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은 모른 척해주세요.
"뭐라고?"
"혼잣말이야."
잔뜩 골이 난 아이가 짜증을 내며 콧김을 몰아 쉬었다. 본인이 고이 두었다는 문제집과 공책이 책상에 없다는 게 이유이고 어질러진 책상을 못 참고 정리한 내 불찰이었다. 스스로 정리하도록 가만히 두자 했건만 그날은 책상을 박박 닦고 싶은 마음에 정리를 해버렸다. 문제집과 공책은 책꽂이에 두었는데 쉽게 눈에 띄질 않았나 보다. 거기다가 엄마는 정확한 위치를 말해주지 않고 책꽂이에 있을 거라고 말하며 기어이 한마디를 보탰다.
"책상정리를 제때제때 잘하면 엄마가 손댈 일이 없지 않겠어. "
부글부글. 아이 속이 끓는 것이 보인다. 발화점이 낮은 사춘기라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을 내 실수다. 또또또 조절을 못했다.
중얼중얼, 투덜투덜, 탁탁!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오고 내 신경도 곤두선다.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
"뭐라고 한 거야?"
"혼잣말이야."
"너 지금..
엄마! (아이가 말을 끓고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
"내가 정리 못한 건 잘못했고 엄마가 정리해 준 건 고마워. 근데 나는 원래 놔두면 알아서 정리하잖아. 나는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어. 다만 매일 하긴 싫을 뿐이지. 내가 하고 싶을 때 예쁘게 내 맘대로 정리하는 게 좋아. 그리고 사람이 화가 날 수도 있잖아. 그러면 구시렁거릴 수도 있지. 그냥 혼잣말이야. 엄마한테 기분 나쁜 게 아니고 지금 이 상황이 짜증 난 거야. 가만히 두면 풀어지는 감정인데 뭘 자꾸 물어?
그럴 땐 못 들은 척해줘. 좀 있으면 괜찮아지는 거 알잖아.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반 애들 욕도 엄청 잘해 여자애들도 막 욕을 한다니까. 근데 나는 절대 욕은 안 해. 하기도 싫고 애들이 흔히 하는 "dog 좋아" 아런말도 정말 싫어. 부사를 모르는 세상 같아. 내가 하는 제일 나쁜 말은 "아 짜증 나." 이거야.
이 말하는 것도 엄마가 싫어하는 거 알지만 이 정도는 이해해 줘."
조근조근 할 말을 끝낸 아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듯하다. 역시 제 할 말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무심한 척 대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머금어지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책상을 제 스타일대로 재정리한다. 사람은 자신을 행동의 주체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 심리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듣고 보니 엄마가 미안해. 성급했던 것 같아. 근데 너 말 진짜 잘한다. 요즘에 시나리오 쓴다더니 뭐 대사에 있는 거야? 나도 시나리오나 써볼까?"
"엄마, 시나리오를 쓰려면 편견이 없어야 해. 편견이 있으면 등장인물들마다의 입체감이 사라져.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근데 엄마는 엄마라는 편견이 있거든? 그래서 엄마는 에세이를 잘 쓰잖아."
병 주고 약 주고. 어르고 빰치고.
쪼그만 게 이마이나(이만큼) 컸다.
아이가 짜증을 낼 때 가능한 이유를 물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이해해 주면 그뿐이다. 아이도 짜증의 이유를 모르거나, 말하기 싫기 때문에 풀어주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 더 짜증을 부추길 수 있다. 풀기 위해 애쓰다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며 마음을 지켜가도록 내적 거리를 두고 지켜보려 한다.
"너의 짜증을 존중할게."
나는 짜증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기로 약속하였고, 아이는 감정을 가라앉히는 연습을 해보겠노라 의견을 모았다. 유연한 마음을 지니길.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다 알려고 들지 말자. 때론 모르지만 이해하는 마음이 서로를 지킨다는 것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