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 Apr 25. 2019

혁명의 제도화

 <위대한 낙서전> K현대미술관_ 2018년 8월에


 ‘위대한 낙서전’은 거리에서 시작된 미술을 옮겨왔다. 거리 미술은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는 빠르게 사라지거나 철거된다. 생명력이 짧은 거리미술이 미술관으로 입성한 것으로 물리적 생명력을 확장했으나, 본래의 의도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식을 진행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갑작스레 우리 앞에 놓이지 않는다. 미술관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향하는 행동과 함께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된 뒤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거리미술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보이게 된다. 서둘러 회사를 가다가, 혹은 나만의 고민 속에 거리를 걷다가, 혹은 누군가에게 분노하다가, 혹은 즐거움을 쫓다가 느닷없이 내 앞에 놓이는 것이다. 그것은 미술관의 감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 앞에 놓임으로써 의식의 일부를 타격한다.


 이러한 감상 속성 때문에 주제는 직접적인 경향이 강하고, 때론 주제보다는 느낌 전달 자체에 의미를 두곤 한다. 거리에서 빠르게 작업을 하고 사라져야 하는 환경으로 인해 속도감 또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의식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가장 직관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의식의 가장 안쪽에 있는 원초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거리미술이 미술관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다소 거부감을 주었지만, 이렇게 접한 작가들의 작품이 ‘실제 거리에선 어떤 느낌일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그자체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거리미술은 분명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유의 생명력의 일부를 소실한 것도 사실이다. 자본에 저항하고, 규율에 저항하는 그라피티 문화까지 삼켜버리는 자본의 관대함에 섬뜩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계기가 되리라 믿고 싶다.


 예술은 사회와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거리미술이 미술관으로 입성한 계기로 이제 거리는 다른 방식의 무언가가 진행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쩌면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그것은 지난 거리미술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추천합니다. 뱅크시가 만든 것인데 원래는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촬영한 소스입니다. 감독이 나중에 바뀌게 되는 엉뚱한 내러티브 속에서 거리미술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낙서전’의 작가들 작품이 거리에 놓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도 있는데 자막이 없네요;;


이전 02화 베르나르 뷔페 속의 숨은 곡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