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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Nov 15. 2019

보물을 잃다

영원토록, 지키고 싶은 마음

 커다란 교실, 수업을 듣다 머리카락을 넘기며 뒤돌았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너만 보였다. 여전히 하얗고 동그란 얼굴, 놀라서 나가려는 친구에게 달려가 어깨를 확 붙잡았다. “해연아!” 이름을 크게 부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차다. 내 손으로 따뜻하게 데워 주며, 요즘 있었던 밀린 이야기를 재잘재잘 쏟아 놓았다.



 “주원이는 나랑 안 떨어지겠다고 매일 울더니 이제 어린이집에 잘 다녀, 여기 이사 와서 아는 사람 없다고 매일 너랑 전화하면서 고민했잖아. 좋은 동네 언니 셋이나 생겼어. 해연아. 어떤 모습으로든 괜찮으니 이렇게 같이 있으면 안 될까?”

 가만히 듣던 너는, 그냥 내가 잘 사는지 보려고 잠깐 왔다 했다. 자기를 못 알아볼 것 같았는데 단번에 알아봐 놀랬단다. 옆에는 있어 줄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애써 막고 있던 울음이 꺽꺽 밀려왔다.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또 해연이 꿈을 꿨나 보다.”

 잠이 덜 깬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내 등을 가볍게 문지르는 손길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침이 되면 너에게 전화해 웃으면서, 이상한 꿈을 꾸었다며 골골하던 감기는 다 나았냐고 묻겠지.

 2년 전의 우리라면 분명 그랬을 거다. 연천과 이천이라는 먼 거리에, 둘 다 아이가 있는 엄마이므로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매일 전화로 풀었다. 아이를 먼저 재운 사람이 ‘오늘도 너무 고생했어’로 문자를 보내며 끝나는 하루였다. 새벽이라도 전화해서 기꺼이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남편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 얼굴을 보지 않아도 기분이 그려지고, 그 기분을 풀 방법도 아는 사이였다.



 우리의 인연은 열 살부터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찰싹 붙어 다녔다. 걸어서 십 분 거리인 서로의 집을 거쳐 스무 살이 되었다. 각자 다른 대학교였지만, “나와! 거기로.” 말하면 츄리닝을 입고 기름 낀 머리로 만나는 건 여전했다. 싸워도 금세 다시 붙었던 우리였다.

 그녀의 결혼식에서 축시를 읊으며 오열하던 나, 내 결혼식에서 눈물을 훔치던 친구, 비슷한 시기에 임신도 사이좋게 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자 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된대도 지금처럼 둘이 좋다고 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거면 우리 이쁘게 늙자며 웃곤 했었다. 육아에 찌들어 있는 시간에도, 곱게 늙은 너와 내가 종종 궁금해졌다.     




 떠들썩한 카운트다운으로 맞이한 새해였다. 고요한 어느 날, 그녀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틀 전만 해도 우리는 긴 통화와 문자를 했고, 하루 전에는 부재중 전화가 한 통화 있었다. 다시 걸었으나, 연결음만 들렸고 전화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흔적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도 아닌, 나에게 끝으로 하려 했던 말’을 듣지 못했다. 죄책감에 고통스러웠다. 내가 전화를 받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모두가 막을 수 없었던 일이라 위로를 했다. 차라리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내리라 여기자고. 계속 생각하면 친구가 마음 편하게 가지 못한다며 놓아주란다.

 ‘눈을 감을 때까지, 아이를 떠올리며 얼마나 슬피 울부짖었을까.’ 그녀 생각을 놓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어만 갔다.      



 아이 앞에서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다짐은 시도 때도 없이 무너졌다. 요리를 담을 그릇을 꺼내다가, 세탁한 옷을 접으면서, 아이 장난감을 치우다가도 주저앉고 말았다. 작은 것 하나에도, 곳곳에 친구의 손길이 묻어나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금방 괜찮아질 리가 없었다.

 나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조심스레 “괜찮아?”라며 물었다. 반면 소식을 모르는 이가 무심코 던진 그 이름에, 꽁꽁 싸맨 마음은 터져 종잡을 수 없이 흘렀다.



 "나왔어."

 그녀의 생일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잠들어 있는 곳 벽면에 새겨진 얼굴을 몇 번이고 깨끗이 닦았다. 시커먼 먼지와 꽃가루가 휴지에 계속 묻어났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보고 싶다 하면, 참을 수 없이 보고 싶어질 것 같았다. 왜 먼저 갔냐고 따지면, 그녀가 너무 슬퍼할 것만 같았다. 다들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 모인 고인(故人)인지는 모르나, 여기에 있기에는 곱고 젊은 내 친구를 잘 돌봐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드렸다. 스치는 바람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나 이제 간다.”     


 

 사람은 죽고 나면, 어디로 갈까? 그들만의 세계에서 혼자서 아니면 가족을 꾸리며 살까. 우리 곁에서 똑같이 살고 있을 뿐인데 못 보는 걸까.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나타나 줘." 씻다가도, 잠깐 휴식을 가질 때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은 옆집의 회색 고양이가, 창가에서 날 보며 울었다. 가까이 오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혹시 그녀일까’라는 어이없는 생각에 당장 품에 안으려 하기도 했다.

 마당에 심은 적 없던, 이름 모를 이쁜 꽃이 피면 ‘너일까’ 싶은 마음에 흠뻑 물을 주었다. 사차원 같은 생각들, 나에게는 헤어짐을 이겨 낼 절실한 방법이었다.



 2층 작은 방, 책장 꼭대기에는 노란 상자가 있다.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가 잠들어 있는 곳. 열어볼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아이는 이상하게도 그 상자에 관심이 많았다. 위치를 바꾸어 보아도 계속 궁금한 얼굴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열었다. 우리의 시간이 쏟아지는 중, 아물지 않은 슬픔이 한꺼번에 떨어진다.

 “엄마. 울어?”

 “응. 너무 슬퍼서 울어. 엄마랑 같이 있는 이 이모, 먼저 하늘나라에 갔어. 엄마가 제일 아끼는 친구야.”

 “엄마 친구, 그러면 죽었어?”

 아들이 콕 꼬집어 물었다. 소중한 사람과 영원한 헤어짐을 이해할 만큼 크면, 아이에게 덤덤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직도 친구를 만나는 꿈을 자주 꾼다. 이제는 울면서 깨는 날보다, 잠깐 만나고 온 것 같은 날들로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

 길거리를 걷다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그녀를 발견했다. 손에 물놀이 장비를 든, 젖은 수영복 차림이었다. 놀란 나더러 “바다에서 내내 수영하다 오는 길이야.”라며 빙그레 웃었다.

 물을 좋아하고, 배운 적도 없는 수영을 겁 없이 즐기던 그녀. 우리를 떠나,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꿈에 녹아들었을 거다.

 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짜 맞추어 상황을 만들고 의미를 넣어 그러한 꿈이 탄생했더라도. 나를 만나러 온 것이라 믿으려 한다.

 세상과 이별한 뒤, 미지의 세계에서 나와 다름없이 소소하고 평범하게 지내리라.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영혼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애써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쓰다가도 몇 번이나 가슴이 쓰라리고 찢어진다.

 눈물범벅일지라도, 글로 묶어두면 우리의 기억들이 흩어지지 않고 종이에 새겨져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

 남아 있는 사람이 죄책감에서 벗어나, 잊지 않고 좋은 기억으로 끊임없이 생각해 주는 것. 계절마다 그녀의 얼굴 동판을 정성스레 닦아주고 쓰다듬는 일. 그렇게 해서라도 영원토록, 그녀를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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