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경 작가 (1955~, 한국)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건 경기도 미술관 야외 조각장에서였다. 무심코 지나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모습이 나를 닮아있었다. 하지만 난 이 우울함을 지나, 다시 환희의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 남자의 우울함은 내 것과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꼭 그 우울함을 변질시키지 않은 채 간직하려는 무뚝뚝한 열정을 머금고 있었다.
그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불쌍했다. 현대인의 삶에서 반복되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기형적인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멋을 위해 단련하는 몸에서 발견되는 근육은 그에게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싸늘한 표정이 그래 보였다. 노예가 되어버린 그가 고되게 움직이던 몸을 정지 해 버린 것은 저항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곳에 서 있었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멈춰버린 그는 세상 다른 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인지 그의 표정을 통해 추론해 볼뿐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서촌 근방에 있는 갤러리였다. 그는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건물 위에서 그리고 계단 틈에서 존재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옮겨온 그가 말없이 행하는 일련의 시위는 조금씩 내 기억 속에 남았다. 그리고 양주 미술관 야외조각장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다소 무서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위협하려 하지만, 그 슬픈 표정으로 아무도 해칠 수 없었다. 눈이 내렸던 그날, 그에게 네 번째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