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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Sep 24. 2019

너와 나는 달라

상대방과 삐걱거리는 순간이 잦아졌다


 "선숙아 usb 어디 있어? 찾을 수가 없어!"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던 중, 벌컥 문이 열렸다. 붉게 달아오른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usb의 행방에 대해 따지듯 물었다. 거실 아일랜드 식탁 서랍에서 찾아보라 답하고, 거품을 헹구며 골똘히 생각했다.

'어디 있지? 내가 며칠 전에 썼는데 어디에 넣었을까?'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다가 정신이 확 들었다.



 '헉! 그 서랍 열면 끝나!'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화장실 신발을 날려버리고 거실로 달렸다. 이미 한발 늦은 것 같다. 머리카락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고, 남편의 머릿속에선 나를 향한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재수 없는 작은 usb 하나 때문에, 불꽃 튀기는 전쟁터였다.



 살아오면서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 중 하나가 '정리정돈'이라면 이 사태 말하지 않아도 알 거다. 결혼 전에 엄마랑 싸우고, 지금은 남편이랑 싸우게 하는 넌덜머리 날 정도로 나와 부딪히는 것. 거기에 엄마와 남편은 유달리 깔끔한 사람이라는 건 운명의 장난인가.



 어릴 적, 우리 집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갖춰져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져 있으면, 엄마는 청소 테이프로 가차 없이 밀어버렸다.

한편 내 방에는 항상 책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징검다리 같잖아? 요렇게 밟고 건너면." 하며 시범을 보이다가 고대로 쫓겨나기도 했다. 제 자리에 있는 엄마의 물건을 항상 가출하게 만드는 범인도 어김없이 나였다.



 특히 서랍은, 블랙홀 같은 매력이 있어서 뭘 넣어도 계속 들어가고 물건의 존재는 서서히 잊히는 신비한 공간이다. 남편은 이런 서랍을, 이미 연애 시절 내 방에서 마주했었다. 서랍 안을 궁금해하는 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열면 큰일 나."

문이 열리면, 안에 있는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게 뻔했다. 나만의 방법이 있다며 으쓱거렸다.

 "봐봐" 하며 조심스레 서랍을 살짝 열었다. 손을 넣어 목표물을 빠르게 꺼낸 후, 안의 물건들이 무너지기 직전에 문을 팍 닫았다. 이 모든 건 몇 초 사이에 일어날 법한 숙련되고 정확한 손놀림이었다.

 당시 남편은 순진한 건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박수를 쳤다. 이런 자유로운 여자와 결혼해서 살게 될 줄은 몰랐을 거다. 박수를 보냈던 그는, 지금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다. 긴장감이 도는 거실, 입을 쫙 벌린 3단 서랍이 분위기를 한층 더 달구고 있었다.



 뒤죽박죽 멋대로 쌓아 놓은 서랍에서, 작은 물건을 찾기란 어려웠으리라. 그는 첫 번째 서랍을 보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마지막 서랍에서는 "이건 아니지 않니!" 라며 화가 잔뜩 난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알아. 안쪽이 좀 개판이지. 치우려고 했는데 자꾸 미루다 보니 쌓였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먼저 치우면 되잖아!" 소리 지르며 내뱉고 말았다. 맞는 말 아닌가. 눈에 거슬리는 분께서 정리하시면 되잖아.

 정리 때문에 싸움에 일어나면, 남편은 오래전부터 봐왔다고 한다 - 치우자고 하거나 스스로 치우면 되는데, 계속 지켜본다 - 스쳐 지나가듯, 나에게 살짝 언급한다 - 나는 바로 잊어버린다 - 남편이 화를 내면서 끝나는, 비슷한 패턴의 싸움이었다.





 난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물건 속에서도 필요한 것을 쉽게 잘 찾는 비상한 능력이 있다. 오히려 각 맞추어 깔끔하다면 숨이 막힐 것 같아. 사람 사는 집처럼 자연스럽고 삐죽삐죽 나온 그런 모습이 편안하다.

 그는 말끔하게 잘 정돈된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하얗고 넓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높이나 색깔이 제각각으로 세워진 책을 보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아기 포스터 대신, 검은색과 회색으로 채워진 어둠의 포스터를 주문하더라.

(사실 붙이는 것 자체가 싫다며 고백했었다.)



 남편은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보이는 환경에 예민한 편이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집 분위기 때문이란다. 살림에 영 취미가 없는 엄마 밑에서, 집은 지저분했고 잡동사니로 가득 찬 느낌이라 했다. 아무리 스스로 치우고 주변을 다듬어도 계속 제자리란 느낌에 답답했을 거다.

 나의 모습에서 자꾸만 자기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인 댔다. 그러니 더 화가 나고, 두렵고, 못 참겠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작은 어수선함도 그의 눈에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니까.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집을 안정적이고 깨끗한 안식처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서투르지만 정리하고 깔끔하게 장식했다. 그러다 점점 귀찮아졌고, 방치된 서랍을 딱 들켰던 거다.

 "무조건 다 버려. 일단 버리고 같이 시작하자."

 그의 말이 들려왔다.




 서랍을 열면 그 사람의 머릿속이 보인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믿는 셈 치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듯 물건도 제자리에 두려 애써 보기로 했다. 글로 묻어 나온 생각을 보면 몰랐던 것을 새삼 깨닫듯이, 말끔하게 치우다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건의 발단인 usb는 반짝반짝 은빛 자태를 뽐내며, 예상치 못한 안방에서 발견되었다. 잊혀 갈 때쯤, 평화로울 것이라 믿었던 주말 아침이 또 시끄러워졌다.

 "이거 후손에게 물려줄 거야?"

 요리를 하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다가 쌓인 음식을 보며 남편이 하는 소리였다.

 이제는 냉장고다. 서랍 말고도 빨려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이 더 있다니. 갖가지 사연을 지닌 채 얼어 있는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후손에게 물려주기 전에, 비울 수 있을 것 같아.




 사소한 정리 문제로 지긋지긋하게 싸워 왔다. 그럴 때마다 너와 나는 다르다며, 있는 그대로 인정해달라 말했다. 복잡한 상태도 괜찮은 사람에게 왜 정리를 바라냐며 큰소리도 쳤다.

 상대방과 삐걱거리는 순간이 잦아졌다. 가까이 있는 것을 비우고, 매만지고, 닦으며 공간의 여백을 조금씩 만들어 보면 어떨까. 만든 여백은 여유와 평온으로 차곡차곡 채워질 것만 같다.

 아무래도 갑자기 변하기란 어렵지. 마음 한구석엔 정리 없이 잘만 사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달라도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해.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애써 비웠던 것이 흐트러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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