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도시 밴쿠버

축제와 시위

by 바람

2023.07.17. 월요일 [월요병]

월요병은 어디나 있다. 학교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다. 교사에게도 있고 학생에게도 있다. 한국에도 있고 캐나다에도 있다. 늦잠 자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고 일어나 학원을 향했다. 오늘 문법 시간에는 '나미'의 발표가 있다. 숙제 확인과 본문 공부를 하고 나서 '나미'의 발표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장갔던 이집트, 두바이에 대해 소개했다. 거기서 본 멋진 장면과 인상적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멋지다. 나는 여행 매니아지만 아직 이집트에 가본 적이 없다. 나도 언젠가 이집트에 가보고 싶다.

듣기 수업의 담당교사인 '윌'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아주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 반가워서 휴가가 어땠는지 물었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어디 산장에 갔다는 것 같은데 말이 워낙 빨라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마침 다른 학생들이 들어와서 참 다행이었다.

오늘도 숫자를 공부했는데 지난 주 내내 해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듣기는 역시 어렵다. 그리고 우리 듣기 교실에 일본 중학생 '하나'가 있는데 너무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교사는 물론 다른 학생들도 이 어린 학생이 힘을 내서 더 큰 목소리로 대답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다. 오늘은 '하나'가 조금 큰 목소리로 숫자를 읽어냈다. 다들 자기 일처럼 좋아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사람들 마음은 다 비슷비슷한가보다. 모두 이 어린 학생이 더 용기내기를 응원하고 있다.

읽기와 쓰기 시간, 드디어 대망의 작문 시험이다. 교사 '캔디스'는 칠판에 우리에게 제시했던 과제 중에서 'Time travel(past or future)', 'dream job'을 제시하고는 한 가지를 정해서 글을 쓰란다. 선택권을 주다니 고맙다. 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정했다. 이 문제를 제일 많이 연습해서 그나마 좀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습할 때 썼던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결국 쓰고자 하는 내용을 다 쓰지 못했다. 그래도 주말에 열심히 연습한 덕에 답안지 앞면을 넘겨서 뒷면까지 글을 써서 제출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 처음 와서 3일만에 보았던 작문 시험에서는 반페이지도 못 넘겼다. 그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오후 회화 수업에는 보강교사가 왔다. '캐서린'이 휴가를 갔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교사들이 휴가를 많이 가는구나. 그런데 학생들도 휴가를 갈 수 있단다. 2주간 휴가를 쓸 수 있는데 그 기간만큼 공부기간이 연장된다. 여기서 장기간 공부하는 학생들은 여름에 휴가를 많이 간다. 실력있는 교사들이 휴가를 많이 떠나기도 하고 또 여름에 단기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북적거리기 때문이란다. 정말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엘리베이터 타기도 힘들고 점심 먹을 공간도 부족하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숙제와 예습, 복습을 하고 나서 도서관의 게시판을 기웃거렸다. 이제부터 슬슬 학원의 체험활동, 도서관의 무료 프로그램, 어플의 영어회화 모임 등에 참여해볼까 한다. 여기 오기 전부터 깔아두었던 MeetUp 어플을 통해 '밴쿠버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신청을 해두었다. 다음 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MeetUp은 취미활동이나 언어공부 등의 각종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어플이다. 걷기, 뜨개질, 영화감상, 외국어공부, 책읽기 등 다양한 주제의 모임들이 지역별 대면 모임 혹은 온라인 모임으로 개설되어 있다. 여러 후기들을 읽고 꼼꼼하게 검토하여 '밴쿠버 한영언어교환' 모임을 선택했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라 두렵지만 일단 부딪혀보자.

그리고 도서관 게시판에서 전부터 찜해둔 영어회화 프로그램도 도전해볼까 한다. 이 영어회화 프로그램은 도서관이 아니라 시민회관에서 주관하는 것 같은데 확신이 들지 않는다. 휴대폰만으로 검색하려니 화면이 작아서 갑갑하다. 도서관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좀더 편하게 알아볼텐데 싶다. 그러려면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 검색했을 때는 도서관 카드는 1년 이상 거주자만 가능하다고 나왔는데 다시 찾아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확실하지 않다.

도서관 카드에 대해 물어보려고 안내 데스크로 향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나미'다. 나는 오늘 발표가 너무 멋졌다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녀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딸과 함께 여기에 와서 단기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 지난 주에도 도서관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지금도 딸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이번 주가 학원의 마지막 주라고 한다. 휴가가 짧아서 이번 주까지만 학원에 다니고 여행을 좀 하다가 귀국할 거란다. 나는 그녀의 열정에 감탄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엄마 역할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다니고 자기계발에도 열심이다. 정말 멋진 그녀의 인생을 응원한다.


2023.07.18. 화요일 [도서관 카드 만들기]

아무래도 다음 주에는 문법 Level test를 볼 것 같다. 그동안 배웠던 내용 중에서 몇 가지 내용에 대해 연습문제를 풀었다. '스튜어트'는 이런 유형이 시험에 자주 나오는 것들이라면서 여러번 강조했다. 학생 중에는 레벨을 빨리 올려서 여기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봐야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서 시험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냥 있지는 못하겠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을까?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 이번에 나는 내가 시험성적에 신경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와서 몰랐던 나의 성격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듣기 수업은 아직도 숫자를 공부한다. 계속 되는 숫자공부에 이제 좀 익숙해졌다. 어지간한 숫자는 자신있게 읽을 수 있다. 역시 반복 연습이 최고다. 그러나 읽기와 달리 듣기는 정말 어렵다. 듣기 방송은 내 귀를 통과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아, 붙잡고 싶다. 게다가 오늘은 단순한 숫자에서 한 단계 나아가서 %, /, 제곱근 등의 난이도 높은 것을 배웠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수포자(수학포기자)다. 심지어 숫자 공포가 있어서 가끔은 꿈에 위급한 상황에서 전화기의 숫자버튼을 잘못 누르는 악몽까지 꾼다. 이런 상황이니 영어 수학은 어떻겠는가? 이런 나에 비해 '루시오'는 이과생이라 그런지 이 분야를 아주 잘 하고 있다. 숫자 단원에서는 내가 '루시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오후 회화 수업은 스포츠와 운동에 대한 여러 표현들을 배웠다. 활동이 모두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게임을 했다. 예전에 보았던 알파벳을 조합하여 단어나 문장을 맞추는 미국 퀴즈쇼의 오마쥬이다. 교사는 칠판에 빈 동그라미를 16개 그렸다. 그리고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번째 그룹에게 알파벳 중에 아무거나 하나를 선택하란다. 그들이 A를 선택하니까 1점을 주며서 동그라미 중 하나에 A를 표시한다. 두번째 그룹이 C를 선택하니까 그들도 1점이고 C를 하나 표시한다. 세번째 그룹이 S를 선택하니까 3점을 준다. 무려 S가 세 개나 있다. 그렇게 해서 점차 채워지는 알파벳을 보면서 어떤 문장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학생들은 점수가 오락가락하니까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다들 승부근성이 있다. 게임 과정도 재밌었지만 이렇게 해서 나온 문장도 인상적이었다. 'Ignorance is bliss'(무지가 행복이다)인데 의역하자면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의미란다. 이런 말이 서양 속담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역시 사람사는 곳은 비슷비슷한가보다.

보충수업까지 알차게 듣고 도서관으로 갔다. 어제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까 도서관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주소지 증빙서류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오늘은 여행비자와 기숙사 서류를 가져왔다. 담당자는 내 서류들을 훑어 보더니 기숙사 서류에서 네 이름과 주소가 어디 있냐고 물어서 손으로 짚어 주었다. 서류들을 확인하고 나서 도서관 카드를 발급해주었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제 책도 빌릴 수 있고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마음껏 검색도 하고 오디오북도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나서 열나게 숙제를 했다. 오늘은 모든 과목이 한꺼번에 숙제를 냈다. 짰냐? 집중해서 숙제를 끝내고 나니 어깨가 뻐근하다. 가까운 곳에 '나미'가 그녀의 딸과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도 숙제가 한가득이란다. 지금이 7월의 3주째이고 다음 주에 Level Test가 있으니까 숙제도 덩달아 많아진 것 같다.


2023.07.19. 수요일 [휴대폰 긴급 알람]

문법 수업의 몇 명 친구들이 다음 달에 Level up을 한다고 들어서 그들에게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했더니 '아유미'는 여기 남을 거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까 Level up해서 만나게 되는 교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라고 했다. 평판이 별로 좋지 않단다. 다른 친구는 자기도 여기에 남고 싶지만 졸업을 위해 Level up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모두들 지금 가르치는 교사 '스튜어트'가 최고라고 했다. 내 생각에도 '스튜어트'는 참 좋은 교사다. 휴가를 가면서도 꼼꼼하게 수업 진도를 챙겼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좋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몇몇 교사들에 대해 품평을 했다. 나는 Level up을 하려면 멀었지만 어쨌든 유익한 정보다.

듣기 수업에서는 다각형에 대한 용어를 배웠다. 그밖에 수학에 관련된 단어들도 몇 개 더 배웠다. 또 다시 듣기 실전 연습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처음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내가 느끼기에 나뿐 아니라 학생들 대부분 숫자를 대하는 태도가 처음보다 한결 편해졌다. 역시 반복 연습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파트너와의 연습, 실전 문제 등을 풀어본 후에 '윌'이 내일은 small test로 단어시험과 숫자 연습 문제를 볼 거라고 했다. 테스트라는 말에 학생들이 또 아우성을 쳤다. 특히 이번 주에 새로 시작한 한국 학생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암만, 내가 그 심정을 완전 이해하지. 여기 시스템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읽기 수업에서는 재미있는 질문들에 답을 하는 활동을 했다. '만약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와 같은 것이다. 교사가 예를 들면서 자기는 은행에 갈 거란다. 그래서 나는 은행에 가서 돈을 훔친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녀는 은행에 가서 컴퓨터에 입력하는 비밀번호를 볼거란다. 그리고 비번으로 돈을 훔칠거란다. 와, 역시 엉뚱하고 유쾌한 그녀다.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그룹지어 토의했는데 학생들의 대답도 재미있다. 어떤 학생은 교무실에 가서 시험문제를 미리 보겠다고 했고 어떤 학생은 비싼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했다. 나는 비행기를 몰래 탈 거라고 했다. 그러면 세계 여행을 공짜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회화 수업 교실에 들어가니까 '루시오'가 주변 친구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까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 배운 답이 헛갈려서 의논들을 하고 있다. 그들의 문제지를 쓰윽 들여다보니 대략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나는 그들의 읽기와 쓰기 레벨보다 한단계가 높다. 그들이 어느 부분에서 헛갈려하는지 짐작이 가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 설명을 듣고 '루시오'가 엄지척을 한다. 내가 듣기는 약하지만 읽기는 좀 한다.

extra 수업은 시제 중에서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혼동하고 있는 내용을 기초부터 배웠다. 차근차근 배워서 이해가 충분히 되었지만 여전히 실전에서는 혼동스럽다. 그런데 수업 중간에 휴대폰에서 긴급 알람이 울렸다. 나만 울린게 아니라 학생들 모두 긴급 알람을 받았다. 놀라서 확인해보니까 영어로 뭐라뭐라 왔다. 교사도 자기 핸드폰으로 확인하더니 침착하게 설명해준다. 납치사건이 벌어졌단다. 상황으로 보아 어떤 부모가 서로 헤어졌고 아이를 한쪽에서 키우는데 반대쪽 부모가 아이를 납치했단다. 그래서 경찰에서 긴급 문자로 아이의 인상착의와 예상 도주 경로를 보내고 발견하면 경찰로 신고해달라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휴대폰 긴급 경보로 보낸다고? '마리아나'의 설명으로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괴같은 범죄가 일어나면 이렇게 긴급알림을 할 때가 있단다. 여기는 아동 대상 범죄에 더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구나.


2023.07.20. 목요일 [더위를 피하는 방법]

문법 수업은 예비시험으로 진행되었는데 은근히 헛갈리는 문제가 많았다. '스튜어트'가 답을 불러주는데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당황하고 다시 묻고 난리다. 답을 맞춘 후 학생들이 이 문제, 저 문제 심각하게 질문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열공 모드다. 원래 문법 교실은 늘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더욱 열기가 뜨겁다.

듣기 수업에서는 어제 예고했던 small test를 봤다. 단어와 숫자를 받아 적는 시험이었다. 15문제를 풀었는데 그 자리에서 학생들끼리 답안지를 바꾸어서 바로 채점을 했다. 그런데 나는 30점 만점에 29점을 받았다. 한 개의 스펠링만 틀렸다. 그럭저럭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매우 자랑스럽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은 드문 일이다. '윌'이 잘했다고 상을 주는데 자신의 얼굴이 박힌 작은 모형 지폐다. 그는 눈을 찡긋하면서 이걸 어디 가서 사용할 수는 없을 거란다. '윌'의 성격과 어울리는, 유머가 넘치는 상이다.

오늘 점심은 학생 라운지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들과 함께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오늘따라 주변의 어린 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 여름방학임을 실감하겠다. 딱 봐도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들이 많다. 특정학교에서 단체로 온 학생들도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앞 테이블에 일본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뒤섞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고 있다. 서로 장난도 치고 그러다가 삐지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도시락을 바꿔 먹기도 한다. 영어, 한국어, 일본어를 넘나들면서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 신기하다. 이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문득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생각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런데 보니까 나뿐 아니라 우리 테이블의 친구들이 모두 흐뭇한 표정을 이 어린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extra 수업 시간에는 학생이 4명뿐이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 숫자가 적으니까 '마리아나'가 한 명 한 명 말할 때마다 발음도 교정해주고 문법도 고쳐주어서 너무 좋다. 오늘의 주제는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다. 원래 밴쿠버는 많이 덥지 않아서 오래된 건물은 에어컨이 없단다. 그런데 최근에 지구 온난화 때문에 많이 더워져서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는 portable이라고 불리는 작은 에어컨을 사기도 한단다. '마리아나'는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수영을 추천해 주었다. 밴쿠버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몇 군데 알려주었다. '루시오'는 수영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주말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내가 수영을 못한다니까 '루시오'가 놀란다. 나는 1년이나 수영을 배웠지만 계속 가라앉아서 포기했다. 내 몸뚱아리는 그냥 걷기만 잘한다. 끝으로 각국의 여름 음식을 소개하라고 해서 나는 삼계탕을, 또다른 한국 학생은 팥빙수를 소개했다. 브라질 학생은 수박을 소개했는데 브라질 수박이 맛있단다. 밴쿠버의 수박은 대부분 브라질 혹은 멕시코산이란다. '루시오'는 망고에 칠리파우더를 곁들여먹는단다. 나는 흐헉했다. 칠리를?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까 내가 아는 매운 칠리와는 다른 종류인 것 같다. 단맛이 강한데 살짝 맵긴 하단다. 단짠은 아는 맛인데 단맵이라고? 어떤 건지 한번 먹어보고 싶다.


2023.07.21. 금요일 [만남과 헤어짐]

오늘은 아침부터 무척 바쁘다. '나미'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작별 인사를 써주려고 어제 카드를 사서 지금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인삿말을 쓰고 있다. 문법 수업 친구들이 유독 친해져서 다들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점심을 다같이 학원 옆 쌀국수집에 가서 먹기로 약속했었다. 식당에서 미리 메뉴를 받아와서 종이에 각자 시킬 음식을 쓰도록 했다. 짧은 점심시간에 먹으려면 주문을 미리 받아서 갔다주는게 좋을 듯하고 누가 뭐 시켰는지 알려면 기록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작별 인사도 쓰고, 메뉴도 쓰느라 엄청 분주했다.

'나미'는 '스튜어트'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한국에서는 존경하는 스승에게 이 꽃을 선물한다고 설명했다. '스튜어트'가 너무나 좋아하면서 즉시 꽃병을 가져다가 꽂았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스튜어트'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어린 학생들이 참여하는 여름학교의 책임자라서 점심시간도 못쉰단다.

'스튜어트'는 다음 주 월요일에 Level test를 볼 거고 화요일에는 test에 대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거라고 했다. 내가 처음 왔을 때가 바로 이 test 기간이었다. 그래서 문법 수업의 진도는 다음 주 수요일부터 나갈 거라면서 아주 친절하게도 다음 주 수요일 숙제를 미리 내주었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읽기와 쓰기 시간에는 또 작은시험을 보았다. 나는 내용 확인이나 단어 의미는 알겠는데 품사가 너무 어렵다. 작문문제는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대충 아는 단어로 돌려서 표현했다. 그렇게 그럭저럭 문제를 다 풀었더니 '캔디스'가 바로 가져가서 채점을 한다. 놀랍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학생들의 시험지를 즉시 채점해서 돌려주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5분정도 늦게 끝났지만 모든 학생이 바로 채점된 시험지를 돌려받았다. 나는 81점을 받았다. 나쁘지 않은 점수다. 뭐가 틀렸는지 이따가 복습해야겠다.

점심시간에는 문법 수업 친구들과 함께 쌀국수집으로 갔다. 가운데 긴 테이블을 예약해서 다같이 앉았다. 미리 주문을 해서 그런지 음식은 바로바로 나왔다. 그런데 정신이 너무 없다. 전세계에서 모인 12명의 친구들이 제각각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으려니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잊지 않고 '나미'에게 우리의 마음을 담은 작별 카드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나의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울컥한 마음도 들었다. 헤어짐이 너무 아쉽다. '루시오'도 눈가가 촉촉한 것이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우리 셋이 가장 정이 많이 들었다.

다들 한참 떠들면서 먹기도 하고 그 와중에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식사가 끝나갈 때쯤 가게 주인이 계산을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계산을 각자 하기로 하고 아까 메모한 순서대로 각자 카드를 꺼내서 긁었다. 사실 12명의 각자 계산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능했다. 알고보니 여기서는 여러 친구들이 함께 와서 식사를 해도 대부분 각자 계산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다만 12명이 단체로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일 것 같다. 가게 주인이 아주 진땀을 뺐다.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도 친구들은 함께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우하느라고 분주했다.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두기를 잘했다. 계산이 끝나도 서로 아쉬워 하면서 안고 인사하느라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래도 오후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라 하나둘 학원으로 올라갔다. 마지막까지 아쉬워하던 '루시오'와 '아유미'도 각자 갈길을 갔다. 나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나미'가 마지막 남은 회화 교사에게 줄 꽃을 사러 가는데 따라갔다. 꽃가게가 우리 학원 근처에 있는 걸 처음 알았다. 나도 마지막 날에 정든 사람들에게 꽃을 선물해야겠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나의 마지막 날이 오긴 올까? 아직 까마득한 것 같다.


2023.07.22. 토요일 - 23. 일요일 [불꽃놀이와 시위]

토요일 밤에는 밴쿠버의 유명한 축제가 있어서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구경하러 갔다. 일본 자동차 회사인 '혼다'가 주최하는 불꽃놀이 축제다. 왜 일본 회사가 밴쿠버에서 이 행사를 주최하는지는 모르겠다.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불꽃놀이 축제라는데 오늘부터 3회에 걸쳐 진행된단다. 각각 다른 나라의 불꽃놀이 팀들이 나서기 때문에 3번 모두 다른 불꽃놀이를 구경할 수 있단다. 장소는 우리가 소풍 갔던 잉글리쉬 베이 비치(줄여서 잉베)란다. 우리는 느긋하게 집에서 걸어갔다. 시내에 있는 숙소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거리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서 깜짝 놀랐다. 밴쿠버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여기 모인 것 같다. 잉베는 몇 시간전부터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들었다. 우리는 잉베 근처의 선셋 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경했다. 규모가 큰 불꽃놀이라서 그런지 정말 멋지다. 물가에 비치는 것도 아름답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데 학원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의 줄이 너무 길어서 다른 정류장으로 걸어서 간다고 했다. 무사히 잘 가라고 인사하고 우리는 집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집으로 갔다. 우리 숙소의 위치를 다시 한번 칭찬하면서.

일요일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큰 쇼핑몰에 다녀왔다. 도서관에서 지하철역을 향해 가는데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복장으로 보아 이슬람교도들인 것 같다. 그들이 뭔가를 외치고 있는데 찻길 건너편에 또 다른 무리들이 있다. 길 건너편 사람들은 보아하니 이슬람교도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이슬람교도들의 주장은 그들의 언어로 써 있어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길 건너편 사람들의 주장은 영어로 써 있어서 역으로 추리해 보았다. 영어로 써 있는 내용은 여성의 삶에 자유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도들의 주장은 아마도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에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반면 길 건너편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가 여성을 탄압한다고 반대하는 것 같다. 나중에 보니까 이슬람교도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쇼핑몰이 있는 메트로타운역에 내리니까 여기서도 무언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필리핀에 대한 차별, 탄압 이런 것을 하지 말라는 내용인 것 같다. 한쪽에서는 여러 종류의 피켓들을 들고 있고 한쪽에서는 서명도 받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영상도 촬영하고 있다. 주말이라 그런지 뭔가 이것저것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필요한 물건을 사가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숙소 인근의 예술회관 앞에서 축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까 방글라데시 축제다.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다. 무대 앞쪽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고 한쪽에서는 부스를 만들어서 이것저것 음식도 나누어 먹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아주 다양한 것을 보았다. 어제는 불꽃놀이 축제를 구경했고 오늘은 한쪽에서는 시위를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축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축제나 시위를 하는 주최가 각각 다른 나라,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게 밴쿠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 그게 바로 밴쿠버인 것 같다. 나는 이제 조금씩 밴쿠버를 알아가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학원을 벗어나 이 지역을 좀더 탐험해봐야겠다. 이번 어학연수는 영어공부의 의미도 있지만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의 의미도 있다. 어쩌면 나의 밴쿠버 생활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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