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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Nov 17. 2019

사라진 달

레오니드 디시코브<Private Moon>사비나 미술관 2019년 2월에

사진출처_월간미술 잡지




 초승달 형상을 오브제로 작가는 자신의 환상을 구현한다. 동화적이고, 따뜻하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광활한 여백 때문이겠지만, 여백으로 인해 쓸쓸함도 판타지의 일부가 된다. 인물과 함께하는 달을 향하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상상은 그 여백으로 확장되어 사진에 존재하지 않는 곳까지 미치게 된다. 여백은 쓸쓸함이 아니라 인물 세계의 일부인 듯하다. 



 작가가 사용하는 오브제인 달은 물리적이기 때문에 아주 먼 곳을 횡단하는 증거가 된다. 각 사진의 단절된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물리적 환경을 극복해 어디든 존재하는 그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CG에 의존하지 않기에 누리는 이런 혜택은 다시 그것이 실제 판타지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사진 속에 펼쳐진 우아한 언어 속에서 가끔씩 확대된 달의 조악한 형상(이음새 부분, 두께로 인한 부피감 등)이 드러날 때면 환상은 순식간에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 달이 작가가 제작한 오브제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꿈이라는 허구성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그 꿈은 결국 완전한 판타지가 되지 못한다. 확대된 오브제는 그런 사실을 의도치 않게 드러냈는데 관람자로서의 나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실제 작품을 관람할 때, 달의 이음새가 명확하게 보인다


 사소한 시각적 불편함을 쉽게 못 본 척했다면, 작품의 이미지는 더 환상적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내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는 작가가 오브제인 달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실제 달이 없는 배경과 시간을 찾아 헤맨 모습을 상상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그가 삭제해 버린 실제 달은 어디에 있을까? 내게 선명하게 남겨진 것은 판타지가 아니라 ‘판타지를 이루는 과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잡지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달과 함께 누워있는 작가)은 그래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진은 꼭 내 불편한 마음과 닮아 있었는데 그것이 작가를 통해 구현되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_월간미술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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