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새로운 만남
2023.07.24. 월요일 [비 내리는 밴쿠버]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밴쿠버에 와서 처음 내리는 비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서 종종 걸음으로 학원에 갔다. 오늘은 문법 Level test를 보는 날이다. '스튜어트'는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부하면서 시험지에는 아무 것도 표시하지 말고 답안지에만 답을 표시하라고 알려준다. 이곳에서는 시험지를 다음에도 재활용하기 때문에 시험지에 아무 것도 표시하지 말아야 한단다. 내가 온 첫날, 그걸 못 알아듣고 시험지에 메모했다가 당황한 경험이 있다. 객관식 50문제를 50분동안 푼다. 내가 알고 풀 수 있는 문제는 몇 개 안된다. 모르는 것은 그냥 과감하게 찍었다. 아는 문제만이라도 제대로 풀자. 점수는 포기다. 내가 푼 문제만 맞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이다. 내일 채점해보면 알겠지.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는 그동안 배운 내용을 가지고 게임을 했는데 게임 방식이 재밌다. 학생들을 3그룹(각 4명씩)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팀에 1번선수, 2번선수, 3번선수, 4번선수를 정해주었다. 칠판에 8가지의 문제 유형을 제시한다. 본문 내용 확인, 단어 빈칸 메꾸기, 품사 유형, 그림으로 표현하기, 몸으로 표현하기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각 유형에 1점 문제부터 5점 문제까지 선택할 수 있단다.
먼저 각 팀의 1번 선수들부터 불려 나갔다. 교사 테이블에 공이 하나 있는데 문제를 듣고 그걸 먼저 집는 선수에게 답을 맞출 기회가 있단다. 일종의 부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 문제의 선택권은 1그룹의 1번 선수에게 주었다. 그 학생은 품사 유형의 3점짜리를 선택했다. 첫 문제부터 3점짜리라니 품사 문제에 자신이 있나 보다. 역시나 1그룹의 1번 선수가 답을 맞추었다. 그렇게 1그룹이 3점을 획득했다. 이제야 룰을 이해한 학생들의 열기가 서서히 달구어졌다.
나는 2그룹의 2번 선수였다. 나에게 문제 선택권을 주길래 자신있는 본문 내용 확인 3점짜리를 선택했고 결국 내가 맞추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재미있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은 주로 그림으로 표현하기와 몸으로 표현하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림이나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각 나라마다 달라서 재밌는 장면이 많았다. 중간중간 웃긴 그림과 우스운 몸짓들이 나와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결국 그림과 몸으로 표현하는 문제들이 제일 먼저 솔드아웃되었다. 한바탕 재밌는 게임이 끝났다. 우리 그룹이 중간까지 선두를 달렸는데 막판에 역전 당했다. 하지만 승부보다는 모두들 재미있게 즐겨서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는 학생들에게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다들 불꽃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 수요일에도 있다는데 이번에는 잉베에 가서 봐야겠다. 거기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입장료를 받는 곳을 제외한 해변 공간은 무료란다. 일찍 가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지만 나는 혼자니까 슬쩍 아무데나 끼어 앉아도 될 것 같다. 우리와 함께 밥을 먹던 멕시코 학생이 '루시오'에게 멕시코로 돌아가기 전에 불꽃놀이를 꼭 보라고 권한다. 그 학생은 나에게 혹시 혼자 갈거면 '루시오'와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묻는다. 자신은 약속이 있어서 못 간단다. '루시오'에게 물어보니까 보고 싶다고 하길래 수요일 저녁 8시에 학원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학원의 한국인 선생님을 찾아갔다. 이 학원에는 한국, 중국, 일본, 멕시코, 브라질 등 주로 학원에 많이 오는 학생을 위한 각국의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가급적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첫 주에 몹시 힘들었을 때 한국인 선생님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꾸욱 참았다. 만약 그랬다면 초반의 위기를 외국인 친구들과 친절한 교사들을 통해 극복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두 가지 질문이 있어서 도움을 청했다. 첫 번째는 학생 휴가를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가였다. 학생 휴가는 총 2주를 낼 수 있고 일주일 단위로 신청 가능하다. 신청은 휴가를 가기 2주 전에 한국인 선생님이나 프론트 데스크에 말하면 된단다. 나는 가을에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고 싶어서 지금부터 계획을 짜고 있다.
두번째 질문은 도서관에서 본 영어회화 프로그램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터를 살펴보니까 시민회관에서 주관하는 것 같은데 사전에 신청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학원 선생님이 시민회관 프로그램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 이런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포스터 사진을 보여달라고 한다. 보여주니까 거기 적힌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어서 물어봐 주신다. 어머나 고마워라. 그 프로그램은 사전에 신청하지 않아도 되고 포스터에 적힌 날짜와 해당 시간에 시민회관으로 가면 된단다. 그리고 시민회관의 위치까지 확인해주셨다. 너무 친절하고 고마운 선생님이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마침 돼지고기를 세일하길래 왕창 샀다. 그리고 우리집 근처에 사는 한국 친구 '인혜'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 친구는 지난 주부터 학원에 나오기 시작한 학생인데 지난 금요일에 몹시 아파서 조퇴를 했다. 그때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갔기 때문에 그날 밤 걱정되어서 카톡을 보내니까 좀 나아졌다고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과 함께 왔는데 홈스테이를 하지 않고 우리 기숙사 바로 옆의 콘도를 빌려서 머물고 있다. 매일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과 함께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병이 난 거다. 내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데 아들들까지 챙기면서 공부하니까 병이 날 만하다.
그런데 오늘 이 친구가 수업에 오지 않았다. 혹시 주말에 끙끙 앓지 않았나 싶어서 카톡을 보냈더니 아프지는 않단다. 다만 한국에서 우산을 하나만 가져왔는데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자신과 아이들 모두 오늘 수업을 제꼈단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서 아이들 병이 날까봐 걱정도 된단다. 하긴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나도 오늘 아침에 오돌오돌 떨면서 등교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을 테니까 답답하겠다 싶어서 저녁 식사에 초대를 했다. 반찬은 하나도 없고 구운 돼지고기에 비빔면만 곁들여 먹는 것도 괜찮다면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기숙사는 10시 전까지는 친구를 초대해도 된다. 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분주하게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구운 돼지고기와 비빔면, 상추와 고추장뿐이다. 비빔면은 저번에 한인 마트에서 파격 세일하길래 왕창 사두었다. '인혜'와 아이들이 도착할 무렵, 기숙사의 한국 친구들도 귀가해서 다함께 저녁을 먹었다. '인혜'는 초대해주어 고맙다고 와인과 케이크를 사왔다. 와인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다. 역시 고기와 술은 진리다. 아이들은 다행히 비빔면과 돼지고기의 조합을 좋아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용감하게 이곳에 온 '인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감탄했다. 그녀는 영어공부보다 도시락을 싸야하는 것이 더 큰 문제란다. 아들 둘이 간단한 샌드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굳이 김밥이나 김치볶음밥같은 요리를 싸달라고 한단다.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에고고, 철없는 아이들이라 매일 도시락을 싸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영어공부와 아들 둘 돌보기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단다. 백프로 동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홈스테이가 더 나을 뻔했단다. 그런데 홈스테이는 대부분 시내에서 30분 내지는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매일 등하교를 해야 한다. 그것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들이 너무 많아서 당황했단다. 정말 그렇다. 나도 그토록 많은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상하던 것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직접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2023.07.25. 화요일 [왜 고생을 사서 하는가?]
비는 그쳤으나 날씨는 매우 쌀쌀하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학원가는 길에 스쳐지나가는 한국사람들의 말이 들렸다. '왜 이렇게 추운거야?' 밴쿠버의 길거리에서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등이 다양하게 들린다. 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중동어 느낌의 언어들도 자주 들린다. 처음에는 그 자체가 신기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문법 수업 친구들에게 이번 주 금요일에 '루시오'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의 마지막 날이니까 다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다들 좋다고 했다. 지난 주에 먹었던 그 쌀국수집에서 먹기로 했다. 어제 본 레벨 테스트 답안지를 학생들이 채점했다. 내가 온 첫날 본 풍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스튜어트'는 학생들끼리 답안지를 바꾸어서 채점하도록 했다. 다만 학생들의 이름 부분은 가려주었다. 채점이 모두 끝난 후에는 문제지와 답안지를 다시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각자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확인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질문하라고 했다. 솔직히 전직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이 직접 채점하게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점수 확인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왜 틀렸는지 점검하도록 한 점은 마음에 든다.
학생들이 여러 문제를 질문했다.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를 몇 개 선택해서 질문했다. '스튜어트'는 교재에서 관련된 페이지를 짚어 주기도 하고, 단어나 문맥의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질문이 많아서 시간이 오버되어 서둘러서 설명을 끝내야 했다. 역시 우리 문법 교실의 학생들은 참 열심히 공부한다.
점심시간에 '루시오'가 수요일 불꽃놀이에 자기는 못갈 것 같다고 말했다. 어제부터 추워져서 '루시오'가 많이 힘든 것 같다. 하긴 그녀의 나라에 비해 여기는 많이 춥다. 게다가 불꽃놀이는 늦은 시간에 끝나고 그녀의 집은 시내에서 너무 멀다. 그동안의 피곤도 누적되었을테니까 '루시오'에게는 너무 무리다.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길래 걱정말라고 했다. 내 걱정은 말고 너 자신의 건강을 잘 돌봐야 한다고 말했더니 '루시오'는 내가 자신을 항상 잘 이해해준다면서 고마워한다. 우리는 나이든 사람들이라 서로 잘 이해하고 의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베프다.
오늘 extra 수업에는 새로운 학생들이 참여했는데 주로 멕시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루시오'가 좀더 신나게 수업에 참여했다. 오늘의 주제는 음식인데 익숙한 음식부터 독특한 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햄버거, 피자, 감자와 같은 것부터 뱀, 타조, 개 등이 언급되었다. '마리아나'는 낯선 문화의 낯선 음식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가 처음 보는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그들의 문화라면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멕시코 학생들이 많아서 멕시코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타코, 부리또, 퀘사디아 등등 어디선가 한두번씩 들어보고 먹어본 것들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배가 고프다. 여기 와서부터는 너무 자주 배가 고프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보다. 나는 한국에서 하루 세 끼를 다 먹지 않았다. 아침은 커피로 때우고 점심과 저녁을 먹었고 간식은 일체 먹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먹고 중간에 과자와 초콜릿 등을 계속 먹고 있다. 공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 외국생활의 긴장감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먹어대는데 바지가 헐렁해지는 것을 보니까 살은 빠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도대체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일까? 참 궁금하다. 이 여정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2023.07.26. 수요일 [언어교환 모임에 가다]
문법 수업에서 이번 주에 떠나는 친구들이 7명이나 된다. 자기 나라로 귀국하는 친구도 있고 레벨 업을 해서 올라가는 친구도 있다. 지난 주부터 새로 들어온 학생들도 일부 있지만 그동안 숙제를 함께 확인하던 기존 멤버 중에서는 나와 브라질 친구 '루시'만 남게 되었다. '루시'와 나는 다음 주부터 문법 교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기 수업 시간에 일본 중학생 '하나'가 내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목소리도 작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 어린 학생이다. '하나'가 내 옆에 앉고 싶다고 의사표현을 한 것 자체가 놀랍다. 그동안 '하나'를 많이 챙겨주던 브라질 학생이 지난 주에 귀국해서 지금 '하나'는 좀 외로워 보인다. '하나'에게 요즘 점심은 누구와 먹냐고 물으니까 혼자 먹는다고 한다. 혹시 괜찮으면 우리 친구들과 같이 먹자고 했더니 좋단다. 그리고 내 친구 '루시오'가 견과류를 먹는 것을 보더니 어디서 샀는지 물어본다. '루시오'가 동네 편의점에서 샀다니까 '하나'는 견과류를 무척 좋아하는데 세븐일레븐에서는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내가 월마트는 싸다고 말해주었더니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단다. 내가 제안해서 우리는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 월마트에 함께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하나'를 지켜 본 중에 오늘 가장 많은 말을 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하나'가 오지 않았다. 우리가 늘 먹는 자리를 알려주었는데 오지 않았다. 수줍음이 많아서 아무래도 낯선 사람들과 먹는게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루시오'는 같은 멕시코 친구를 만나서 즐겁게 자기 나라 말로 수다를 떨었다. 요 며칠 '루시오'가 기운이 없어 보였는데 오늘은 다시 기운을 차려서 다행이다. 내 짐작에는 '루시오'가 지난 주부터 살짝 향수병이 왔던 것 같다. 유독 멕시코 친구들과 만나면 즐거워 한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는 여기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마음은 계속 해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마음 한 켠에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학원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전철을 타고 시내에서 2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카페로 향했다. MeetUp의 '밴쿠버 한영언어교환'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카페에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어 연습하려고 온 한국사람, 캐나다 사람인데 호기심으로 한국말을 배우려는 사람, 일본 사람인데 영어와 한국어를 연습하려고 온 사람, 필리핀 사람인데 집이 가까워서 놀러온 사람, 대만 사람인데 영어와 한국말을 동시에 배우려고 온 사람, 한국계 캐나다 사람인데 친구 만나려고 온 사람 등등 저마다 국적과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약 30명 정도의 사람이 카페 안에 가득했다. 운영진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그룹(4~5명)을 지어서 20분 정도 대화하도록 하고 나서 다시 제비뽑기를 통해 그룹을 바꾸어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2시간 정도 활동했는데 5그룹 정도 돌았던 것 같다.
나는 처음에는 낯설고 주눅이 들어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영어를 엄청 잘한다. 첫 주에 느꼈던 영어 공포가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되건 안되건 일단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룹을 몇 번 옮겨 보니까 자기 소개를 비슷한 패턴으로 말하게 되어서 조금씩 조금씩 말이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참여자들이 대부분 허용적인 태도라서 내가 말을 잘 못해도 기다려주거나 도와주려고 했다. 정신없이 2시간이 지나고 카페를 나서는데 다리가 후달거렸다.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서 대화했다. 이것은 학원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차원의 영어 세계였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영어다. 아마도 오늘 나의 영어는 엉망진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시간 동안 나는 너무 재밌게 웃고 떠들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경험이다. 앞으로 계속 참여해야겠다.
언어교환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와서 가방을 내려 놓고 편한 차림으로 잉베로 향했다. 오늘이 2번째 불꽃놀이하는 날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잉베를 향하고 있다. 나는 적당한 곳에 서서 잠깐만 구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해변 앞쪽에 듬성듬성 빈 자리들이 있어서 한 사람 정도는 끼어 앉아도 될 듯하다. 결국 슬금슬금 가서 제일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았는데 다들 개의치 않는다. 빈손으로 와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그냥 앉아 있으려니까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기 깔개에 같이 앉자고 한다. 보니까 그녀는 우비를 펼쳐서 앉아 있는데 자리가 넉넉하다. 염치 불구하고 합석했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대만에서 왔단다. 직장인인데 지금 휴가 중이란다. 자기 회사가 캐나다에도 있고 대만에도 있어서 몇년 주기로 왔다갔다 한단다. 깡마른 체격의 여자인데 가방과 스틱으로 보아 하이킹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이킹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니까 밴쿠버에 하이킹 코스가 좋은 곳이 많다면서 소개해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제일 앞줄에서 바라본 불꽃놀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다. 소리가 커서 좀 무섭긴 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에 넋을 잃었다. 정말 아름답다.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불꽃이 별처럼 빛나고 꽃처럼 화려하다. 역시 제일 앞자리에서 봐야한다. 마지막 불꽃놀이도 제일 앞줄에 앉아서 봐야겠다.
2023.07.27. 목요일 [캐서린의 배려]
7명의 친구들이 이번 주에 떠나기 때문에 지금 문법 교실에는 7개의 깃발이 돌고 있다. 여기 젊은 친구들은 작별 인삿말을 캐나다 깃발에 써서 준단다. 그래서 우리도 캐나다 깃발을 사서 돌리고 있다. 나는 나의 베프 '루시오'를 위한 카드를 따로 준비해서 '나미'와 함께 쓸 것이다. 지난 주에 학원을 떠난 한국 친구 '나미'는 내일 깜짝 등장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듣기 수업 시간에 '하나'가 와서 어제 점심시간에 음료수를 사러 나갔다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시간 맞춰 9층에 오질 못했단다. 요즘 우리가 점심을 먹는 곳은 9층의 학생 라운지이다. 3층은 학생들이 포화상태라서 더 이상 자리가 없다. '하나'는 이따가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내일 월마트에 가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무척 기대하는 것 같다. 하긴 거기는 엄청나게 큰 쇼핑몰인 메트로타운이 있는 곳이라서 학생들은 대부분 가보고 싶어한다.
'윌'은 교재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파트너끼리 알면 서로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을 자신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이번 주에 반복해서 배운 '직업'에 대한 것이라 대부분 아는 단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살짝 아는 것이 더 어렵다. 예를 들어 smiled guiltily는 둘 다 아는 단어인데 이게 뭐지 싶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음흉하게 웃는 것 정도의 의미란다. 죄를 짓고 슬쩍 미소를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학생들은 잘 이해하지 했다. 그러자 '윌'은 슬쩍 앞에 놓인 학생의 컵을 훔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컵 주인이 애타게 찾는 것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장난꾸러기 '윌'의 연기가 실감난다. 교사가 되려면 연기력도 탁월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하나'와 함께 9층으로 올라갔다. 수줍음이 많은 '하나'가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것에 적응을 못할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한국 친구 한 명이 일본어를 좀 할 줄 알아서 이것저것 일본말로 대화를 했다. 덕분에 '하나'의 표정이 밝아진 듯하다. 내 친구 '루시오'는 정말 멕시코에 오면 꼭 자기 집에서 묵어야 한다며 멕시코에 오기 전에 메일을 보내면 자기가 공항으로 마중을 오겠다고 했다. 이별의 날이 다가와서 그런지 '루시오'는 요즘 매일 나에게 멕시코에 꼭 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정말 나는 멕시코 여행을 꼭 가야겠다. 나를 기다리는 베프가 있으니까.
오후 회화 수업은 다른 회화 교실과 합반 수업을 했다. 서로 친한 두 명의 회화 선생님이 교실을 합쳐서 퀴즈로 한 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월말에 가끔 하는 이벤트 수업이란다. 두 반의 학생들을 섞어서 그룹을 만들었다. 저번에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 했던 방식과 비슷하다. 각 그룹에 1번 선수, 2번 선수 등을 정한다. 교사가 문제를 푸는 선수들에게만 단어를 보여주면 선수들은 그 단어를 종이에 그려서 다른 팀원들이 맞추게 하란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좀 어색해하다가 게임일 진행될수록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난리가 났다. 역시 점수가 오락가락하면 다들 승부근성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우리 회화 교사 '캐서린'의 배려를 눈치채고 고마움을 느꼈다. 다른 반 회화교사가 어려운 단어를 제시하면 '캐서린'은 우리 학생들 중에 모르는 학생이 있다면서 다른 단어로 바꾸라고 했다. 특히 '루시오'가 선수로 나섰을 때 단어를 어려워하니까 여러번 바꾸도록 했다. 마지막 문제에서는 '루시오'에게 기회가 없었음에도 정답을 말하니까 그대로 인정해서 '루시오'의 팀이 승리했다. '루시오'가 무척 행복해하면서 게임이 끝났다. 내 짐작에 '캐서린'은 '루시오'가 이번 주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참 좋은 선생님이다.
오늘 extra 수업의 주제는 Clothing & Fashion이다. 옷에 대해 여러 단어도 배우고 요즘 패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마리아나'가 찾은 특이한 재료로 만든 옷에 대한 영상이 재미있었다. 포크와 스푼으로 만든 드레스, 키보드로 만든 턱시도, 연필로 만든 신발 등을 보면서 각 재료의 이름, 옷 종류 등도 배웠다. 저런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디서 저런 아이디어가 나오는 걸까? 2명씩 짝을 지어서 평소 옷을 어디서 사는지, 어떤 옷을 선호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들끼리 짝이 되었을 때는 이것저것 얘기가 많았는데 남자와 짝이 되니까 별로 할 얘기가 없다. 국적을 불문하고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패션에 더 관심이 많다. 수업이 끝날 때쯤 '마리아나'가 이번 달에 학원이 끝나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루시오'가 끝난다니까 매우 아쉬워하면서 잘 가라고 인사해준다. 아, 내일은 extra 수업이 없으니까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구나. '루시오'가 다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다 같이 작별 사진을 찍었다. 정말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내일 울 것 같다.
2023.07.28. 금요일 [아쉬운 작별]
문법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함께 숙제의 답을 맞추어 보았다. 한쪽에서는 작별 깃발에 글을 쓰느라 바쁘고 한쪽에서는 답을 맞추느라 바쁘다. 이래저래 심란하고 분주하다. 브라질 친구가 자기는 울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이다. 농담이 아니고 다들 살짝살짝 눈가가 촉촉해지는데 참고 있는 눈치다.
'스튜어트'의 문법 설명을 듣고 연습문제를 풀었다. 문제의 답을 설명해주고 나서 '스튜어트'가 이번 주 토요일에 밴쿠버의 마지막 불꽃놀이가 있다면서 혹시 앞의 불꽃놀이를 모두 본 사람 있냐고 묻는다. 내가 다 봤다니까 마지막 것도 볼거냐고 묻는다. 당연히 볼 거라고 그랬더니 3개를 비교해서 월요일에 발표하란다. 뭐라고? 3개를 다 본 사람은 너뿐이니까라고 말한다. 허걱! 월요일에 발표를 한다. 영어로!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들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서면서 이따 점심시간에 보자고 했다.
듣기 시간에는 처음으로 수업을 빼먹었다. 대학 때 많이 했던 일이지만 여기서는 처음이다. 첫 주에 나의 멘털을 지켜준 한국 분들 중에 한 분이 집에서 담근 김치 한 통을 주고 가셨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너무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와서 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 오후에는 월마트에 가야하므로 이걸 들고 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과감하게 2교시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달려가서 냉장고에 넣고 왔다. 갑자기 냉장고가 꽉찬 느낌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이 끝날 무렵 '캔디스'는 학생들에게 종합 성적표를 배부해주었다. 거기에는 영역별 교사의 평가 기록과 시험 성적이 나와 있다. 이번에 레벨이 오른 친구들은 새로운 학급을 배정받는다. 나는 아직은 모든 영역에서 현재 레벨이 유지된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문법만 70점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80점을 넘겼다. 다행이다. 역시 문법이 가장 어렵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까 학원 앞이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느라 여기저기서 포옹하고 난리다. 예약한 식당에 먼저 달려가보니 '나미'가 도착해 있다. '나미'는 딸과 함께 여행 중인데 마침 남편이 캐나다에 와서 지금은 밴쿠버 시내의 어느 호텔에 머문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이별 식사에 서프라이즈로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학원 앞으로 가서 문법 친구들에게 식당에 가면 누군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프라이즈라고 하니까 다들 궁금해하면서 갔다.
예상대로 다들 '나미'를 보고 팔짝 뛰면서 반가워했다. 이번에도 밥 먹으랴, 이야기 나누랴, 정신이 없다. 작별 인사를 쓴 캐나다 국기를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도 있고 사진부터 찍은 친구도 있다. 그런데 결국에는 대부분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는 꾸욱 참으려 했지만 '루시오'가 또 멕시코에 꼭 놀러오라는 말을 할 때 결국 울고 말았다.
다들 훌쩍거리고 사진찍고 난리인데 '나미'가 요즘 유행하는 거라면서 예쁜 노트를 친구들에게 이별 선물로 준다. 나도 한국에서 가져간 전통인형 열쇠고리를 친구들에게 주었다. '루시오'에게는 나와 '나미'가 쓴 카드도 주었다. 서로 선물 주고 받고 포옹을 하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계산을 다 하고 나서도, 다들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간다고 일어나서도 안 가고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한참동안 오랜 이별을 한 끝에 일정들이 있어서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나와 '루시오', '나미', '아유미', '루시'였다.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근처 카페에 가서 또 수다를 떨었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초반의 에피소드에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동안 '루시오'의 파트너를 했던 일본 친구 '아유미'가 아까 너무 울어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웃으며 작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유미'는 '루시오'를 한참 안아주면서 밴쿠버에 아들을 보러 오게 되면 꼭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에 '스튜어트의 문법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단체방을 만들었다. 서로 안부를 전하자고 하였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어서 친구들과 작별을 했다.
나는 학원 앞으로 와서 '하나'와 함께 월마트가 있는 메트로타운으로 출발했다.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는 이곳에 온지 3개월 정도 되는데 학원과 집만 왔다갔다 했단다. 한두달 더 공부하다가 이곳의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란다. 몇 개월 어학연수를 받는게 아니라 이곳에서 학교까지 다닐 예정이라니 좀 놀라웠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인데 이곳의 고등학교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되었다. 쇼핑을 마치고 헤어지면서 앞으로도 점심은 같은 자리에서 먹을 거니까 함께 밥을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하나'는 레벨 업을 해서 앞으로는 나와 같이 수업을 듣지 않는다. 이 학생이 새로운 교실에서 좀더 잘 적응하길 바랬다.
2023.07.29. 토요일 [시민회관의 영어회화 모임]
토요일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오후에 시민회관으로 향했다. 포스터에서 보았던 영어회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시민회관 건물은 생각보다 작았다. 1층 입구로 들어가니까 안내 데스크가 보이지만 근무하는 사람은 없다. 토요일이라서 근무하지 않나?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내가 보았던 그 포스터가 보이고 모임 장소가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보니까 작은 교실이 있다. 이미 세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밝은 미소로 나를 환영해준 사람은 시민회관 직원인 '테레사'이다. 그녀는 이 모임을 자신이 주최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대화 모임이라고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니까 걱정말라고 한다. 밴쿠버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다면서 자신은 여름에 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이 편하고 즐겁게 이 모임에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종의 수다 모임이란다. '테레사'의 옆에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교수로 퇴직하고 나서 지금은 영어과외를 하고 있다는 '한스'이다. 그는 '테레사'와 친해보이는데 아마도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사람들을 돕기 위해 참여한 것 같다. 그리고 6개월째 여기 살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는 일본 사람 '신코'가 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지금은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단다.
우리가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데 대만에서 온 가족이 합류했다. 아버지 '진'이 중학생 아들 아들 '가와', 초등학생 딸 '카나'를 데리고 왔다. '진'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단기 어학원에 보내려고 함께 왔단다. '가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자기 소개를 또박또박했다. 반면 '카나'는 너무 작은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하니까 '가와'가 크게 말하라는 손짓을 한다. 결국 '카나'는 부끄러워서 탁자에 얼굴을 묻었다. '테레사'는 괜찮다면서 '카나'에게는 우리와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우리가 모두 또박또박 자기 이름을 말하고 국적을 말하고 나니까 '카나'도 자기 이름과 국적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 아빠 품으로 파고 든다. 너무 귀엽다. 잠시 후에는 아프카니스탄 사람 '이리나'도 합류했다. 밴쿠버에는 3달 정도 있었고 지금 영어를 배우는 중이고 직업도 구하고 있단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 다양한 연령, 다양한 영어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모임에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테레사'는 아주 능숙하게 전체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자기 소개가 끝나고 나서는 각자 쉴 때 무엇을 하는지 혹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었다. 자신은 공원 산책하면서 하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단다. '진'은 오페라 관람을 좋아한단다. 특별히 '피가로의 결혼'을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가 작품명을 알아듣지 못하자 휴대폰으로 음악을 찾아 들려준다. 앞부분을 듣고 다들 무슨 작품인지 알아차렸다. 이런 식으로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테레사'가 커피, 핫초코, 과자 등 간식이 있으니까 잠시 쉬면서 즐기라고 권한다. 이런 것까지 준비하다니 너무 친절하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물론 내가 모든 말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요즘 나의 듣기는 10% 정도는 문장 단위로, 50% 정도는 단어 단위로 알아듣는 정도다. 나머지는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대화에 뒤쳐지지 않고 따라갔다. 모임의 끝무렵에 퇴직교사인 '한스'가 우리에게 각자 말할 때 틀린 발음이나 문법을 교정해주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것은 여름에만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번을 포함해서 총 5회 진행한다. 그런데 나는 8월에 여행을 가서 2번은 못 나온다.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행을 좀더 늦게 갈껄하는 후회가 되었다.
영어회화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옆 건물로 놀러갔다. 월요일에 우리 집으로 초대했던 한국 친구 '인혜'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스파게티, 구운고기, 샐러드 등 진수성찬이다. 나는 답례로 이곳 밴쿠버의 특산품이라는 아이스와인을 사가지고 갔다.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따가 불꽃놀이에 같이 가면 안되냐고 묻는다. 아이들이 가고 싶단다. 나는 어차피 혼자 가려고 했던 거니까 상관없다. 대신 아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데 괜찮은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내일은 늦잠자도 되는 일요일이니까 가자.
잠시 쉬었다가 시간에 맞추어 잉베로 향했다. 수요일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온갖 사람들이 다 모였을 것이다. 서로 잃어버리지 않게 손을 꼭 잡고 사람들을 헤치고 해변의 제일 앞으로 갔다. 지난번에는 혼자라서 슬쩍 아무데나 끼어 앉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일행이 많아서 걱정을 했다. 다행히 가족과 가족 사이에 살짝 공간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냥 염치 불구하고 낑겨 앉았다. 비치타올로 자리를 확보하고 앉아서 불꽃놀이를 보았다. 엄청나게 큰 불꽃을 보고 아이들이 연신 감탄을 했다. 소리가 커서 둘째 아이는 귀를 막으면서도 불꽃을 보고 감탄했다. 나 역시 형형색색의 불꽃, 다양한 모양으로 터지는 불꽃에 즐거웠다. 앞으로 한동안은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총 3회에 걸쳐 내 인생 전체에서 볼 불꽃을 다 본 것 같다. 자아, 이제 이걸 어떻게 발표하지?
2023.07.30. 일요일 [멕시코 배우와 친구가 되다]
일요일 아침에는 주먹밥을 만들어서 밴쿠버 인근의 딥 코브라는 곳에 놀러가려고 준비했다. 막 출발하려는데 이번 주에 새로 이사온 멕시코 학생 '깔라'가 나와서 인사를 한다. 굉장히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학생이다. 게다가 영어도 되게 잘한다. 그녀는 나에게 커피를 좋아하냐고 묻고는 지금 자기가 커피를 내릴건데 함께 마시겠냐고 한다. 땡큐지.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아니 거의 한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깔라'의 이력이 놀랍다. 어쩐지 엄청 미인이다 싶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TV에 출연했던 배우겸 가수란다. 알고보니 멕시코에서는 꽤 유명한 배우였다.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 사진과 유튜브를 보여주었다. 그녀와 인스타그림 친구를 맺었는데 팔로워가 무려 460만에 달한다.
내가 그녀의 범상치 않은 머그컵에 관심을 보이니까 멕시코 현대 미술가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런데 '깔라'는 자신의 엄마도 미술가란다. 그리고 엄마의 작품 사진을 보여주었다. 딸은 배우고 엄마는 예술가다. 멋진 집안이구나.
나는 취미가 여행이라니까 어디어디 가봤냐고 물어서 쭈욱 불러주었더니 놀란다. 내 나이를 묻길래 알려주었더니 아이가 있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니까 자기 나라에서는 나이가 들면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사회적 압박이 심해서 자기는 불편하다고 한다. '깔라'의 엄마는 그렇지 않은데 사회적인 압박은 심하단다. 나는 한국도 그런게 있는데 요즘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멕시코에 그런 종류의 사회적 압박이 있다니 좀 놀랍다.
한 시간이나 수다를 떨고 나서 나는 딥 코브로 놀라갔다. 여기는 아주 작은 항구 마을인데 예쁜 공원도 있고 하이킹 코스도 있는 곳이다. 지금은 패들보트, 카약 등의 여름 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나는 쿼리 록이라는 곳까지 갔다 오는 하이킹을 했다.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인데 어떤 구간은 길이 좀 거칠어서 고생을 했다. 등산 스틱이 필요한 구간이 좀 있었다. 쿼리 록이라는 바위는 불쑥 튀어 나와 있어서 360도까지는 아니지만 대략 300도 정도의 탁 트인 전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바위에 앉아 주먹밥을 먹으면서 뷰를 즐겼다. 그리고 오랜 만에 스케치도 했다. 내 취미 중 하나는 색연필로 경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내려와서는 이곳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Honey Doughnut도 사먹었다. 줄이 엄청 길었지만 회전율이 빨라서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오리지널을 하나 먹어보았는데 맛이 좋았다. 너무 달지 않고 너무 기름지지 않고 딱 적당했다.
집으로 와서 씻고나서 불꽃놀이에 대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간단한 PPT지만 동영상도 첨부해야 해서 영상편집에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걸 영어로 설명할 것을 생각하니까 막막하다. 난 절대 못 외운다. 최대한 말할 내용은 줄이고 영상으로 보여주자. 그럭저럭 만들어서 '스튜어트'에게 이메일로 보내면서 나는 영어로 길게 말을 못한다고 짧게 발표하겠다고 썼다.
이번 주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나의 베프 '루시오'와 작별했다. 내일부터 문법 교실은 지금까지와 다른 분위기일 것 같다. 그리고 학원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다. 수요일의 언어교환 모임과 어제의 영어회화 모임은 너무 좋은 경험이다. 앞으로 이런 모임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겠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될까? 지금도 매일매일 바쁜데 어떨지 모르겠다. 더 부지런히, 더 신나게 다녀야겠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