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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로 May 02. 2021

빈 잔에 채워지는 청춘의 마음

6. 시바스 리갈 같은 우정,밸런타인 같은사랑

고급스러운 크리스털 언더락 잔에 주황색 빛이 출렁거린다. 양주 ‘시바스 리갈’은 그렇게 친구와 내 사이에서 단란주점의 불빛을 머금고 찰랑찰랑 반짝이며 분위기를 자아냈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는 친구와 나는 지구의 종말론을 믿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지구가 종말 하지 않으면, 내가 종말을 자초할 것만 같았다. 

     

1999년 12월 31일 도시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지구 종말이라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떠들고 다니는 광신자들은 삶에 지친 청춘들을 유혹했으며, 술꾼들에게는 술을 마실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단 둘이서 ‘시바스 리갈’을 시켜놓고 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꿈과 열정을 쏟아부은 청춘의 바다에서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 담긴 보물선을 침몰시킨 후 엉금엉금 육지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양은 마치 바다 거북이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육지로 기어가는 모습과 같았다. 바다를 떠나는 마음은 시원한데 발걸음은 거북이걸음처럼 무겁게만 느껴졌다.  

   

청춘들이 살아가는 인생에서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와 맞먹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사나이들의 청춘은 ‘폼생폼사’라고도 한다. 폼나게 살다가 폼나게 죽는 것이 청춘의 멋으로 알고 사는 것이 남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청춘의 폼도 돈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자존심을 잃어버린 청춘들은 상처 입은 날개로 꿈을 찾아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와 같다. 상처 입은 날개로 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다 보면 철새들의 운명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캐나다 북쪽에서 발진하는 철새들은 아시아 중심부의 대륙을 지나간다. 새로운 꿈을 찾아 날아가는 철새들이 히말라야 상공에서 들개바람을 만나면 비행능력을 상실한 채 맹렬한 몸짓으로 낭가파르바트의 만년설에 화살처럼 꽂혀 죽는다.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는 등반가들이 고산지대의 눈 덮인 산정에서 철새들의 시체를 종종 발견하는데 그 모습은 날아가는 자세를 유지한 채 죽어있었다고 한다. 철새들은 자신들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날아가고 있었고 죽어서도 날고 싶었던 모양이다. 만년설에 묻힌 날개의 꿈은 애처로운 죽음의 모습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철새들의 열정으로 죽은 동료의 꿈을 부활시키고, 이어서 또 다른 철새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은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물물교환의 단순한 목적을 잊어버린 돈은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때로는 독수리 발톱처럼 살벌하게, 때로는 까르뚜지아(Carthusia) 향수처럼 은은하게 청춘들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물러설 때는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처럼 조용해 사라진다. 


청춘은 돈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공원에서 반려견의 목줄을 채우고 산책하듯이 돈을 이끌고 다녀야 한다. 반려견이 주인의 목줄 길이에 따라 움직이듯이, 돈도 청춘들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돈의 모습은 안하무인이다. 그런 돈을 소유한다는 것은 기름을 쌓아둔 창고에서 횃불을 들고 바늘을 찾는 것처럼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다. 돈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낭가파르바트 절벽에서 주검이 되어서도 날개 짓을 멈추지 못하는 철새에서 느끼는 눈물겨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집스러운 윤회의 삶을 이해한다고 해도, 청춘들이 돈에 얽매인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나는 청춘들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청춘의 열정이 한낮 돈으로 포장된다면 만년설로 포장된 철새들의 주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날개 짓을 퍼덕거리는 청춘들은 도요새의 비행처럼 황홀하다. 그 시작은 캐나다 북쪽 툰드라 숲에서 발진하여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야 하는 철새의 꿈이 아니라, 뉴질랜드 북쪽 해안에서 발진하는 도요새 같은 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요새는 뉴질랜드 북쪽 해안에서 남태평양 중앙회랑의 연안선을 따라서 알래스카로 간다. 그리고 4월이면 한반도의 서쪽 연안 만경강 하구에 도착한다. 도요새의 날갯짓은 평온하다. 물 위로 흘러가는 부표처럼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도요새의 날갯짓은 바람의 과학을 이용한 형이하학적인 예술과 같다. 단 한 번의 날개 짓으로 바람과 도요새는 하나가 되고 날개를 편 채 도도하게 하늘을 비행한다. 나는 청춘들이 꿈을 찾아가는 모습도 도요새의 날개 짓과 같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일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청춘들을 보면 도요새의 아름다운 비행을 떠올리곤 한다.     


청춘들의 우정에는 향기가 없다. 우정은 의리와 그 궤를 같이 하는데 그것은 남자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습성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바스 리갈’처럼 확 당기면서 쓴 맛이 거침없이 들이치고 뒤 끝이 개운한 것이 

남자들의 우정도 그러하다. 그래서 난 친한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할 때면 ‘시바스 리갈’을 찾는 것 같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때부터 12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몇 명의 친구들을 만났다. 만나야 할 이유는 모두 비슷했다. 배를 타다 보면 목돈이 들어오는데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 은행에 넣어둔다. 지나친 청춘의 열정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은 사업을 위해서 돈을 필요로 하고, 잔잔한 청춘의 열망으로 일찍 결혼 한 친구들은 가정을 위해서 돈을 필요로 한다. 금방 돌려주겠다던 친구들의 약속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해지고 또다시 돈을 빌려가면서 비장한 각오로 약속을 한다. “친구야 이번이 마지막이다. 네가 돈이 필요하다면 내일이라도 사업을 정리하고 네 돈만큼은 꼭 돌려줄게.” 하지만 그뿐이다. 


그런데 돈을 빌려줄 때는 우정과 의리가 충만했던 내 마음이었는데 돈을 돌려달라고 말을 할 때는 괜히 미안해진다. 친구들에게 빌려주었던 돈을 받아서 육지 생활할 집을 장만하고 조그만 장사를 시작하려고 계획했는데, 친구들은 내 계획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가 바다 생활을 마감하고 육지 생활을 시작하는 그 기점이 지나간 천년이 마감되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밀레니엄의 첫날인데도 그러했다.

    

나의 우정은 신뢰를 배척했다. 우정을 유지하기 위한 배려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고, ‘시바스 리갈’만이 12년 간 숙성된 자신의 모든 것을 40% 알코올로 승화시켜 크리스털 언더락 잔에 쏟아낸다. 그리고 20년 넘게 우정이라고 믿고 의리를 지켜온 청춘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들을 지적하면서 ‘시바스 리갈’을 들이켜면서 서로의 애타는 갈증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이크를 잡고 홍수철의 '황제를 위하여'를 부른다. 2절을 부를 때 목은 잠기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눈앞을 적시고 있었다. 남자들의 우정은 요란하게 맺어지고,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처럼 간단하게 끝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낭가파르바트의 만년설에 묻힌 철새의 날개 모습처럼 처연하게 느껴졌다.   

  

「황제를 위하여  1절」
친구여 잔을 받아라 이 잔은 우정의 잔 / 나 싫다고 가는 세상 붙잡아 맬 수 있나
우리들의 좋은 날도 다시 올 수 없는 것 / 마시자 황제처럼 오늘은 우리들의 날
사랑을 갖지 못해서 권세 명예 없다고 / 슬퍼하는 그대를 위하여
친구여 잔을 받아라 이 잔은 이별의 잔 / 나 싫다고 가는 여자 붙잡아 맬 수 있나
우리들의 젊은 날도 언젠가는 가는 것 / 마시자 황제처럼 오늘은 우리들의 날“   

   


청춘들에게 우정과 사랑은 어려운 문제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장난 삼아 묻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생존의 본능을 내포하고 있어서 삶의 경이로움을 만들어준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종족번식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랑은 음과 양의 조화로움을 이루고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생명은 살아 있어야 그 가치가 인정된다. 생명의 가치가 사회적 활동으로 인정될 때 우정, 신뢰, 배려, 같은 다음 단계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으뜸가는 감정은 ‘사랑’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의 피라미드로 치면 최상위 계층에 존재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밸런타인 위스키와 같이 향기롭다. 밸런타인의 향기는 초콜릿같이 감미롭고 진하다. 혀끝에 감도는 향기로운 맛이 목젖을 적시면서 흐르고 가슴에서 열화(熱火)로 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기에는 이것만큼 좋은 위스키가 없다.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사랑을 속삭이며 술 마시기에도 좋고, 남녀가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이 좋다. 그것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어서 우주의 별이 폭발하는 것과 같은 강렬한 열정이다. 강렬하게 폭발하는 생명의 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연인들이 입술이 밸런타인에 젖어들 때, 향기로운 재스민 꽃이 피어난다. 재스민의 꽃말은 ‘당신은 나의 것’이다. 

     

청춘들의 사랑우정이라는 미련한 습관으로 상처 받지 않기를, 그리고 사랑에 견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안에 사랑이 있어야, 그 사랑이 우정을 품을 수 있고 사랑이 인류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정은 시바스 리갈처럼 쓰지만 깔끔하게, 사랑은 밸런타인처럼 달콤하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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