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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06. 2024

동굴 디스코텍에서 둠칫둠칫

쿠바 여행기 6일

2023.12.1.금요일

오늘은 시엔푸에고스를 떠나 트리나다드로 이동하는 날이다. 숙소는 채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겼다. 밤 9시 버스라서 저녁 때 짐을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여기에 올 때 탔던 그 버스를 다시 타고 종점인 트리나다드에 내리면 밤 11시 30분이 된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숙소는 버스 종점의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혹시나 싶어서 트리나다드의 숙소에 전화해서 내 이름을 얘기하고 버스는 밤 11시 30분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늦은 채크인 가능하다고 걱정말란다. 

느즈막히 숙소에서 나와서 근처에 있는 지역 역사 박물관으로 갔다. 입장료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입장료가 없단다. 어제의 그 묘지기처럼 어떤 할머니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냥 들어가란다. 근처에 가볼만한 곳은 거의 다 가봐서 여기는 별 기대가 없이 시간 때우려고 온 것인데 의외로 볼만한 것들이 많아서 놀랐다.

정문에서 전시실이 있는 건물까지는 큰 정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트럭, 탱크 등이 쭈욱 늘어서 있다. 신기하게 생긴 지프도 있다. 그리고 정원 끝에 전시실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여기서 사람들 몇 명이 앉아있다가 내가 가니까 한 사람이 나서서 전시공간을 안내해준다. 안내하는 사람은 영어가 서툴러서 그런지 공간의 이름을 말해주고 안내문을 보라고 가리킨다. 건물 구조가 꽤 복잡하고 볼거리가 많아서 동선을 안내받지 못했다면 우왕좌왕했을 것 같다. 지역 박물관이라는데 이 지역에 정착한 유럽인들의 흔적, 그들이 타고 온 배 등의 유물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혁명 당시 체 게바라, 까밀라 시엔푸에고스, 피델 카스트로 등이 이곳에 왔을 때의 사진과 관련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꽤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지만 여기에 원래 살던 원주민에 대한 전시물이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지역 박물관이라면 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중간에 재밌는 광경을 보았다. 중국풍의 옷을 입은 단체 관광객들이 모여서 쿵푸 요가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 옆을 지나 전시실을 쭈욱 구경했다. 잠시 후 그들은 쿵푸 요가를 끝내고 우루루 모여서 어디론가 갔다. 그들도 전시실을 쭈욱 둘러보는 것 같았았다. 도대체 정체가 무얼까? 서양사람들과 동양사람들이 섞여 있었는데 정체를 통 모르겠다.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못알아듣겠다. 결국 이 미스터리는 끝까지 못풀었다. 


지역사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다시 메인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 옆에 있는 성당이 마침 열려 있어서 안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수수한 모습이다. 유럽에서 보던 여타의 화려한 성당보다 정갈하고 고즈넉하다. 주민들 몇 명이 기도하고 있어서 조용조용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해가 뜨거워지고 있어서 더위를 피할 겸해서 식당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구글에서 후기를 읽어보고 평점이 좋은 곳을 찾아갔다. 어제와 비교해볼겸 이번에도 랑고스타를 시켰다. 나는 해산물 매니아라서 한달 내내 해산물만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여기 랑고스타의 가격은 2,000쿠바페소. 어제의 그 곳보다 더 저렴하다. 혹시나 해서 가격을 다시 확인하고 시켰는데 계산할 때 메뉴판에 적힌 그대로 받았다. 음식도 맛있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직원도 친절하고 무엇보다도 가격을 속이지 않아서 좋았다. 너무나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팁까지 주고 나왔다. 보아하니 여기는 숙소도 겸하는 곳인 듯하다. 이층에 뷰가 좋아보이는 곳에 숙소가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숙소를 정했다면 아마 매일 랑고스타를 먹었을 것 같다.



맛있게 정직한 가격으로 랑고스타를 먹고 나니까 어제 바가지 씌운 곳이 너무 얄미워서 안되겠다. 어제의 그 식당에 가보니까 다른 직원이 일하고 있다. 나는 직원에게 어제의 상황을 설명하고 메뉴판과 가격이 이렇게 다른 것은 옳지 않다고 항의했다. 그는 다소 난감해 하면서 유로가 어쩌고 달러가 어쩌고 하다가 메뉴판이 올드 메뉴라고 한다. 어제와 같은 레파토리다. 그러면 새 메뉴판으로 바꿔야지, 이렇게 손님에게 보여주고 비싸게 받으면 안된다고 항의했더니 미안하단다. 다른 직원도 와서 미안하다고 여러번 말했지만 뭐 어차피 환불해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한참동안 항의하고 나니까 속은 조금 시원해졌다. 부디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메인 광장으로 나와서 벤치에서 쉬려 했는데 해가 너무 뜨겁다. 햇살을 피해 성당 반대편에 있는 작은 박물관으로 갔다. 여기는 개인사 박물관이다. 이 지역 유력가의 집인데 오래된 물건들을 전시해 둔 곳이다. 입장료는 150페소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외로 소소하게 구경할 만했다. 오래된 식기, 샹드리에, 세면대와 화장실 물품들, 오래된 안락의자 등이 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이 지역의 유명한 음악가와 관련된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낡은 전축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오래된 LP판, 악기들,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참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사진과 악기들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리고 이 건물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여기서 바라보는 광장의 뷰도 좋다. 여기 꼭대기에도 바가 있는데 밤에 오면 일몰을 보면서 한잔 하면 좋단다. 



개인사 박물관에서 나와 다시 바닷가쪽으로 나왔다. 어제의 그 학생들을 또 만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들은 이미 집으로 갔나보다. 주변에는 관광객들 뿐이다. 바닷가의 가게에 앉아서 피나콜라다를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걸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보니까 이 가게는 즉석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준다. 배가 부르지 않다면 뭔가 먹었을텐데 아쉽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겼다. 


버스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해가 져서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터미널에 가서 기다리는게 좋을 것 같다. 숙소에 가서 짐을 찾아서 슬슬 걸어서 버스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비아술 표지판을 찾을 수 없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매표소를 찾아 2층으로 갔다. 여기는 당연히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트렁크를 끌고 겨우겨우 2층으로 올라가서 매표소처럼 생긴 곳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거기는 옴니버스 즉 쿠바인용 버스 매표소란다. 옴니버스 매표소의 직원은 옆의 닫혀있는 문을 가리키면서 비아술 직원이 시간이 되면 저기로 올거란다. 

닫힌 문에 가까이 가보니까 손바닥만한 종이에 비아술 사무실이라고 써 있다. 이러니 찾을 수가 없었지. 게다가 문은 굳건히 잠겨있다. 별수 없이 그 근처 의자에 앉아 나의 취미 중 하나인 그림을 그리면서 기다렸다. 승객 대합실로 보이는 이곳은 전등이 거의 없어서 어두컴컴하다.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고 어두워서 마음이 우울해졌다. 잠시 후 비아술을 타려는 서양 여행객들이 몇 명 왔는데 그들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는 그 문을 몇 번 두드려 보고는 내 주변에 앉았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오니까 나도 그렇고 서양 여행객들도 그렇고 초초해졌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서로 번갈아 가면서 문을 두드려 보았다.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야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오더니 사무실 문을 연다. 바로 뒤따라 들어가서 비아술 맞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하고는 저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답답해서 결국 나와 서양 여행객이 각각 예약한 종이를 들이미니까 그제서야 버스표로 바꾸어준다. 어휴! 뭐니? 이 사람? 이제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까 그냥 1층으로 내려가란다.

서양 여행객들과 나는 짐을 끌고 1층으로 내려와서 여기저기 물어서 겨우겨우 비아술 대합실로 보이는 곳을 찾아갔다. 아무리 봐도 비아술 푯말은 없어서 여기가 맞나 싶다. 그리고 짐을 부쳐야 하는데 짐을 받는 사람이 없다. 서양 여행객들도, 나도 두리번거리다가 반쯤 포기상태가 되었다. 잠시 후에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비아술, 비아술하고는 소리를 친다. 우리가 일어나서 다가가니까 옆에 사무실 같은 곳으로 간다. 거기서 아저씨는 우리의 버스표를 확인하고는 짐 확인증을 써서 부실해보이는 끈을 트렁크에 묶는다. 그리고 그 종이절반을 찢어서 우리에게 준다. 그렇게 우리는 짐을 부쳤고 잠시 후 그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뒤늦게 온 승객들은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한참 후에 나타난 아저씨에게 짐을 겨우 부쳤다.

우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비체계적인 시스템이다. 예전에 인도나 중국, 페루 여행할 때 보았던 장면들이다. 이래서 짐 분실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비아술 버스가 도착했다고 누군가가 트리나다드, 트리나다드 소리를 치길래 따라가서 줄을 섰다. 짐수레에서 내 짐이 버스에 실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침내 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서 지난번에 본 한국 아가씨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도 트리나다드에 간다. 트리나다드에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숙소(차메로 아저씨네)가 있는데 그녀는 거기를 예약했단다. 나도 차메로 아저씨네에 가고 싶었으나 버스 스케쥴을 고려해서 터미널 바로 옆으로 정했다. 우리는 잠깐 여행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가 졸다가 하면서 드디어 트리나다드에 도착했다. 

버스가 연착해서 거의 12시가 다 되어 버렸다. 그런데 버스가 터미널까지 가지 못하고 길가에 멈춘다. 내려서 보니까 터미널 진입로가 공사 중이다. 버스에서 내려 짐을 찾고 있으려니까 어떤 사람이 와서 내 이름을 말한다. 숙소 주인이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고, 게다가 공사중이라 버스가 길가에 정차해서 그런지, 많은 숙소 주인들이 손님을 마중나와 있다. 마중 나온 사람들과 내려서 짐찾는 사람들이 뒤엉켜서 정신이 없다. 정신없는 가운데 한국 아가씨와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 주인을 따라 나섰다. 


내 숙소는 버스 터미널과 담벼락을 공유하고 있는, 터미널 옆집이다. 나는 여기서 이틀을 묵고 나서 새벽 첫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 숙소를 선택한 것이다. 역시 선택을 잘 한 것 같다. 주인도 친절하고 시설도 괜찮다. 숙소에 들어가니까 거실 같은 곳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숙소 주인의 부모님이란다. 인사를 하고 안쪽으로 따라 들어가니까 작은 마당이 나오고 숙소로 사용하는 방 3개가 나란히 있다. 보아하니까 자신과 부모의 집을 일부 개조해서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에어비엔비 형태다. 시엔푸에고스도 그런 형태의 숙소였다. 여기서는 이런 숙소를 카사라고 부른다. 숙소 주인은 작은 지도를 보여주면서 인근에서 갈 만한 곳, 걸리는 시간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 근처의 유명한 해변에 가는 방법, 버스 시간 등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마침 나에게 딱 필요한 정보였다. 어지간한 검색에도 잘 나오지 않는 정보라 어쩌지 싶었는데 너무 다행이다.

설명을 듣고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이미 자정이 넘은시간이지만 갈 곳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것은 바로 바로... 짜잔... 동굴 디스코텍이다. 하.하.하. 여기는 천연 동굴 안에 자리잡은 디스코텍이 유명하다.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한다는데 숙소에서 걸어서 20분정도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지만 디스코텍을 향해 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위험하지 않다. 

언덕을 올라가니까 디스코텍 입구가 있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500쿠바페소를 받는다. 여기에는 입장료와 맥주 2잔이 포함된 가격이다. 동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까 짐을 맡기는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그리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까 술을 살 수 있는 바가 나온다. 옆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나는 몸치지만 그래도 신기한 동굴, 신나는 음악에 절로 흥이 나서 둠칫둠칫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아서 더울 것 같은데 동굴이라서 그런지 덥지는 않다. 여기가 동굴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향도 훌륭하고 조명도 화려하다. 근데 환기는 어떻게 하는거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보았다. 



맥주 2잔을 알차게 마시고 사람들 사이에서 좀더 몸을 풀다가 (그냥 주변 사람들 춤을 흉내내보는 수준) 밖으로 나왔다. 아까 버스에서 본 한국 아가씨도 여기 온다고 해서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가 없다.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다. 에구구 힘들다. 이제 나는 숙소에 가서 쉬어야겠다. 내가 숙소로 내려오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디스코텍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자리가 꽉 차겠구나. 나같은 늙은이는 이쯤에서 빠져주길 잘 한 거 같다. 한국에서도 가지 않는 디스코텍까지 가보았으니 오늘 하루도 아주 즐겁게 마무리한다. 내일은 또 어떤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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