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展>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_2019년 3월
파주 출판단지에서 작가들과 대화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 한 작가 분이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도 전시 요청이 지금 스타일에 관한 것이라 했다. 그러니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스타일의 변신은 작가의 생명을 건 도전이 된다.
뒤샹은 예술적 시험을 통해서 작품을 변모해 나아갔다. 생에 걸쳐 이렇게 다양한 변신을 해 간 사실은 앞선 현대 작가들과의 만남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고 급진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야수파 색감에서 입체파의 궤도를 틀었다가, 초현실주의 같은 느낌의 구조주의적 화풍에 빠져들었다가 다다이즘이라는 조류 속에서 '샘'을 발표하기까지 이른다. 그런 변화무쌍한 이력에서 체스 국가대표 선수라는 이력까지 더해지니 그의 생에 자체가 흥미진진해질 수밖에 없다.
뒤샹의 '샘'을 보았을 때 1917년 발표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전거 바퀴'를 보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은 대상을 향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자꾸 그것의 의미를 추적하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 몰두하다 보면 보이는 대상은 지워진다. 대상은 있으나 관찰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기묘한 체험을 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관람자에게 발생하는 개념미술의 현상이란 말인가?
이런 그의 충격적인 실험은 그전부터 조짐을 보인 듯하다. 1912년에 제작한 <신부-bride>는 추상적인 기하 도형으로 대상을 표현했다. 신부'를 표현했으나 구체적 대상은 없다. 하지만 기하 도형들의 형태와 구조가 너무 세세한 나머지 그것은 추상성을 상실한다. 추상화를 보고 있으나 그건 치밀하게 계산된 구상화에 가깝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내내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은 차단되는데 그렇다고 구상적인 시각이 완전히 허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익숙해진 시각적 패턴이 혼란을 겪는 순간, 난 뒤샹에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