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중기 (1): 그가 별로인 이유

중기 (이별 후 4 ~ 6개월)

by 이제리프

이별 초기에는 주로 현실 부정이 주된 감정이었다면, 이별 중기에서는 이별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이게는 되나 대신 집착과 자책으로 인한 엄청난 고통이 온다.


특히 나는 차인 입장이었지라 자책감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특히 이별통보를 예상하지 못했고 정확한 이별 사유를 알지 못했기에 한 동안은 그와의 마지막 1~2년이 계속 필름처럼 눈 앞에서 돌아갔고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하나하나 생각했다. 나도 짐작되는 이유가 당연히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걸 안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걸 안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참 나쁘고 이기적인 연인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작아졌다. 그의 시야를 가지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비춰졌을지, 그것도 모르고 나는 왜 바보같이 그렇게 행동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혐오했다.


이 자기 혐오의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실연 극복은 점점 멀어진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관계에 대해 더욱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꼭 진행해야만 작업이지만, 적어도 실연 초/중기에는 내 탓을 하는 시간과 그가 돌아올지 아닐지에 대한 예측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고통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참 많은 시간을 자기 탓을 하거나 혹은 어떻게 해야 그가 돌아올 수 있을지를 집착적으로 생각하면서 흘려 보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반쯤은 미쳐있던 시간들이었다.




집착적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재회를 바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는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었는지?


누군가는 여기서 그럼 넌 어땠는데? 넌 완벽한 여자친구였어? 라는 질문을 할테고 이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좀더 정신머리가(?) 돌아온 후에 하기로 한다. 지금 중요한 건 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거니까.


곱씹어 생각하면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 꽤나 많이! 생각해보면 사귀는 내내 분명 나는 그에게 섭섭하고 서운한 부분들이 많았었다. 다만 사랑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권력관계가 바뀌며 그 많던 (?) 단점들을 스스로의 시야에서 감추어버렸을 뿐이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내가 그를 평가하는 바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곱씹어보았다. 연애 초반 3년, 그에게서 발견했던 여러 가지 부족했던 점들을 우선 생각해냈다. 그리고 그와의 마지막 1년, 그 부족한 점들이 연애 초반만큼 내게 불편했는가를 생각해봤다 - 아니었다! 마지막 1년 동안 나는 그에게 집착하게 되면서 그 불편했던 부분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별 전 1년 간 내가 점점 더 관계에 집착하며 그를 우상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에 대한 나의 태도 변화를 생각하면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와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지금의 이별은 결코 ‘운명적인 짝’을 놓친 엄청난 실수가 아니라는 것도 - 분명 그에게는 나와 참 맞지 않는 점들이 참 많았으니까.




마지막,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최고의 사랑을 놓친 것만 같은 날에는 유투브를 열어 이혼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한번 듣곤 했다. 유투브에서 ‘이혼 변호사’로 검색하면 정말 많은 영상과 케이스가 나온다. 그 많은 사랑의 종착지라 일컬어지는 결혼의 실패에 대해 듣고나면, 결혼에 이르러보지도 못하고 실패한 지금이 오히려 감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마도 어딘가의 평행 세계에서 나는 그를 붙잡는데 성공하고 결혼에 골인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씻을 수 없는 ‘단점’이 눈에 띄어 먼저 정이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결혼한다고 모든 것이 해피 앤딩인 것은 아니고, 삶은 지속되며 관계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위로였음은 두말할 바 없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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