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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Dec 05. 2023

왜 정리를 안 하는 걸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너 예전엔 안 그랬어. 얼마나 정리정돈을 잘했다고.'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대놓고 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고 억지로 하는 정리정돈은 도돌이표인 것을 알기에 그냥 두기로 했다. 수학문제집을 학교에 들고 갔으니 가방에 있을 텐데, 책상에서 찾고 있는 것은 예사이고 소파에 던져둔 핸드폰이 없다고 거실을 뱅뱅 돈다. 기껏 패드에 그려놓은 인물화나 만화를 미처 저장 못해 날리거나 쓰고 있는 소설의 영감이 안 떠오르면 한껏 예민함을 세운다. 


남편은 아이에게 그런 표현을 썼다. 

"가끔 보면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눈을 크게 떠!"


"이게 최대한 크게 뜬 건데?" 


그리고 우린 깔깔대며 한바탕 웃는다. 한참을 웃으며 장난치다 쳐다본 아이의 얼굴이 말갛다. 볼에는 생기가 돌고 입꼬리는 히죽거리고 초승달이 된 눈으로 무해하게 웃고 있다. 덩달아 내 마음도 춤추었다.  엔돌핀이 생성되면서 절로 짜증이 해소되고 뾰족했던 감정이 동그래진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웃는 순간이 아닐까. 문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고 관망하며 아이의 굳어진 어깨를 풀어주는 것. 긴장 속에 굳어버린 마음을 말랑하게 매만져서 감정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유머와 다정한 말투가  중요한 이유이다. 


찰나의 행복을 손끝으로 잡고 싶은 순간이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키득거리고 마주 보며 웃을 때, 쨍한 햇살처럼 기분 좋은 행복을 맛본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시간이 풍요로워진다. 어렵지도 않지만 집안에 스민 분위기라는 것은 쉬이 바뀌지 않기에 부모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습관이 되고 어떤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어른의 모습은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자존감에 혼란이 오는 사춘기의 불안감과 짜증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어서 이유를 묻는 어른 앞에서 아이들은 때때로 무기력해진다. 이유를 물으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그저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도록 긍정의 감정을 습관화하고 체화시키도록 도와주고 싶다. 



찍으려고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양호한 걸?





"완벽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잖아요."

    

이미 몇 군데의 치과에서 아이의 틀어진 앞니를 교정해야 한다는 소견을 여러 번 들어왔던 참이었다. 아이의 과잉치 수술을 해주셨던 대학병원 교수님께 교정에 알맞은 시기를 여쭈어보았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꼭 완벽해야 하나. 완벽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요."


나올 이가 아직 남았으니 배열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바뀌지 않아도 큰 문제 있나? 교정이야 개인의 취향일 뿐입니다. 앞니는 내가 보는 게 아니고 남들이 보게 되는 건데, 보여지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면 하면 됩니다. 연예인 할 거면 해야 하고 허허. 부모님들이 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교수님. 아이는 관심도 없는데 엄마가 극성이지요."

      

"나중에 더 지켜보고 천천히 봅시다.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할 때 시켜주는 게 좋아요. 괜찮아요."

      

구강이 헐어 파인 상태로 병원을 찾은 아이에겐 웃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아. 더 크면 한결 나아진다. 네 잘못이 아니야."

      

부모로서 어깨에 가득 짊어진 걱정과 애정을 조금은 덜고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말씀으로 와닿았다. 완벽하게 케어하는 것이 큰 사랑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우리는 문제가 없는 아이에게 문제를 찾아내어 보완시키려 안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학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명목하에 좋은 성적과 명문학교, 아이의 직책과 상장에 따른 결과물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부모가 줄 수 있는 무한한 애정과 학부모로서의 품위를 균형 있게 지키기 위해 아이의 빈틈을 메워주려 동분서주하는 대신 가지고 있는 강점을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말해줘야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춘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자, 부모이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순간들 속에 곁에 있는 좋은 어른들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힘들거나 약한 모습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환경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실패와 비판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시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배움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에 대한 실망을 자아에 대한 탐구로, 찡그린 표정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변화시킬 수 있다.
-탈 벤 샤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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