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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Nov 16. 2019

눈이 많은 새

최우람 <꽃>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2019년 2월에

최우람 <꽃, Una Lumino> 2009 ,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플라스틱, 전자장비





 이 작품을 보자마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관람객들이 이쁘다고 탄성을 지르고 있을 때, 나에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인 것이다. <꽃>은 소리를 내며 꽃봉오리가 벌어졌다. 그 안에는 정교한 기계장치 같은 것이 존재했다.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리며 작동하는 기계음이 기괴했다. 다른 이들은 아름다운 조형물이라며 핸드폰에 담고 있을 때, 내겐 완전히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꽃>은 몇 달 전의 기억과 맞물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두 장의 그림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장은 내가 그린 것이고, 한 장은 A가 그린 것이었다.  


 A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대부분 서로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형식적인 얘기만 오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A는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많은 얘길 들려주었다. 그리고 A가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꿈에서 나온다는 '눈이 많이 달린 새'에 대해 듣게 되었다. 한참 듣던 나는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그 새를 직접 그려보면 어쩌면 악몽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A는 그렇게 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 끔찍한 새가 스스로의 모습에도 놀라는 상황을 묘사해 보았다. A에게 위안이 되길 바랬다






A가 그림을 그려 그 고통을 덜었으면 했다.







 많은 얘길 들려준 A에게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A가 느낀 꿈에 대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 꿈에서 나온다는 '눈이 많이 달린 새'에 대해 좀 더 코믹한 방식으로 그림을 여러 장 그려서 보내주었다. A는 고맙다고 했다. 인상적인 그림이라고 해 주었다. A가 그 새를 보고 불면이 지속되는 날들을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는 나중에 그 새를 그려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서 A가 꿈에 출현했던 ‘눈이 많이 달린 새’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 그림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림 속의 새가 살아있는 형상으로 꿈에 나타난다고 했을 때, A가 매일 그 새로부터 도망쳐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어쩌면 A의 고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형상을 매일 봐야 했던 A의 고통이 단지 희화화된 그림 한 장으로 해결되길 바랬으니, 나는 얼마나 경솔했던 것일까.  








A가 그린 그림(출처_https://instagram.com/o_h_my_dre)



 끔찍한 그 형상의 새가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타인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에 대해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단지 추측의 일 뿐이었다. 그것은 긴 시간 동안 절망감으로 나를 몰아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져 갔다. 절망적 감정이 거의 잊혀 갈 때, 전시장에서 <꽃>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듯,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봉우리를 벌렸다. A의 그림이 떠올랐고, A의 꿈에 나타났던 새가 내 눈앞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 끔찍한 새를 아주 자세히 보려고 했다. 내가 느꼈던 절망감이 무엇인지, A의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싶었다. <꽃>을 통해 그 생각을 다시금 오랫동안 간직할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무서운 형상으로 다가왔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슬퍼졌다. A가 겪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천천히 봉우리가 기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의 슬픔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반대로 그런 사실 때문에 끊임없이 타인의 감정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멋진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노력 사이에서 우린 서로가 알 수 없다는 차가운 사실보다 더 따뜻한 무언가를 얻어갈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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