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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Dec 19. 2023

눈물로 얼룩진 수학여행

친구가 뭐길래. 



수학여행의 마지막날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무엇이 아이를 힘들게 했을까? 


수학여행 전날 밤, 아이는 짐을 하나하나 챙기며 친구들과 톡을 주고받으며 설렘 가득한 웃음을 보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그런 모습이 흐뭇함과 동시에 생경하였다. 처음 가족과 떨어져 가는 여행이기도 했거니와 냄새와 청결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 평소 여행을 할 때도 5성급 호텔이 아닌 펜션은 손사래를 치던 아이였다. 3일 동안 귀한 경험을 하겠구나.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마냥 들떠서 친구들과 내일의 꿈을 꾸기에 여념이 없다. 


첫째 날,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며 짧은 메시지와 함께 이모티콘을 보내왔던 아이는 둘째 날 밤이 되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흘렸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 중 한 명이 밤에 유튜브를 볼륨을 높여 보는 탓에 잠을 설치고 피곤하다고 했다. 그래 단체생활이니 그럴 수 있지. 바닥에서 자는 것도, 화장실도 아마 편치 않을 것이다. 

속이 깊은 아이는 행여 떨어져 있는 엄마의 걱정을 키우지 않으려는 듯 더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처져있는 아이가 걱정됐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긍정의 기운과 사랑한다는 말이 전부였다. 


마지막날 출발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덧붙여진 문장에 마음이 철렁했다. 


"엄마 많이 울었더니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 


설렘과 기대, 낯섦에 대한 첫 도전이기도 했던 수학여행이 눈물로 얼룩졌다. 아이는 출발할 때완 사뭇 다른 온도를 보이며 처진 어깨와 부은 눈으로 집에 들어섰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기분 좋게 집에 와서 엄마에게 선물을 주고 자랑하며 떠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고 했다. 왜 아니겠니. 몸이 피곤하면 푹 쉬어버리면 되는데 마음이 텅 비어버리면 오라는 잠은 안 오고 쓸데없는 생각만 줄을 이어 온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니 코끼리가 줄을 이어 행렬했겠지.  


한 친구가 아이를 은근히 따돌리기 시작하자 같이 다니던 다른 친구도 눈치를 보며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어떤 불화가 있었냐고 물으니 그런 일이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되도록 맞춰주고 배려하며 양보한 일 밖에 없다고. 그러나 짐작되는 부분은 있다고 했다. 아이들끼리 수다를 떨 때 은어나 욕을 많이 사용하는데 자기는 그런 말을 쓰지 않고 담임이나 다른 그룹의 험담에 동조하지 않으니 싫어하는 것 같았다고. 비꼬는 투로 "너는 욕은 아예 안 쓰는구나. 같이 애들 씹는 것도 안 하고, 뭐 공부도 잘하고 착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똑같이 바른  행동을 했다고 하니, 그 친구입장에선 답답했거나, 불편했거나, 심술이 돋았을 수도 있겠다.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그럴 때 기분이 어떠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고 싶은지. 


아이는 강단이 있었다. 솔직히 그 친구랑 잘 지내고 싶어서 맞춰주고 싶지만 욕이나 험담은 하기가 싫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땐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주제를 다른 걸로  바꾸려고 돌린다. 근데 그 친구는 내가 하는 평범한 이야기들은 재미없어하는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니까. 참고 있지만 힘들긴 하다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친구는 언제든 생기고, 학년이 바뀌면 너와 성향이 잘 맞는 친구가 나타날 거야. 아마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걸. 음, 엄마도 중3이 돼서 진짜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그전까진 그냥 친했던 거고, 진짜 친구 말이야. 너는 지금 6학년이니까 아직 기회가 훨씬 더 많지. 


나중에 그땐 왜 그랬냐고 물으니 친구가 건넨 말이 걸작이다. 

"아 내가 그때 피곤하고 지쳐서 짜증 나서 너한테 그랬나 봐. 나도 잘 기억이 안 나.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사과 이후로도 그 친구는 여러 번 상처를 주었지만, 아이는 편지와 메시지를 보내며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속되는 친구의 행동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그간의 일들을 알고 계신 선생님께서는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아이가 갈등을 겪을 때 참지 말고 오히려 터뜨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맞추려고 하지만 말고 나쁜 행동을 했을 땐 그 친구에게 잘못된 점을 알려줘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싸우게 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싸우고 다시 풀고, 그런 불편한 과정들 속에서 극복을 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다고. 중학생이 되면 더한 아이도 있고 힘든 상황도 생기니 혼자 감내하려 들지 말고 그 순간 맞서거나 선생님께 직접 도움을 청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엔 아이를 위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유머와 강단, 그리고 불편함과 맞서는 당당함이다. 하여 아이의 어깨가 축 처져 돌아온 어느 날,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 힘듦을 토로하는 날, 아이에게 여전히 이렇게 말해준다. 

"네 기분은 너의 것이야.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너의 기분을 정하게 두지 말았으면 해. 마음과 생각은 스스로 만들어 가. 오늘의 마음은 오늘의 네가 선택하면 돼. 타격받지 말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을 해봐. 그러다 보면 긍정의 기운이 살아날 거야."


그로부터 두어 달쯤 지났다. 

아이는 그 친구와 제법 잘 지내고 있다. 그 친구 때문에 타격받는 일도 없거니와 그 친구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의 특성을 존중해 주며 맞춰가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예뻐 보인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6년을 동글동글 만두 빚듯이 잘 여미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함께 후후 불어 나누기를.  모양이 조금 이상하고 터지면 어때. 입에 들어가면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지. 


아이의 친구관계는 아이의 몫. 

무의식에 있던 나의 유년과 연결 지어 생각하거나 지레 짐작하여 조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그 시절을 지나며 알게 될 것이다. 행여 달갑지 않은 하루를 만났을 때도 언제든 종알종알 엄마에게 토로하며 슬그머니 풀어졌으면. 


다만, 나는 아이의 청중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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