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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Apr 25. 2019

내 안의 깎이지 않은 면

김종영 <김종영 자연음 품다> 김종영 미술관 2019년 3월에


전시기간 20181214~20190402


 누구나 태어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길 원하지만 그 의지가 태동하기 전에 문화와 역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자본주의를 추종하거나 유교문화를 학습한다. 이 큰 범위에서 더 세부적인 간섭이 시작된다. 최초의 인간관계인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학습은 혈연, 지연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모습은 끊임없이 간섭이라는 다듬어짐 속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비로소 태초에 존재하던 내 모습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 그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다. 김종영 작가가 재료에 최소한의 손길을 건넨 것은 원재료의 존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원래 그것은 무엇이었나?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각상>1964, 나무

 입구에 있는 '자각상'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뒷면 귀퉁이가 깎여나가 버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사라져 버린 모서리를 통해서 작가의 의도가 마음에 스며든다. 상단의 깎여나간 면이 날것으로 드러나 그 의미를 더한다. 가공되기 이전의 것과 그 이후의 것이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서 내 안의 모습들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가동된 자신을 버리고 진정한 모습을 찾으려 한다. 그것은 쉽지 않다. 김종영 작가는 '불각재(새기지 아니한 물질)'를 얘기하면서 최소한의 표현을 추구한다. 거기에는 훼손되지 않은 본래의 의미가 존재한다. 


 하지만 또다시 의문이 든다. 원재료의 고유함은 실제 가공하지 아니함을 내포해야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가공을 한다. 원재료와 작품의 차이가 있기에 최소한의 단순함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작가는 타 작가들에 비해 표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무'가 될 수 없다. 이런 부정에 대비해 그가 실제 원재료만 놓았다면 우린 그것을 작품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내포될 수밖에 없다. 


<자각상>1964, 나무

 누군가의 모습은 시간 속에서 나의 일부가 된다. 그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의 본질이 완전히 훼손되어버렸다고 후회하는 순간 조차도, 이미 난 내 안의 나를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그것들을 어떻게 더 나답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김종영 작가의 방식은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자각상>1964, 나무
<자각상>1964,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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