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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24. 2024

역시 쿠바!

쿠바 여행기 16일

2023.12.11.월요일 

드디어 쿠바를 떠나는 날이다.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새벽에 나와봤으나 구름이 잔뜩 껴서 일출보기는 실패했다. 게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너무 춥다. 다시 숙소로 후퇴해서 쉬다가 아침이 되어 마지막 산책길에 나섰다.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구름은 예술이다. 쿠바가 주는 마지막 선물인 것 같다.

그동안 많이 다녔던 시내 중심가가 아닌 해변을 따라 쭈욱 내려왔다. 길가에는 무언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수많은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좀 낡았고 초라해 보인다. 철로 만든 오래된 조형물이라 바닷바람에 심하게 부식되어 있다. 녹슨 철이라 자칫 흉물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조형물들인데 하늘과 구름이 멋지게 배경이 되어 주니까 근사해 보인다. 내가 찍은 것은 하늘일까? 조형물일까?



숙소 방향으로 걸어오다가 쿠바스러운 건물을 보았다. 폐허같은 느낌의 건물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다. 그리고 나름 그림도 그려서 꾸며두었다. 왜 굳이 해골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해골의 눈에서는 꽃도 피어있다. 그냥 말로만 표현해서는 이 느낌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낡아빠진 건물에 해골 그림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것은 우중충한 분위기의 폐허일 것이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좀 다르다. 낡았지만 사람의 온기가 있고 해골이지만 유머가 있다. 

그동안 이 길을 여러번 오가면서 보았던 조형물도 다시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었다. 어느 유명한 조각가가 만든 것이라는데 그 옆 건물은 무너졌으나 조형물은 그대로 있다. 가끔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다. 여신이라고 느껴지는 여인의 얼굴인데 이상하게도 옆의 무너진 건물처럼 허무한 표정을 하고 있다. 분명 이 조형물이 여기 설치될 때에는 주변 건물들이 멀쩡했을 것이다. 그때도 이 여신의 표정이 허무하게 보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한번 더 베란다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사진이다. 이후 숙소 주인에게 부탁해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30달러)를 불러서 타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게 내가 가진 마지막 달러였다. 나의 예상보다 교통비와 식비가 많이 들어서 간당간당하게 다녔다. 마지막 택시비가 30달러 정도 될 거라고 예상해서 이 비용은 별도로 챙겨두었다. 그러길 잘 한거 같다. 쿠바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생각해보니 쿠바 여행에서 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예를 들면 관타나모와 산티아고 데 쿠바가 있는 남동쪽 여행을 못한 것, 살사를 배우지 못한 것(몸치라 가능할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활동 무대에 가보지 못한 것,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호텔방에 가보지 못한 것 등이 있다. 어쩌면 이런 아쉬움들은 다시 쿠바 여행을 하게 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뭔가 아쉬워야 다시 시도하게 된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내가 손꼽는 쿠바여행의 1위는 비냘레스 여행, 2위는 체 게바라의 묘, 3위는 바라데로에서의 휴식이다. 아!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학생들도 있다. 다만 그건 흔하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에 그때 친구맺기를 한 쿠바의 학생 소식이 올라온다. 만약 다음에 쿠바에 또 가게 된다면 그 학생에게 연락해보면 어떨까 싶다. 정말 또 쿠바에 간다면 비냘레스의 그 숙소에 묵으면서 친절한 주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여행기를 마무리 하는 지금, 나는 자꾸 쿠바에 또 가게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중간중간 예상보다 높은 물가 때문에 여행경비가 빠듯해서 스트레를 많이 받았다. 물론 은행이나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더 찾을 수 있는 카드도 가지고 갔지만 처음 예상한 경비를 지키려는,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정말 쓸데없는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 여행은 특별했다. 가보기 흔하지 않은 나라, 미국 비자를 포기해야 하는 나라, 아직은 정보가 많지 않은 나라, 인터넷이 오지게 느린 나라. 쿠바는 그런 나라다. 하지만 뜨거운 혁명으로 자유를 쟁취한 나라, 태양만큼 정열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어디서나 음악이 흘러나오는 나라, 카리브 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나라, 카리브 바다보다 더 깊은 하늘을 이고 있는 나라, 그게 쿠바다. 나는 그런 쿠바를 여행했다. 즐겁게 쿠바 여행기를 마무리하며 언젠가 다시 쿠바에 가볼 꿈을 꾸어본다.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꿈이 없다면 그런 일은 아예 이루어질 확률이 없다. 그래서 꿈은 일단 무조건 꾸어야 한다. 오래 전 쿠바 여행을 꿈꾸었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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