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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10. 2024

체 게바라의 꺼지지 않는 불

쿠바 여행기 8일

2023.12.03.일요일

아침, 아니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오늘은 이곳 트리나다드에서 첫 버스를 타고 산타클라라로 가는 날이다.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하는데 채크인은 6시 30분이다. 그래서 일부러 버스터미널 바로 옆 숙소를 잡은 것이다. 이 선택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숙소 주인에게 미리 말해서 새벽 6시에 채크아웃을 했다. 숙소 주인은 자기네 커피가 맛있다면서 그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내려주었다. 내가 어제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이 집 커피의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주인이 일부러 일찍 일어나 내려준 커피는 너무나 향긋했다. 

채크아웃을 하고 여유롭게 버스를 타러 나갔다. 그런데 매표소 입구에서 갑자기 화장실 신호가 왔다. 다시 숙소로 달려가 양해를 구하고 내가 묵었던 방의 화장실을 이용했다. 버스 터미널에도 화장실이 있겠지만 변기뚜껑이 없어서 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서는 도저히 큰 볼일을 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숙소가 바로 옆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다시 숙소에서 나와 매표소에 가서 버스 채크인을 하고 짐을 부쳤다. 그런데 짐을 받는 사람이 돈을 내란다. 지금까지 버스에서 짐을 부치면서 돈을 낸 적이 없다. 딱 보니까 이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돈을 받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100쿠바페소를, 어떤 사람은 50쿠바페소를 낸다. 어이가 없지만 별수없이 잔돈으로 남은 40쿠파페소를 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독일에서 온 엄마와 아기(3살 정도)를 보았다. 아기 아빠는 짐을 부치는 중이란다. 아기가 지루해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있길래 나의 휴대폰 게임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윳놀이인데 인터넷 연결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짧은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는데 아기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고 아기 엄마는 조금 이해한 것 같다. 이들은 베를린에 사는데 휴가 여행으로 한달 동안 쿠바 전역을 돌고 있단다. 아기와 함께 여행하기 쉽지 않은 나라인데 대단하다.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해서 10시 40분쯤 산타클라라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터미널 앞에는 코코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제일 앞에 있는 코코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니까 10달러를 내란다. 터미널에서는 일단 무조건 10달러를 부르는가 보다. 나는 3달러를 보여주었다. 나에게는 이것 뿐이라니까 그렇게는 안 된단다. 나는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짐을 끌고 그냥 걸어가려고 했다. 나에게 이 정도 걷기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코코 기사가 부른다. 나의 짐을 코코 뒷자리에 넣어주면서 타란다. 여기도 마음 약한 코코 기사가 있는 것이다. 사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너무 고맙네. 가는 도중에 어떤 쿠바노가 코코를 잡으려고 손을 든다. 목적지를 듣더니 코코 기사는 나에게 합승을 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라고 했다. 많이 깎아서 미안하니까. 다행히 합승한 사람은 나의 목적지를 지나쳐 어디론가 가는 사람인가보다. 코코는 무사히 나를 숙소에 내려주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있으려니까 숙소 주인이 나온다. 어떻게 알고 나왔지? 여기의 숙소 주인도 아주 친절하다. 작은 지도를 보여주면서 근처에 갈만한 곳과 걸리는 시간, 맛집 등을 추천을 해주었다. 주요 관광지 정보도 알려주었는데 체 게바라 묘와 추모관은 오늘 오후 4시까지 열고 내일은 열지 않는단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나는 체 게바라 묘와 추모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내일은 그곳이 문을 열지 않고 모레는 내가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나는 날이라 못 본다. 오늘 오후 4시 전까지 가야만 하는구나. 몰랐다면 자칫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뻔했다.

환전을 물어보니까 처음 아바나 숙소(1:220)에서 했던 것보다 좋은 환율(1:250)이다. 환전을 부탁하고 빨래부터 했다. 지금 빨래를 하면 내일 모레 떠날 때는 다 마를 것 같다. 한바탕 빨래를 하고 나서 숙소 바로 앞의 식당에 가서 근사한 점심을 먹었다. 이동하느라 고생한 나에게 주는 상이다. 일종의 게살 볶음밥 같은 것이다. 1,500쿠바페소인데 이 정도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다만 나에게는 좀 짜다.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까 그나마 덜 짜게 느껴졌다. 여행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대체로 서양의 음식들은 내 입맛에는 짠 편이다. 내가 평소에 너무 싱겁게 먹어서 그런가? 



밥을 든든하게 먹고 체 게바라 묘를 향해 길을 나섰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보통은 코코를 타고 간다는데 나는 늘 그렇듯이 걸어서 갔다. 3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라 산책하듯이 가면 된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면 동네구경을 할 수가 없지만 걸어가면 이런저런 구경을 할 수 있다. 

어떤 집에서는 빨래가 널려 있는데 겨울 왕국 타월을 보았다. 여기에도 미국 자본주의의 영향이? 지금 쿠바는 어마무시하게 찾아오는 관광객들, 급속하게 유입되는 자본주의의 물결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비싼 교통비, 비싼 관광지 물가, 바가지 요금 등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쿠바노들의 생활 방식도 이래저래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시엔푸에고스에서 만난 학생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이곳도 사람사는 곳인데 여기만 고립되어 살아가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시내에서 좀 벗어난 곳에서는 일렬로 늘어선 집들을 보았다. 3층짜리 건물인데 무슨 대규모 주택단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연립주택의 모습과 비슷하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나름대로 좋은 주택들이었을 것 같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많이 낡은 모습이다. 빛 바랜 페인트지만 쿠바다운 색으로 예쁘게 칠해져있다. 



숙소로부터 약 30분 걸어가니까 체 게바라의 묘와 추모관이 나온다. 그런데 추모관 내부에 들어가려면 모든 짐을 맡겨야 한단다. 내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마침 내 앞에 어떤 서양 아주머니가 아주아주 작은 허리쌕을 하고 있었는데 출입구의 경비병이 입장을 막았다. 그런 것도 안된단다. 경비병이 가리킨 방향으로 가니까 짐을 맡아주는 곳이 있다.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한단다. 내부 촬영은 당연히 금지란다. 심지어 여권이 들어있는 작은 귀중품 가방까지 다 맡겨야 한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래도 될까 싶지만 아까 그 경비병의 태도로 보아 아무것도 들지 않고 있어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나도 모든 짐을 다 맡기고 맨몸으로 가니까 경비병이 쓰윽 보더니 들어가란다. 추모관이자 묘역인 건물의 내부에는 체 게바라의 일생에 관련된 사진들, 총이나 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게 된다. 그 여행을 통해 빈곤과 기아, 제국주의의 횡포를 목격하고 혁명가로서의 사상을 키우게 된다. 그 여행기를 담은 것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혁명에 개입했다가 암살령이 내려져 멕시코로 망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와 함께 쿠바 혁명을 시도하는데 처음에는 실패한다. 그러나 다시 혁명을 일으켜 결국 미국을 등에 업은, 당시의 독재 정권을 붕괴시킨다. 혁명 성공 후에 피델 카스르로는 쿠바의 국가 원수가 되고 체 게바라는 장관이 된다. 하지만 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혁명을 찾아 볼리비아로 향했고 거기서 전투 중에 잡혀 총살당한다. 이후 그의 시신은 추종자들에 의해 이곳 산타클라라에 안장되게 된다. 

나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체 게바라 평전'을 보고 나서 그에게 매료되었다. 자신의 이상을 찾아 치열한 삶을 살았고 결국 자신의 이상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유복하게 자란 그가 여행을 통해 혁명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신기했고 하나의 혁명이 성공했는데 또다시 길을 나선 행동이 위대해 보인다. 나도 나름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만큼 치열하게 노력했던가?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큰 괴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인식이 나의 한계였던 듯하다.

추모관에 들어서자 체 게바라의 일생에 관련된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다지 크지 않은 공간이고 전시물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평소 찾아보기 어려웠던 체의 어린 시절 사진이나 직접 사용했던 물건들이 있어서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린시절 미소년이었던 체의 사진을 보니까 한 사람의 일생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구나 싶다.

전시실을 지나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방이 나온다. 여기가 체 게바라, 그리고 그의 혁명동지들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묘역 공간이다. 체가 마지막 참여했던 볼리비아 혁명에서 함께 했던 전사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한쪽 벽에 쭈욱 걸려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엄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벽의 끝에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불리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이 불꽃은 체 게바라의 멈추지 않는 혁명 정신의 상징인 동시에,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멈추지 않는 쿠바노들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크지 않는 불꽃이지만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고 수수한 공간이지만 이 불꽃이 주는 힘은 장엄하게 느껴졌다. 

몇년 전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주인공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불꽃으로 살겠다고, 그렇게 불꽃으로 살다가 가겠다고. 자신을 희생하여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주변을 환히 밝혀줄 수 있다. 그 빛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갈 길을 비춰주는 희망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마찬가지로 불꽃을 잃은 민족도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한때 뜨거웠던, 그러나 지금은 차가워진 나의 가슴이 이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다시금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이곳에 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추모관의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사진찍기 매니아이지만 이런 곳에서는 사진보다 내 눈에, 내 마음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 그런데 짐을 맡기는 곳의 벽면에 아까 본 '꺼지지 않는 불꽃' 구역의 내부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어서 그걸 한컷 찍어 보았다. 물론 이 사진으로는 그곳의 엄숙한 분위기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체 게바라의 묘를 뒤로 하고 다시 시내로 걸어왔다. 보통 다른 도시에서는 중심부에 큰 공원이 있고 그 주변에 성당, 시청,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이곳 산타 클라라에서는 성당이 공원으로부터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 보이는 성당은 내가 도착했을 때는 문을 닫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이 도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에는 Vidal Park라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그 주변에는 유명한 호텔과 예술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원은 관광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시민들이 이용하는 평범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미니카, 미니오토바이 등을 대여해주는 곳도 있다. 

공원 한 쪽에는 신발을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소년 동상이 서 있다. 뜬금없이 이게 뭐지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까 사연이 꽤나 복잡하다. 우선 이 소년 동상은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부상자들에게 물을 운반했던 소년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동상이란다. 그런데 이게 왜 쿠바의 산타 클라라에 있을까? 이 공원을 조성할 때 분수대를 꾸미기 위한 동상을 찾던 중 우연히 이 동상 사진을 보고 주문해서 들여왔단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들여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원이 조성될 때부터 여기에 자리하고 있었단다. 다만 지금 이것은 복제품이란다. 공원 조성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상이 파손되서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만들어 이곳에 설치했단다. 이국땅에 와서 이 소년에게 어떤 일들이 있던 것일까? 



산타 클라라는 유명 관광지는 아니다. 쿠바 중부에 위치한 대도시인데 교통의 요충지라서 철도와 버스가 대부분 이곳을 지나게 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전쯤 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괜찮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맞는 것 같다. 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것저것 정성을 들인 것도 그렇고, 음식 가격도 여느 관광지처럼 사악하지 않다. 또한 길거리의 사람들도 깔끔한 편이다. 옷차림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질꾸질한 차림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쿠바에서 여행하면서 공원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관광객에게 호객행위를 하거나 뭔가 추근덕대면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사람이 없다. 어디에 앉아 있더라도 매우 평화롭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공원의 옆 골목에는 쇼핑거리가 있어서 구경하러 갔다. 그런데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여기는 내일 다시 와서 구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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