 뭔가를 찾는 척했다. 야 이거도 두 명씩 밖에 못 들어가-라고 말하는 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로스백 안에 있던 수학여행 일정표를 펼쳐보았다. 형광펜으로 밑줄 친 부분 아래에 ‘T-익스프레스 꼭 탈 것’ 적은 글자를 손톱으로 꾹 눌렀다. 반달 모양으로 패인 자국이 슬픈 입 같았다. 은수와 민영이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멈추자 일정표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다음에 내가 해야 할 말을 이미 알고 있다. 괜찮아. 난 어떻게 돼도 괜찮아.
-야 우리가 호러 하우스 가려고 하는 데 이것도 2명 이서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하네. 그래서.....
괜찮아 난 안타도 돼. 하려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아를 찾는 안내 방송이 놀이공원 전체에 울렸다. 꼭 내 입에서 미아를 찾는 방송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민영이는 내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으며 돌아섰다. 사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팔짱을 끼고 출입구를 빠져나가는 민영이와 은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민영이와 은수는 똑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른 검정색, 흰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어쩌면 이 놀이공원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검정도 될 수 없고 흰색도 될 수 없는 회색의 인간이니깐. 멀어지는 둘을 멍하니 바라보다 서둘러 뒤를 쫓았다. 이미 입장을 했는지 호러 하우스 앞에는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입장을 마쳤는지 사람이 없는 입구에는 안내판만 걸려있었다.
'다음 입장 시간은 40분 후입니다.'
민영이와 은수가 나오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신나는 표정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목적지가 있는 사람처럼 걸었다. 멍하게 걷다 보니 청룡열차가 보였다. 청룡이라는 위압감 넘치는 이름과 달리 열차 앞에는 성냥만 한 불도 뿜지 못할 것 같은 빛바랜 파란용의 머리가 달려있었다. 롤러코스터에 가기 전에 우리 셋은 이곳을 지나쳤었다. 물론 야 저거 누가 타. 시시하게-라는 민영이의 말 한마디에 입구 근처도 가지 않았지만. 하지만 자세히 보면 꽤나 재밌을 것 같았다. 청룡열차의 입장줄에는 어린 애들이 많았다. 줄을 서있는 키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맨 끝에 혼자 우뚝 서있는 키가 큰 사람이 보였다.
A였다. 나랑 같은 반이었지만 제대로 이야기는 해본 적 없는 친구였다. A는 변한 적이 없었다. 늘 쉬는 시간이면 글자를 손으로 짚어가며 두꺼운 책을 읽었고,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는 갑자기 진지한 질문을 했다. 하지만 A에 대해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변했다. 우리들 사이에서 A는 처음에는 특이한 애였다가 언젠가부터는 이상한 애가 되었고 이제는 모두가 깔보는 애가 되었다. 누군가 A에 대해 비웃을 때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도무지 A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몰랐다.
청룡열차를 기다리는 탑승줄이 그리 길지 않았다. 40분 동안 놀이공원을 하염없이 걸어 다닐 순 없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A의 뒤에 줄을 섰다. 탑승 출입구가 열리길 기다리며 A와 처음으로 몇 마디를 나누었다. A는 놀이공원 지도에 형광펜으로 표시된 루트를 보여주며 이 청룡열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보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여행 오기 전부터 미리 코스 다 짜놨었어.
A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신나게 자신의 일정을 말하던 A는 놀이공원의 대기시간을 알려주는 어플도 있다며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액정 화면을 보여주었다. A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이거 타보고 싶었거든. 다들 시시하다고 말하길래 못 타고 있었는데......
열차의 출발을 알리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들떠서 A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무슨 소리야.
그 애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를 보는 A의 까만 두 눈동자만 허공에 떠있는 것 같았다.
-그냥 네가 선택하는 거지.
갑자기 고개가 앞으로 쏠리며 열차가 내리막길을 하강했다. 있으나마나 해보였던 헐거운 안전 끈이 배를 팽팽히 조였다. A가 한 말이 머릿속을 윙윙 맴돌았다. 오전에 먹은 핫도그의 기름기가 다시 식도 위를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옆자리의 A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두 손을 높이 뻗고 큰 소리로 웃었다. 올라오는 기름기와 신물을 삼키며 손가락이 하얘질 만큼 앞의 쇠 손잡이를 세게 잡았다.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어쩐지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날개를 펴
A가 소리치듯이 말하며 웃었다. 열차가 다시 오르막을 오르자 등받이 쪽으로 몸이 쏠렸다.
-뭐라고?
-날개를 피라고! 여기가 마지막 코스야.
A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자 이렇게 라고 말하며 허공으로 두 손을 쭉 뻗었다. A의 비장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열차가 조금씩 앞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어깨가 빠질 만큼 세게 두 손을 하늘 위로 쭉 펼쳤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세게 바람이 불었다. 오래 굽어 있던 날개가 펴진 듯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청룡열차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A는 퍼레이드를 보러 가는 길이 호러하우스와 가깝다며 나와 동행을 자처했다. 호러하우스 체험을 마친 사람들이 출입구를 나서고 있었다. 민영이와 은수도 그중의 하나였다. A는 재밌게 놀라는 말과 함께 퍼레이드를 보러 뛰어갔다. 어쩐지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민영이와 은수의 곁눈질에도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너 쟤랑 다녔어? 3반에 그 애 아니야?
은수는 '그 애'라는 말을 하며 일부러 얼굴을 찌푸렸다. 참 꼴 보기 싫은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네 기다리는 동안 A랑 같이 청룡열차 탔어.
-청룡열차? 쟤는 자기처럼 이상한 것만 타네.
민영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외쳤다.
-안 이상해.
민영이와 은수의 눈을 번갈아 가며 똑똑히 쳐다봤다.
-하나도 안 이상하다고. 그건 자기가 선택하는 거지.
-난 이제 너네랑 안 가.
어리벙벙한 둘의 얼굴을 향해 소리치고 뒤를 돌아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달릴수록 숨이 트였다. 멀리 하강을 준비하는 롤러코스터가 보였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양 손을 흔들며 계속 달렸다. 멈춰있던 롤러코스터가 빠르게 하강했다. 멀리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처음으로 쓴 소설을 마무리하며)
늘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만 살다가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아 소설을 쓰는 온종일 이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공모전을 준비하며 미운 아기오리의 원작 내용을 다시 찬찬히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화의 가장 빛나는 부분으로 '미운' 오리 취급을 받던 주인공이 사실은 아름다운 백조였음이 밝혀지는 장면을 꼽는다. 나 역시도 그 부분이 좋았다. 설령 주인공이 닭이나 비둘기 또는 아름답다고는 도무지 생각하지 어려운 어떤 종류의 동물로 밝혀졌어도 난 그 장면이 좋았을 것 같다. 한 존재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만큼 빛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순간의 반짝임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은 거창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들의 집합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찾아가는 세상의 모든 사소한 순간들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이 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