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전하고픈 말
기차 안, 책 읽는 부산 아가씨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자꾸만 말을 건다. 멀대같이 큰 키에 깡 말라서 이상형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네. 더 듣고 싶어 대구역에 따라 내리며 엄마, 아빠의 사랑은 시작되었단다.
말로 엄마를 홀릴 만큼,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는 반응이 나온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데이트 장소에 나갔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된다.
거짓이나 허풍은 첨가하지 않으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대화법. 특히 웃긴 부분에서 눈과 목소리가 커진다. 덩달아 손도 빨라지고 말이다. 이때 아빠의 얼굴을 좋아한다. 56년생이지만 고운 피부가 눈에 먼저 들어오고, 순수한 표정이 피식 웃게 만든다.
엄마가 '황골 통 아저씨’라 부르는 아빠.
일단 다 떨어져 누더기인지, 먹다 버린 빵인지 모르겠는 짙은 밤색 지갑을 고수한다. 새 지갑을 선물해도, 바로 장롱 속으로 던져진다.
화사하고 가벼운 패딩을 사줘도, 원래 입던 검은색의 큰 덩치를 입고 만난다. 운동화도 다 떨어질 때까지 하나만 고집할 정도이다.
생신 선물로 카디건을 내밀었더니, 있는데 왜 샀냐며 못마땅한 표정이다. 눈을 흘기고 있는 엄마 몰래, 내게 보여준 옷이란. 무려 10년 전에 선물한 아가일 무늬 카디건이었다!
무조건 헌것을 고집하고, 돈 쓸 줄도 모르며 쓰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자라왔다며, 다시 시골로 돌아가 살고 싶다 했다. 단, 전기도 안 들어오는 초가집이어야 한단다. 소박함과 검소함의 대표 주자답다.
헌 것과 자연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목숨과 같은 것이 있다면 바로‘일’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전축과 전화기를 연구하는 회사에 다니며 항상 손에 테스트해야 할 신제품이 들려있었다. 그 보조 역할은 나에게 돌아왔다.
벨이 울리면 받아서, “아아, 테스트 중”을 반복하고 목소리가 잘 들리는지 알렸다. 소리가 깨지거나 작게 들리는 문제가 발견되면, 드라이버로 전화기 본체를 열고 전선을 이리저리 만지고 부품을 납땜했다. 알싸한 냄새와 작은 연기가 사라지면, 전화 너머로 얇고도 단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 거실은 전화기 박물관처럼, 각각 다른 색깔의 모양을 한 전화기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조금씩 다른 벨소리가 한꺼번에 울려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오늘은 누구로 받아 줄까’하는 생각으로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주말에 나와 동생은 회사에 따라갔었다. 아빠 자리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곤 했는데, 책상에 빼곡하게 붙여져 있던 알 수 없는 자료들과 글씨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될 거야.’
물론 커서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 때, 알았다. 그렇게 일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말이다. 열정만으로 눈빛부터가 냉철하게 달라지는 그가 내 상사였다면, 난 매일 욕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젊음과 열정을 다 쏟아 낸 회사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전자제품 시장에 변화가 오면서, 덩달아 회사 경영진들끼리 문제도 생겼다. 옳은 말만 하던 아빠는 하루아침에 출근할 곳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밖에 모르던 그가,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거다. 몸 바쳐서 다닌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고, 터무니없는 월급을 제시해도 매일 나가서 다시 일하고자 했다.
그런 아빠의 마음과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일할 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완벽한 그도, 결국 상처 받는 어른이었다.
목숨같이 중요한 ‘일’을 잃음과 동시에 ‘자신’도 잃었다는 생각으로 무너졌던 거다.
그 이후, 13년 동안 중국 현지에 있는 전자부품 공장 고문직으로 근무했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기까지, 출하 날짜를 맞추고 불량이 나오면 대책을 세웠다. 타지에서 치르는 전쟁 아닌 전쟁이었다. 한국에 오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 놓고도, 갑자기 터진 비상사태에 못 올 뻔하다가 겨우 시간 맞추어 올 정도였다.
어떤 날은 유머러스한 성격답게 몰래 입국해서, 아파트 벤치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나의 놀란 얼굴을 보며 “서프라이즈!”라고 말하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떨어져 있었지만, 저녁에 화상채팅을 하고 서로 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다.
도시 '심천’에 있다가 열악한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를 걱정하는 글을 보내니 이러한 답장이 왔다.
새롭고 낯선 곳에서 마음을 붙여 봐야지. 원래 도시 생활은 아빠에게 복이 없나 봐. 그러나 걱정하지 말 거라. 원래 아빠는 낯선 곳, 새로운 곳을 좋아한단다
어차피 아빠가 해야 할 일이고 아빠가 극복해야 할 일. 사랑하는 공주 워 아이니
-아빠의 메일 내용 중-
낯선 곳에서, 정신없이 터지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했을 때 오히려 에너지를 얻고 희열을 느낀다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했다. 중국공장도 철수하는 분위기라, 짐 싸서 한국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 뒤로도 한 5년은 더 버텼다는 사실!)
드디어 그가 퇴직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한시라도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타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고생했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 쉬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서로에게 떨어져 있던 시간을 메우듯, 다시 뭉칠 우리를 기대했다. 우리 멋대로, 아빠의 퇴직을 축하하고 호들갑 떨며 반겼다.
친정 식구를 집에 초대한 5월의 어느 날, 아빠는 더운 날씨에 긴 소매 옷 입고도 추워 보였다. 돌아온 며칠 새에 살도 빠진 듯하고, 눈썹에 힘이 잔뜩 들어가 긴장이 느껴졌다. 말문을 닫고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네. 손을 잡고 끌어, 안방 침대에 앉혔다.
“아빠. 괜찮아?”
“......”
“딸한테 말해봐. 다 들어줄게.”
아빠는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지, 침을 연신 삼키다가 말을 꺼냈다.
“마치 공장의 고장 난 기계 같아. 난 아직 기름칠하고 열심히 돌아갈 수 있는데.”
앞만 보고 달려오며 풀가동을 하던 사람이, 바로 멈춤을 즐기고 받아들이기는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했다. 외국에서 치열하게 노력한 만큼,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쉬기를 원했다. 자신을 쪼여 가며, 인생을 빡빡하게 만드는 아빠가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가족이란 이름으로 너무나 가볍게 ‘이젠 쉬어요’로, 그 열정과 의욕을 단정 지었다는 걸 알았다.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한순간 고장 난 기계가 되어버린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허무할까.
아빠는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이 때문에 기회조차 잡기 힘든 현실이 가장 두렵고 절망적이라 했다. 생각하고 움직이던 사람이, 가만히 의자에 앉아 쉰다는 건 죽어 있는 느낌이랬다.
“갈 데까지 가보고.”
끝까지 달려보겠다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찬찬히 살살 문질러 주었다. 볼록 튀어나온 핏줄과 손등에서 느껴지는 거친 결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고장 난 기계가 아니라, 다시 바쁘게 움직일 날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라고 속삭였다.
아빠는 6개월 동안, 잡코리아를 뒤지고 지인을 통해 면접을 보러 다녔다. 마음의 병도 다시 얻었다. 사회가 정해 놓은 퇴직 나이에 걸려,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도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런 아빠를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었다. 국민연금이 나오고, 우리도 다 컸는데 도대체 왜 본인을 못 쉬게 할까. 안타까운 마음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요즘 그의 눈이 빛난다. 수원 집에서 전철로 한 시간 거리인 곳에 출근하게 되면서 우울증 약도 끊었단다. 새로운 회사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직급이 낮으며 계약직이라고 설명해준다. 계약직이라 언제 싹둑 잘리게 될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빠의 생생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말단이지만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에피소드가 짠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일을 끌어다 모으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지, 여기서도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빠 보였다.
틈틈이 등장하는 특이한 캐릭터의 회사 사람은, 내가 직접 만나본 것 마냥 웃기고 재수 없어서 같이 신나게 욕도 해주었다.
이토록 일을 갈망하는 건, 꼿꼿이 지켜 내고 싶은 아빠의 인생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그를 지켜보면, 출근한 이후 점점 살이 빠지고 주말에는 감기몸살로 누워 있는 날이 많다. 성격대로 작업에 몰두해서 완벽하게 해내고자 무리하면서까지 할 게 뻔했다. 이 악물고 버티는 것이 다 보인다.
몸이 상할까 걱정하는 우리에게 “엉망인 상태를 해냈을 때 나는 짜릿해!”라는 그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어버이날, 친정에 갔더니 요즘 회사에서 인원 감축으로 말이 많다 했다. 아, 다시 위태위태한 날이 다가옴을 느낀다.
쉬어야 할 때가 온다면, 조금만이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기대도 돼.
그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고 사랑할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일지 몰라.
숨 가쁘게 달려온 스스로에게 “고생했어”라고 툭툭 다독여줘요. 아빠 뒤에서 천천히 기다릴게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소중한 헌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출근할, 아빠에게 전하고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