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19.06.08 ~ 2019.09.15
뷔페의 초기작에는 단순한 직선들이 드러나 있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드러난 강렬한 직선들과 달랐다. 뷔페의 작품들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초기작이 걸린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왜 나를 사로잡았을까?
그의 생애 중후반 작품들이 뚜렷한 직선들로 대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과 달리 20대에 그린 작품들은 그러한 선들이 어렴풋한 전조로 옅게 새겨져 있었다. 후기로 갈수록 강렬해지는 스타일이었지만 초기작에는 그러한 스타일을 머금은 잠재적 힘이 느껴졌다. 아무런 강요도 없이 순수하게 새겨진 초기작의 필치는 형태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는 듯했다. 희미한 그 스타일이 중후반이 되어 뚜렷하게 작품의 색깔이 되었다.
무표정인 듯 한 인물의 얼굴에 새겨진 직선은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사물들과 배경에는 모두 그런 직선의 필치가 새겨져 있었다. 강렬한 직선으로 인해 정지된 듯한 그들의 표정과 배경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도 맹렬하게 정지되어 버린 나머지 어떤 목소리를 내는 듯했다.
뷔페의 직선은 점점 강렬해지고, 작품의 느낌을 견고하게 했다. 도시를 그린 그림에서 그런 직선은 건물을 뒤덮어버렸다. 너무도 단단해서 깨져버릴 것 같은 도시의 건물에 새겨진 직선들은 내 시선을 붙들었다. 하지만 전시를 보는 동안 나를 사로잡은 것은 뷔페의 곡선이었다. 그것은 자동차를 그린 그림과 여인의 나체를 그린 그림에서 발견되었다. 스타일은 때론 작가가 원하기도 전에 그의 작품을 지배해 버릴지도 모른다. 스타일로 어떤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그 스타일이 작가에게 어떤 주제를 강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서 발견된 곡선이라는 것은 희귀한 무언가였다. 뷔페의 그림이지만, 그의 그림 같지 않은 곡선의 느낌이 도대체 어디서 출몰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전쟁에 대한 참혹함을 보여주기보다는 인물들의 차가운 표정을 통해서 전쟁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보여주었다. 전 생애에 걸친 그런 스타일은 그의 생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가를 반영해 준다. 그런데 돌연변이처럼 출몰한 자동차의 형태를 이루는 매끈한 곡선들은 의문을 품게 했다. 전쟁으로 인한 무기 개발은 기술 개발과 함께하고, 그 과정에서 자동차는 발전했다. 이동수단을 넘어서 외관의 디자인도 함께 발전했다. 거기에는 외관 디자인 가공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의 발전은 전쟁의 상황과 무관할지 모른다. 디자인은 전쟁용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상용화를 위해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전쟁이 직선이라면, 전쟁 이후에는 곡선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곡선은 직선 이전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뷔페를 사로잡은 것은 그런 낯선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직선 스타일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 시대가 만들어낸 자신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의 모습. 어쩌면 그에게 곡선은 그런 것들을 상기시켜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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