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friend와 My guys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by 바람

2023.07.10. 월요일 [Best friend]

'야호! 신나는 월요일이다'라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 앞은 월요일이라 북적거렸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들어오지만 중간 월요일에도 제법 많은 신입생들이 들어온다. 특히 지금은 방학 시즌이라 밴쿠버는 여기저기 어학연수 온 학생들로 넘쳐난다.

교실에 들어서는데 문법 교사 '스튜어트'가 먼저 와 있다. 드디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그는 내가 온 첫날만 수업을 하고 휴가를 가는 바람에 이번이 두번째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그는 나에게 지난 주 보강교사가 한 사람이 계속 들어 왔는지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까 흡족해한다. 그리고는 수업 진도를 어디까지 나갔는지, 금요일에 내준 숙제가 있는지 묻는다. 내가 진도를 알려주고 금요일은 숙제가 없었다고 하니까 좀 놀라는 눈치다. 나도 좀 놀랐다. 내가 교사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상황에 스스로 놀랐다. 뭐지? 나는 지난 주보다 더 잘 들리는 것인가? 혹은 '스튜어트'가 나의 수준에 맞게 쉬운 단어를 또박또박 말해서 알아들은 것일까?

학생들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자 '스튜어트'는 학생들 한 명씩 확인하고는 누구는 언제쯤 Level up을 하고 누구는 언제까지 다니는지 등을 확인했다. 참, 롤러코스터를 탄 첫 주에 나의 멘털을 지켜준 '유리'는 지난 주에 이미 Level up을 해서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지난 주에 들어온 신입생들과 친구가 되었다. 고작 2주가 지났을 뿐인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학생들 스케쥴을 쭈욱 들어보니까 잘하면 다음 달에는 나 혼자 남을 수도 있겠다. 이번 달만 다니는 학생들도 많고 다음 달에 Level up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제 겨우 친해지고 있는데 아쉽다.

듣기 시간에는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오늘의 주제는 국경일에 대한 것이다. 교사는 캐나다의 국경일 중 하나를 소개하고 어떤 행사가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나라에 어떤 국경일이 있고 그날 주로 어떤 행사를 하는지 말해보라고 시켰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자기 나라를 소개하고 인구가 몇 명인지, 자신이 사는 곳이 어딘지를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교재에는 국경일에 대한 질문 바로 아래에 인구와 주소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첫날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엉뚱한 답을 했다. 정말 교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들려야 한다. 아니 알아들어야 한다.

한동안 우왕좌왕하다가 겨우겨우 학생들이 질문을 이해하고 각 나라의 국경일에 대해 소개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주로 서양에서는 국경일에 축제도 하고 여러가지 이벤트를 즐기는 것 같다. 멕시코나 브라질 학생들은 국경일에 축제를 하고 춤도 추고 특별한 음식도 만들어 먹는단다. 반면 동양에서는 대체로 국경일에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가 중심이고 개인적으로 그걸 즐기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학생이 비슷비슷하게 말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오늘 간단한 퀴즈를 본다고 했는데 퀴즈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시험이었다. 문장 속에서 단어의 품사를 확인하는 문제, 적절한 단어를 찾아 메꾸는 문제, 지문의 내용을 파악하는 문제들이 어떻게 간단한 퀴즈일 수 있겠는가? 지난 주에 배웠던 단어들이고 읽었던 지문이긴 하지만 시험은 역시 너무 어렵다. 허겁지겁 문제를 풀고 나니까 걷어간다. 문제를 풀 때는 시간이 두 배로 빠르게 가는 것 같다.

오늘 점심시간에도 브라질 학생 '루시'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했다. 그들은 학원에서 제공하는 야외활동으로 카누를 타러갈 것이란다. 나도 같이 가자고 하길래 노 땡큐했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물놀이는 무섭다. 지난 주말에 미국 시애틀에 놀러갔다 온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점심시간이 끝났다. 놀 때도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시험 볼 때와 놀 때는 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걸까?

오후 회화 수업에서는 그룹별로 자기소개하는 활동을 했다. 이름, 생일, 사는 곳, 나이, 취미, 직업 등을 소개했다. 65세의 멕시코 학생 '루시오'과 55세의 한국 학생 나, 그리고 21세의 브라질 학생과 17세의 일본 학생이 같은 그룹이 되었다. 정말 다양한 국적, 다양한 나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다 같이 친구가 될 수 있다. 그것도 또한 신기하다.

수업이 끝나자 '루시오'가 나에게 멕시코에 언제 여행올 거냐고 묻는다. 지난 주에 그녀가 사는 멕시코에 언젠가 여행가겠다고 했더니 언제 올거냐고 묻는 거다. 아직은 모르겠다고 하니까 멕시코에 오면 자기 집에 오란다. 초대한단다. 아싸! 나는 이제 멕시코에 가면 놀러갈 친구가 생겼다. 나는 멕시코에 여행 가면 꼭 너에게 가겠다고 했다. '루시오'는 저번에 회화교사가 이 학원의 best friend가 누구냐고 물어서 내 이름을 말했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 우리는 best friend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갔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집중해서 숙제와 예습, 복습을 했다. 이제 이런 공부 습관이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시간도 점차 단축되고 있다. 공부하고 나서 약간 시간이 남아서 도서관의 만화책 코너에 갔다. 내가 만화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여기 만화책은 스크립트가 모두 대문자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너무 불편하다. 아무래도 동화나 소설 읽기로 목표를 바꾸어 도전해봐야겠다.


2023.07.11. 화요일 [어렵고 뿌듯하고]

문법 교실에는 늘 내가 일등으로 도착하고 이어서 '루시오'가 온다. 우리는 숙제의 답부터 서로 맞추어 본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 둘 학생들이 들어오고 다같이 답을 확인해 본다. 점점 함께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이것이 익숙한 루틴이 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하다.

새로운 단원이 시작되었는데 망할놈의 시제다. 본문 내용은 쉬운데 시제는 어렵다. 게다가 이번 단원은 시제들이 혼합되어 있다. 문법 설명은 겨우겨우 이해했지만 연습문제를 풀 때는 헛갈렸다. 어떤 문제는 확실히 알겠는데 어떤 문제는 알 듯 말 듯하다. 수업이 끝난 후 '루시오'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저으면서 너무 어렵다고 했다.

듣기 시간에는 새로운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 보강 교사는 전에 문법 수업에도 보강 들어왔던 사람이다. 아마 보강 전담 교사인가 보다. 오늘의 주제는 숫자를 영어로 표현하는 것인데 학생들 전부 멘붕에 빠졌다. 숫자의 단위가 점점 높아지는데 정말 미치겠다. 안그래도 나는 숫자에 약한데다가 영어로 말하려니까 더 어렵다. 896, 266, 708을 어떻게 영어로 말하는가? 콤마 단위로 끊어 읽는 것도 알고 백, 천, 만, 십만의 단위도 알지만 이걸 영어로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방송을 듣고 숫자를 써보란다. 서너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다들 어렵다고 난리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다들 기진맥진했다. 에고, 어렵다. 어려워.

읽기와 쓰기 시간에는 글쓰기의 기초로 소재, 주제, 문단의 구조를 잡는 것을 배웠다. 주제를 하나 정해서 문단 구조도를 채워오는 것이 숙제란다. 참고로 전직 국어교사였던 나에게는 이런 글쓰기는 매우 쉽다. 문제는 이걸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 번 글쓰기보다 더 다양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점심시간에 학생 라운지로 가니까 자리가 꽉 차서 앉을 곳이 없다.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다. 도저히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어서 복도에서 방황하는데 '루시오'와 마주쳤다. 때마침 한국 친구 '나미'도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는 학생 라운지를 포기하고 빈 교실을 찾았다. 대부분의 교실에도 학생들이 가득하다. 다행히 빈 자리가 있는 교실을 찾아서 함께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이 각양각색이다. '루시오'는 주로 견과류와 과일을 먹고 '나미'는 홈스테이에서 싸준 샌드위치를 먹는다. 나는 오늘 샐러드 도시락을 싸왔다. 우리는 문법 공부, 취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가 짧아서 단어 위주로 듣고 말했지만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은 다 된다. 즐거운 수다였다.

extra 수업에 참여했다. 오늘의 주제는 전화기 발명이야기다. 대부분 알고 있듯이 벨이라는 사람이 전화기를 발명했단다. 벨이 전화기를 발명했을 때의 영상을 보았는데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 전화기를 테스트하면서 벨이 다른 방에서 반대쪽 수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이 '미스터 왓슨, 여기로 오게. 나는 자네가 오기를 원하네.'였다. 이 대목에서 교사 '마리아나'와 나는 웃었는데 다른 학생들은 웃지 않았다. 기껏 전화기를 발명해 놓고 처음 한 말이 여기로 오라니 웃기지 않나? 문득 나는 이제 이런 농담을 알아듣고 웃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주에 다른 학생들과 교사가 농담을 두고 웃는데 나 혼자 웃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우와, 나는 정말 엄청 발전했구나. 스스로 뿌듯해졌다. 생각해보니까 웃기다. 어렵다고 아우성치다가도 어느 순간 뿌듯함을 느낀다. 매일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러다가 건강해지겠는걸.


2023.07.12. 수요일 [꾸준함이 관건]

문법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 사이에 토론이 붙었다. 숙제의 답을 맞추어 보던 중에 한 문제에 대해 서로 답이 달랐는데 이제는 지금까지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서투른 영어지만 각자 왜 자신이 이 답을 선택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아직은 다들 확실하지 않다, 자신이 없다, 역시 문법은 어렵다고 말하지만 점차 뚜렷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토론이 발전하고 있다. 음, 아주 아주 바람직하다.

'스튜어트'가 숙제를 확인해주면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은 해소가 되었다. 나는 이제 교사의 말 중에 제법 많은 부분을 알아듣고 있다. 물론 주로 문장이 아니라 단어 단위로 알아듣지만, 그래도 숙제하면서 고민하고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생각해서 그런지 쏙쏙 귀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다. 다만 이론과 실전의 간극은 아직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설명을 들으면 알겠는데 그걸 문제에서 풀 때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

듣기 수업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숫자에 대해 공부했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사칙연산까지 배웠다. 오늘도 학생들은 멘붕이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 이번에도 방송을 듣고 사칙연산의 답을 맞추라고 한다. 나는 정말 숫자에 약해서 한국말로 사칙연산을 해도 손가락을 동원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걸 영어로? 도저히 답을 못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급하니까 뭔가 듣기는 듣는다. 숫자를 겨우 듣고 손가락을 동원해서 몇 문제는 맞추었다. 학생들은 오늘도 기진맥진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에 이어 문단 개요잡는 것에 대해 좀더 배웠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정하고 그 이유를 써보는 활동을 했다. 주제 중에는 어릴 적 꿈꾸던 직업에 대한 것이 있었는데 교사 '캔디스'가 자신의 사례를 예로 들어 주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고 싶었단다. 좀더 커서는 하늘을 날고 싶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서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단다. 정말 자유분방하고 유쾌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꿈꾸던 직업과 그 이유를 간략히 써 보란다. 나도 만화가, 기자, 교사 등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런데 이걸 영어로 표현하려니까 쉽지가 않다. 만화가가 영어로 뭐지?

오늘 점심도 '루시오', '나미'와 함께 했다.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다니까 '루시오'가 매우 놀란다. 그녀는 혼자서 여행한 적이 없단다. 그러면서 멕시코에는 언제 올거냐고 또 묻는다. 우선 여기 공부가 끝나면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캐나다 북쪽)에 가고 그 다음에는 쿠바 여행을 갈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도 멕시코는 그 후에 가게 될 것 같다. '루시오'는 내가 쿠바 여행을 간다니까 더 놀란다. 갑자기 여행 이야기를 하니까 나의 여행 세포들이 요동친다.

회화 수업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순위를 매기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TV 보기, 원어민과 대화하기, 영어 책읽기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는 '영어로 생각하기'가 있는데 그게 가능하면 영어공부가 필요할까 싶다. 나는 영어 공부 방법이 다 비슷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다르다는 것에 놀랐다. 나의 경우 TV 보기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낮은 점수를 주었는데 어떤 학생은 1등으로 선택했다. 다들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방법이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다들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이 있다. 어떤 방법이든지 꾸준히 유지하는게 어렵다는 것이다. 맞다.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하는게 관건이다.

오늘 extra 수업은 문법이다. 내가 문법 시간에 배운 시제 부분이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마리아나'가 그 부분을 아주 자세히 다루어주었다. 친절한 '마리아나' 덕분에 복습도 하고 연습문제도 많이 풀었다. extra 수업에 오는 학생들이 들락날락 불규칙적인데 나와 '루시오'는 고정으로 듣는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나'와 많이 친해졌다.

'루시오'와 나는 수업을 모두 마치고 헤어지면서 오늘도 수고했다고 서로 다독여 주었다. '루시오'는 이곳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아들 집으로 가야한다. 대중교통을 두 번 갈아탄다는데 그 먼 길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3.07.13. 목요일 [My guys]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문법 숙제를 가지고 학생들끼리 토론이 붙었다. 어제보다 좀더 명료하게 두 가지 답으로 학생들 의견이 갈렸다.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제 교사가 설명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근거를 들었다. 이번에는 의견이 팽팽하다. 우리가 신나게 토론하는데 '스튜어트'가 들어오길래 곧바로 답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우리 모두 틀렸단다. 두 개의 절이 붙어 있는 문장을 두고 우리는 당연히 복합시제라고 생각해서 어느 쪽이 과거 진행인가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이것은 복합시제가 아니라 단일시제란다.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다들 웃으면서 속았다고 말했다. '스튜어트'는 시험볼 때 이런 함정문제를 조심하라고 했다. 글쎄, 함정문제를 피할 정도면 꽤 실력이 있어야겠지?

듣기 수업은 오늘도 숫자놀이를 했다. 이번에는 날짜와 시간을 배웠는데 그나마 사칙연산보다는 낫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도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 풀어서 이것저것 많이 틀렸다. 영어도 어려운데 덜렁대기까지 하니까 곤란하다. 내가 문제를 안 읽어서 틀렸다고 하니까 '루시오'가 놀란다. 왜 문제를 안 읽었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다. 덜렁대는 성격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점차 대화의 깊이가 깊어지니까 단어가 너무 딸린다.

오늘 점심도 '루시오', '나미'와 함께 먹는데 브라질 학생 '루시'가 합류했다. 밥을 먹으면서 '루시'가 채식주의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 학생들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알러지를 가진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 간식을 나눠 먹을 때 주의해야 한다. '나미'가 내일은 금요일이니까 열심히 공부한 우리 자신에게 상을 주는 의미로 점심을 학원 옆 카페에서 사먹자고 제안했다. '루시'는 선약이 있어서 못가고 '루시오'와 나는 좋다고 했다. 야호! 내일은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회화 시간에는 친구들 사이에 허용되는 행동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자끼리, 여자끼리, 남녀간에 손잡기, 껴안기, 볼에 키스, 입술에 키스 등 행동이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지 각자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달라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아무래도 동양은 덜 허용적이고 서양은 더 허용적이다. 그런데 개인에 따라서도 의견은 또 조금씩 달랐다. 남자끼리, 여자끼리에 대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문화의 차이도 이해할 수 있고 개인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토론이었다.

extra 시간에는 건강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야채, 과일, 견과류 등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느 나라나 비슷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도 있었다. '마리아나'는 peanut butter jelly가 좋은 음식이란다. 빵에 땅콩버터와 잼을 함께 발라 먹는 것인데 이것이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의 아침이나 간식으로 흔하단다. 나는 칼로리 폭탄이라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단다. 땅콩버터와 잼에 여러 영양소가 있어서 좋은 음식이란다. 전세계의 희한한 음식이나 재밌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질문지를 보면서 서로 묻고 답하는 활동도 했다. 학생들이 아주 신나게 활동하는 모습을 '마리아나'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나가는데 '마리아나'는 'My guys, have a good day!'라고 여러번 인사했다. 어쩌면 'My guys'가 상투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왠지 뜻깊고 친밀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 가서 열공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렀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기숙사의 한국 친구들과 소풍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와 이번 주에 저녁식사 시간이 겹쳐서 몇 차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날씨 좋은 밴쿠버를 즐기자며 주말에 도시락을 싸서 기숙사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놀러가기로 의기투합했다. 나는 한인 마트에서 떡볶이 만들 재료를 샀다. 장을 보고 와서 씻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나니 또 늦은 시간이다. 냉장고를 여러 명이 나누어 사용하다보니 내 지정칸에 재료를 넣으려면 수시로 정리해야만 한다. 한국의 내 냉장고가 그립다. 나는 살다살다 냉장고가 그리울 줄은 몰랐다.


2023.07.14. 금요일 [즐거운 외식]

오늘도 문법 수업 시작 전에 숙제를 두고 학생들끼리 답을 확인하면서 토론을 했다. 우리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니야? 답이 서로 달라서 다시 읽어보는데 어제 내가 풀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살펴보니까 보인다. 왜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걸까? 신기하다. 이래서 이런 토론과 복습이 필요한 것이다.

수업 내용 중에 두바이의 변화에 대한 글이 있었다. 마침 '나미'가 두바이에 출장갔던 이야기를 해서 흥미롭게 들었다. 그녀는 이집트, 페루 등으로 출장을 다녔단다. '나미'가 출장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자 '스튜어트'는 그 사진을 월요일에 프리젠테이션으로 해서 다 같이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미'는 쿨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에 다들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 월요일이 기대된다.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문단 개요 작성하기를 했다. 주제 문장, 소주제 문장과 그 이유 혹은 근거 문장 만들기를 했다. 그리고 지원 문장들과 마무리 문장을 작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소주제와 그 이유에다가 예시까지 추가하여 제법 그럴듯한 작문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 writing test를 할 건데 미리 알려준 5가지 주제 중에서 하나로 시험을 볼 것이란다. 이따가 도서관에 가서 준비를 좀 해야겠다. 평소 시험성적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쓰기 시험은 잘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나마 읽기와 쓰기는 다른 영역보다 자신있으니까 이 영역에서만큼은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루시오', '나미'와 함께 학원 옆 카페에 갔다. 사교성 있는 '나미'는 벌써 가게주인과 친해졌다. 우리는 신나게 메뉴를 고르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센스있는 가게주인이 한국 노래와 멕시코 노래를 번갈아 틀어주어서 우리는 더욱 신났다. '루시오'는 멕시코 노래가 나오자 얼굴이 활짝 피더니 어깨를 들썩인다. 너무 흥겹고 행복한 분위기다. 이야기 중에 '루시오'는 큰 아들이 결혼할 때 미국노래만 나왔는데 며느리가 미국 사람이라서 그랬단다. 그래서 자기와 자기 동생은 춤도 못추었단다. 우리는 '루시오'에게 이제 영어를 배웠으니까 며느리에게 말하라고 했다. 'When you marriged with my son, Songs was All US song. So I could`nt dance.' 문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서 다같이 너무나 유쾌하게 웃었다. 고부 간의 어려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나 있나 보다. 아니, 고부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의 차이인 건가? 우리가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먹고 있으려니까 가게주인이 서비스라면서 작은 호두파이를 준다. 게다가 센스있게 3등분해 주었다.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 가게 주인의 친절함까지 더해져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다. 오늘은 스탠딩 책상에서 공부했다. 학원에서 계속 앉아 있었더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한국의 내 집에는 올렸다 내렸다 하는 책상이 있는데 너무 그립다. 때마침 서서 공부할 수 있는 스탠딩 책상을 찾아냈다. 앞으로는 여기서 공부해야겠다. 우선 문법 숙제부터 하고 나서 작문 테스트 준비를 했다. 찾아봐야 할 단어들이 많다. 특히 서두에 쓰는 주제 문장과 마지막에 쓰는 마무리 문장이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어휘로 표현되어야 한단다. 내가 사용할 줄 아는 단어는 탈탈 털어도 몇 개 안되어서 너무 어렵다. 일단 급한대로 5가지의 개요도를 다 작성해두기로 하고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그런데 4개째 작성할 때 도서관 문을 곧 닫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구경하다가 블루베리를 세일해서 잔뜩 사왔다. 블루베리를 씻고 있는데 일본 학생이 와서 내일 이사간다고 말했다. 여기는 학생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이제 겨우 안면을 익혔는데 아쉽다. 그녀가 방을 청소하는 사이, 잽싸게 블루베리를 작은 봉지에 담고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열쇠고리와 함께 작별 선물로 주었다.


2023.07.15. 토요일 ~ 16. 일요일 [주말은 소풍이지]

토요일은 아침부터 빵을 정리하느라고 분주했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빵가게 들렀다. ToGoodToGo 어플을 통해 예약한 곳이었다. 이 어플은 한국에는 없는 것이다. 취지는 지구를 지키자는 것인데 음식점에서 팔고 남은 음식 중에 유통기한이 아직 남은 것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사갈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어플이다. 물가가 높은 이곳에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어플이다. 나는 이 시스템이 한국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의견도 있겠지만, 나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버려지는 것이 매우 아깝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위생적인 면이나 안전 면은 잘 지켜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ToGoodToGo를 벌써 몇 번 이용했다. 15,000원 정도 하는 샐러드를 5,000원에 사오거나 30,000원 정도 하는 피자를 8,000원에 사왔다. 음식의 종류와 가격이 다양하고 픽업할 수 있는 시간대도 다 다르다. 어제는 빵가게가 떴길래 한번 가봤더니 5,000원에 식빵, 바게뜨, 머핀 등 다양한 빵을 많이 준다. 혼자 다 먹기 어려워서 기숙사의 한국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한동안은 샌드위치 도시락을 부지런히 싸야겠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 나는 떡볶이와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친구들은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블루베리와 체리까지 곁들여서 훌륭한 소풍 도시락이 되었다. 기숙사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잉글리쉬 베이 비치라는 유명한 해변이 있다. 이 해변은 스탠리 파크라는 공원으로 이어진다. 주말이라 그런지 해변과 공원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놀러 나왔다. 우리도 경치 좋은 곳에 돗자리와 비치타올을 펼치고 소풍을 즐겼다.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모처럼 한국말로 신나게 수다를 떠니까 천국이 따로 없다. 잠시 누워서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면서 쉬었다. 기숙사로 돌아와서 간단히 씻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 앉아 맥주 한 잔을 기울였다. 그때 마침 오늘 새로 이사들어온 일본 학생이 인사를 건네왔다. 다같이 앉아서 체리와 블루베리를 안주삼아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이들보다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흐름은 따라갔다. 공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일본 드라마, 한국 가수, 여행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우리가 오늘 피크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니까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이럴려고 내가 기숙사를 선택한 것이지. 앞으로 기숙사의 다른 친구들과도 더 친해져야겠다.

이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갔다. 벌써 이곳에 온지 3주가 지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거의 매일 울면서 잠들었던 폭풍같은 첫째 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힘을 냈던 둘째 주를 지나 이제는 제법 안정적인 셋째 주를 보내고 있다. 물론 아직도 영어가 어렵다고 아우성칠 때도 있지만 발전해 가는 내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루에도 여러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이제 그것이 첫 주만큼 힘들지 않다. 오히려 좀 즐기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시간이 흘러 적응한 것도 있지만 best friend도 생기고 My guys라고 해주는 선생님도 생겨서인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는 행복하다. 어쩌면 이번 어학연수는 영어 실력보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큰 소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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