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친구들
6월 30일 금요일부터 7월 3일 월요일까지는 연휴기간이라 나는 밴프라는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학연수를 시작한 후 첫번째 연휴를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다. 지난 주의 롤러코스터 일주일이 다시 반복될까? 아니면 조금은 적응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2023.07.04. 화요일 [새로운 친구들]
오늘은 화요일이지만 어제가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7월의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른 시간부터 학원 앞은 엄청난 신입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내가 시작한 지난 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전세계의 학교들이 방학을 시작해서 7월과 8월은 어학원의 성수기란다.
인파를 헤치고 겨우겨우 문법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도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교사는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했다. 신입생들 중에는 교실을 잘못 찾아온 학생들도 있어서 한동안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다. 겨우겨우 학생들의 교통정리가 끝난 후, 교사는 간단하게 학생들에게 수업 스케쥴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지 않나 보다. 하긴 신입생 수가 너무 많아서 학생 라운지에서 오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옆자리에 신입생이 앉았는데 멕시코에서 온 '루시오'다. 그녀는 나보다 10살이 많은 65세란다. 우리는 나이든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가 될 것 같다. 그런데 교사가 수업을 시작하자 '루시오'는 교사의 빠른 영어에 많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래, 내가 그 심정을 알지. 우왕좌왕하는 그녀에게 얼른 교재의 페이지를 알려주었다. 나는 교사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단원이 아니라서 그럭저럭 어느 부분에 대한 설명인지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연습문제를 푸는데, 역시 이론보다 실전이 어렵다. 교사가 불러주는 답을 정신없이 받아적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루시오'가 미처 받아쓰지 못한 부분이 있는 걸 보았다. 교재를 다시 펼쳐 내가 쓴 답을 보여주었다. 마치 첫날 내 파트너가 나에게 보여주었듯이. 우와,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듣기 수업에도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여기서도 일부 학생들이 교실을 못찾아서 한참 헤매었다. 교사는 교재의 1단원을 펼치라고 한다. 1단원은 비교적 쉬운 인사 나누기다. 월초라서 교재의 앞부분부터 진도를 나가는 것 같다. 이런 내용은 나도 충분히 알아듣고 따라갈만한 내용이다. 만약 내가 월초에 들어왔다면 지난 주처럼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랬다면 좌절을 극복하고 희망을 가지는, 극적인 경험은 못하지 않았을까?
드디어 읽기와 쓰기 수업의 담당교사인 '캔디스'를 만났다. 그녀는 한달간 유럽 여행을 하고 왔단다. 아주아주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데 제스쳐도 크고 목소리도 크다.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가 된다. 새로 시작하는 읽기 단원의 단어들에 관련된 종이를 나눠주고 단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낯선 단어들이 많은데다가 그 의미를 영어로 풀어놓으니까 더욱 어렵다. 아무래도 예습, 복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오늘부터는 한국분들이 안계셔서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학생 라운지 어디에 앉건 다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늘 앉은 테이블에서는 모로코 학생, 일본 학생과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영어 수준이 비슷비슷해서 더듬더듬 어디서 왔니, 이름은 뭐니, 문법 레벨은 몇이니, 영어가 너무 안들려, 교사들 말이 너무 빨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가 잘 안들린다, 교사 말이 너무 빠르다는 이야기에서는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 역시 다들 비슷한 심정이다.
오후의 회화 수업에서는 가족 관계도를 중심으로 단어를 공부하고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활동을 했다. 대부분 아는 단어라서 이런 수업은 편하게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영어라도 각 나라마다 발음이 독특해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영어 원어민의 말은 빨라서 알아듣기 어렵고 비영어권 사람들의 말은 발음이 달라서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서로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 신기하다.
오늘은 extra 수업이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회화와 상식 수업이고 수요일은 문법 수업이다. 교사는 변함없이 '마리아나'이다. 나는 그녀의 중후한 목소리와 느긋한 수업 방식이 좋다. 학생들을 배려해서 천천히 말해주고 반복해준다. 벌써 3번째 이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자주 참여하는 학생들과도 친숙해졌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나눌 수 있어서 더 좋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너무 잘 지냈다. 다른 학생을 도와주고 수업 내용도 제법 따라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단어 수준으로 알아듣고 단어 수준으로 말하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차츰 없어지고 있다. 그것만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숙제를 하고 예습까지 부지런히 했다. 복습도 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 복습은 주말에 몰아서 한꺼번에 해야겠다. 내일은 교사의 말을 조금 더 알아듣도록 노력해보자.
2023.07.05. 수요일 [가야할 길이 멀지만]
아침 일찍 문법 교실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제일 먼저 왔다. 잠시 후 멕시코 학생 '루시오'가 와서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숙제를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문득 '루시오'가 숙제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둘째날, 숙제를 알아듣지 못했던 실수가 생각나서였다. 다행히 그녀는 숙제를 놓치지 않고 해왔다. 나는 나의 실수담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아직 그걸 영어로 말하기는 어렵다. '루시오'가 숙제의 답을 맞춰보고 싶어하길래 함께 한문제씩 비교해 보았다. 어떤 것은 일치하고 어떤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토론하고 싶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은 아직 어렵다.
보강교사가 들어와서 숙제를 확인하고 답을 불러주었다. 어떤 것은 이해가 되고 어떤 것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한참 뭐라고 뭐라고 설명했는데 솔직히 못 알아듣겠다. 나중에 복습해야겠다. 숙제 확인이 끝나자 교사는 갑자기 1단원을 펼치란다. 문법 수업도 월초에는 처음부터 시작하나? 보강교사는 이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지금 휴가 중인 문법 교사 '스튜어트'의 지시란다. 그러면서 교사 컴퓨터를 가리키면서 모든 지시가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아, 이게 그 소리였구나! 지난 주에도 보강교사가 교사 컴퓨터를 보면서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그게 숙제나 진도가 모두 '스튜어트'가 지시한대로 하는 거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걸 이제야 알아듣다니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듣기 수업에 들어가니까 '루시오'가 앉아있다. 어제 몇 명의 학생들이 교실을 혼동했었는데 아마 '루시오'도 그랬나보다. 그녀는 나를 보자 몹시 반가워하면서 자신의 옆에 앉으란다. 아무래도 우리는 단짝이 될 것 같다. '루시오'가 아까 문법 시간에 받아쓰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나의 교재를 펼쳐 보여주었다.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
오늘 듣기 수업은 방송을 듣고 문장을 통째로 받아쓰는 것이었다. 빈칸메꾸기보다 난이도가 높다. 다행히 내용은 어렵지 않아서 그럭저럭 받아쓸 수 있었지만 나의 스펠링은 엉망진창이다. 그런데 받아적으면서 두어 문장이 앞뒤 맥락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교사에게 물어봐야지 생각했는데 교사가 이 내용들 중에 잘못 반응한 내용들이 있다고 말했다. 오, 나의 예상이 맞았다. 혼자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제 나는 제법 맥락을 파악하고 오류도 찾을 수 있다.
읽기와 쓰기 수업에서는 어려운 단어가 역시 걸림돌이 되었다. 게다가 교사 '캔디스'는 월말 시험에 이 단어들로 시험을 볼 것인데 품사까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허걱! 스펠링도 무척 길고 뜻도 어려운데다가 품사까지 구분하라고? 학생들이 모두 아우성을 치니까 '캔디스'는 걱정말고 지금부터 자꾸 노력해서 익히란다. 음, 내 나이에 암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영어로 표현을 못하겠다. 정말 가야할 길이 멀다.
오늘 점심은 어제 만났던 모로코 학생과 일본 학생, 새로 합류한 대만 학생과 함께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열나게 숙제를 하고 있는데 문법 수업을 함께 듣는 브라질 학생 '루시'가 와서 옆에 앉았다. 얼떨결에 우리는 같이 문법 숙제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듣기도 잘하고 말하기도 잘한다. 시간표를 서로 비교해보니까 문법만 나와 같은 레벨이고 나머지는 다 나보다 레벨이 높다. 게다가 그녀는 키도 크고 늘씬하고 예쁘다. 성격도 좋아서 벌써 여러 학생들과 친해진 듯하다.
오후 회화 수업에 들어가니까 세상에, '루시오'가 있다. 그녀와 나는 반가워서 서로 포옹했다. 이로써 우리는 문법, 듣기, 회화 수업을 함께 듣는다. 정말 우리는 단짝이 될 것 같다. 오늘은 가족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단어와 표현들을 배웠다. '루시오'와 나는 파트너가 되어서 서로 가족을 소개하는 활동을 했다. '루시오'는 치과의사였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단다. 아들이 둘 있는데 한 명은 미국에 살고 있고 한 명은 여기 밴쿠버에 살고 있단다. 지금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아들들과 미래의 며느리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멋지다. 은퇴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며 사는 것이 너무 멋지다.
extra 수업까지 알차게 듣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숙제와 예습만이 아니라 복습도 부지런히 해야겠다. 그리고 교사의 말을 자꾸 문장 단위로 알아들으려고 더 노력해야겠다.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멈추지 말고 계속 가자. 언젠가는 나도 잘 들을 수 있고 잘 말할 수 있겠지.
2023.07.06. 목요일 [도서관에 가다]
오늘도 아침 일찍 문법 교실에 가서 '루시오'와 나란히 앉아서 어제의 숙제 답을 맞추어 보았다. 우리가 서로 답을 확인하는 것을 보고는 한국 학생 '나미'가 같이 하자고 해서 셋이 머리를 맞대었다. 서로 다른 답에 대해서 각자 생각을 말하고 싶지만 아직 그것은 우리에게 어렵다. 물론 '나미'와 나는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어 교사의 설명을 듣고 일부는 조금 이해했다. 어제 교사가 문법 설명을 한 것 중에 힌트가 있었다. 역시 교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복습이라도 해야겠다. 오늘도 연습문제를 쭈욱 푸는데 '루시오'와 나는 헉헉 대면서 겨우겨우 따라갔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니까 내 옆자리의 일본학생 '아유미'가 도와주었다. '아유미'는 지난 주에도 여러차례 나를 도와주었던 학생이다. 나는 드문드문 쓰지 못한 답을 '아유미'가 필기한 것을 보고 따라 적었다. 그리고 내가 필기한 것을 '루시오'가 보고 받아 적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마지막 문제는 내가 아예 손을 대지 못한 것을 보고 '아유미'가 답을 보여줄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일단 내 힘으로 한번 풀어보고 나서 내일 답을 보여달라고 했다. 다른 문제들은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 비어있는 것만 확인했지만 이것은 문제 파악 자체가 덜 되었다. 내가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듣기 시간에도 '루시오'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이제는 수업의 패턴이 익숙해져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 예상할 수가 있다. 그래서 미리미리 문제도 슬쩍 보고 단어도 읽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처음에 비하면 정말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듣기다. 아직 교사의 말도 잘 들리지 않고 방송 내용도 잘 들리지 않는다. 어서 귀가 트여야 한다. 그 다음은 단어가 문제다. 아직도 모르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어디선가 들어봤으나 의미를 확실하게 모르는 단어도 참으로 많다. 암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
읽기와 쓰기 시간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캔디스'가 학생들의 숙제를 아주 꼼꼼히 확인했다. 여기 교사들은 학생들의 출석, 숙제, 간이 테스트를 누적시키고 마지막 Level 테스트 성적까지 합쳐서 Level up을 결정한다. 그리고 매달 말에는 영역별 성적표를 나누어 주는데 거기에는 학생들의 활동에 대한 교사들의 간략한 feedback과 점수가 적혀있다. 나도 지난 달 마지막 주 수업에서 성적표를 받았는데 일주일 밖에 안되어서 그런지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숙제 검사를 한 '캔디스'는 숙제의 답을 확인시켜 준다. 숙제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서 틀릴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단어를 어느 정도 익힌 후 새로운 단원의 본문을 함께 읽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캔디스'는 전생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자기는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파리가 익숙했는데 어쩌면 전생에 파리에서 살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학생들도 몇 명이 뭐라뭐라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떠드는 것 같다. 나도 뭔가 이야기를 보태고 싶은데 아, 영어가 짧아서 표현을 못하겠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수다에 동참할 수 있겠지?
오후 회화 수업에서는 키, 몸무게, 나이,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배웠는데 너무 재밌었다. 회화 수업 교사 '캐서린'은 표정과 체스쳐가 아주 재밌는 사람이다. 특히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단어를 재밌는 몸짓으로 표현해서 늘 학생들이 웃게 만든다. 수업 방식도 게임을 하거나 교실과 복도를 넘나드는 활동 수업을 해서 활기차고 재미있다. 가끔은 교실과 복도에서 우리가 너무 크게 떠들어서 옆 교실에서 항의하기도 한다. 오늘도 우당탕 게임을 하다가 옆 교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그래도 '캐서린'과 학생들은 같이 키득대면서 게임을 이어나갔다. 이럴 때 보면 모두 장난꾸러기들이다.
정규 수업 후 extra 수업에 들어가보니 오늘은 '루시오'가 합류했다. 우리는 팔짝 뛰면서 반가워했다. '루시오'와 나는 정말 단짝이 되었다. 다만 '루시오'는 이번달만 학원에 나온단다. 그녀가 근무하는 대학의 여름 방학 중에 여기에 온 것이라서 다음 달에는 멕시코로 돌아가야 한단다. 나는 언젠가 멕시코 여행을 가면 꼭 찾아가겠다고 했다.
extra 수업까지 알차게 듣고 뿌듯한 마음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국 학생이 알려준 밴쿠버 공립 도서관인데 공부하기 쾌적한 환경이라고 해서 가보았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자리도 다양한 형태로 갖추어져 있다. 작은 테이블부터 소파, 독서실 책상 등등 다양하다. 그리고 책도 엄청 많다. 늘 그렇듯이 책은 읽지 않아도 옆에 있으면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대부분 영어 책이다. 한쪽 코너에는 다양한 언어의 책들이 있는데 한국어 책들도 있다. 도서관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 조용한 구석에 있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앞으로 학원이 끝나고 여기 들러서 두 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가야겠다. 좀더 여유가 생기면 영어 책도 좀 읽어볼까? 영어 책을 읽을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지나야 할 것이다.
2023.07.07. 금요일 [친구들과 함께 가자]
오늘도 일찍 도착해서 '루시오', '나미'와 함께 숙제의 답을 확인했다. 여기에 브라질 학생 '루시', 일본 학생 '아유미'가 합류했다. 그렇게 한국, 멕시코, 브라질, 일본 학생이 함께 숙제의 답을 맞추어보면서 토론까지 했다. 이제 우리는 답이 서로 다른 것은 왜 자기가 이런 답을 선택했는지, 서투르지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내용은 지난 시간 교사가 설명한 부분을 찾아서 함께 확인하기도 했다. 이런 토론은 그 자체로 너무나 유익하다. 영어로 듣고 말하는 연습이 되고 문법 설명 중에 놓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영어 공부는 먼 길이니까 친구들과 함께 가야겠다.
친구들과 함께 숙제를 확인해서 그런지 교사의 말이 더 쏙쏙 귀에 들어오는 것 같다. 새로운 단원의 진도를 시작했는데도 뭔가 더 많이 알아듣는 것 같다. 예습의 효과도 있겠지만 친구들과의 토론에서 생긴 자신감이 귀를 더 열리게 한 것 같다. 다만 연습문제는 여전히 많이 틀렸다.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과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역시 차이가 있다.
듣기 수업에서는 지난 주 금요일과 마찬가지로 팝송을 들으면서 빈칸 메꾸기를 했다. 아마도 매주 금요일 듣기 수업은 팝송 수업으로 진행되나 보다. 오늘의 노래는 Abba의 Dancing Queen인데 내가 영화 '맘마미아'로 영어 공부를 하던 때에 수백번 들었던 노래다. 그러나 빈칸 메꾸기를 하려니까 역시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이번에도 받아쓰기를 할 때는 전혀 안들렸던 단어가 답을 확인하고 들으니까 들린다. 인간의 뇌 구조는 참으로 신기하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서 흥겹게 노래 감상을 했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역시 단어가 걸림돌이 되었지만 자꾸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문법을 함께 듣는 '루시'의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대부분 나보다 영어 레벨이 높은 학생들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노력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귀를 기울여보니 그럭저럭 알아들을 만했다. 지난 주의 내 정신 상태라면 못 들었겠지만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겨서 조금은 더 들을 수 있다.
오후 회화 수업을 마치고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extra 수업이 없는 날이다. 도서관의 조용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집중해서 숙제와 예습을 했다. 복습까지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복습은 주말동안 해야겠다. 그리고 밀린 일기도 써야 하고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한다. 이번 주말은 무척 바쁠 것 같다.
2023.07.08 토요일~09 일요일 [주말다운 주말]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방 청소, 분리수거, 요리 등으로 바쁘고도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이게 말이 되나? 뭔가 이것저것 많이 했지만 마음만은 느긋했다는 말이다. 내가 지내는 숙소는 밴쿠버 시내에 있는 연합 기숙사다.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보다는 홈스테이를 이용하지만 나는 기숙사를 선택했다.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 기숙사만을 고집했다. 여기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보통 1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데 나는 6개월을 기다려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이곳을 고집한 이유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생활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학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기숙사 건물은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어서 치안 면에서 안전하다. 건물 전체가 기숙사로 사용되는데 밴쿠버 시내에 있는 여러 학원의 학생들이 머물고 있다. 그래서 내가 연합 기숙사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미국영화에서 보던 대학 기숙사와는 다른 형태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각 층마다 집(유닛)이 네 개씩 있다. 각 집에는 방이 5개, 화장실이 2개, 거실과 주방이 있다. 방은 1인실부터 4인실까지 있는데 나는 1인실에서 생활했다. 우리 집에는 현재 나를 포함한 한국 학생이 3명, 멕시코 학생 2명, 브라질 학생 1명, 일본 학생 1명이 살고 있다.
밴쿠버에 도착한 첫 날, 나는 기숙사에 한국 학생들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른 학원에 다녀서 등하교 시간이 나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집에 한국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내 옆 방에는 브라질 학생이 살고 있는데 머리가 보라색이었다가 지금은 파란색이 되어 있다. 나도 확, 머리 색깔을 바꾸어 볼까? 그러면 영어를 좀더 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멕시코 학생들은 한두번 마주쳤다. 일본 학생은 나랑 등교시간이 비슷해서 주방에서 자주 마주쳤다. 짧은 영어로 몇 마디 나누면서 조금 안면을 익혔다. 지난 주에는 내가 멘붕 상태라 말을 많이 걸지 못했는데 이번 주에는 일부러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아침식사 재료나 도시락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단어를 몇 개만 나열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기숙사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각자 식재료를 사와서 주방에서 해 먹는다. 대형 냉장고의 냉장실과 냉동실에 각 방별로 구역이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 식재료를 넣어두고 요리를 해 먹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솥, 후라이팬, 식기류 등이 있고 인덕션과 전자렌지, 오븐까지 갖추어져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다. 이곳은 물가가 높기 때문에 점심을 매번 사먹는 것은 부담스럽다. 나도 샌드위치나 주먹밥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다니고 있다.
주말이라 느긋하게 방 청소를 하고 내친 김에 분리수거도 했다. 기숙사에서는 공용 공간인 주방과 거실, 화장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우스키퍼가 청소를 해준다. 그 외에 각자의 방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는 학생들의 몫이다. 분리수거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한국학생들에게 물어보니까 처음 왔을 때는 요일을 정해서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사이 학생이 몇 명 바뀌면서 그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쓰레기가 넘치면 누군가 못 참겠는 사람이 치우는 상황이란다. 저번에는 한국 학생들이 분리수거를 하고 있길래 얼른 가서 함께 치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내려가니까 분리수거장이 있다. 쓰레기 봉투들이 거기에 비치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알아서 가져다 사용한단다.
집이 조용한 것을 보니 주말이라 모든 학생들이 놀러나가고 없는 것 같다. 치울 쓰레기의 양이 혼자 감당할만해서 봉투에 쓸어담아 내려갔다. 쓰레기를 버리고 올라오면서 기숙사 탐방을 했다. 모두의 공용 공간이라는 2층의 커뮤니티룸과 5층의 휘트니스룸에 가 보았다. 2층의 커뮤니티룸은 넓직하고 야외 공간도 있어서 좋아보였다. 나중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커뮤티티룸에서 진행한다는 학생들 모임에도 참여해보고 싶다. 5층의 휘트니스룸은 시설이 별로다. 운동기구도 별로 없고 있는 것도 낡아보인다. 바로 인근에 공원과 해변이 있는데 굳이 여기서 운동하고 싶지는 않다.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여유로운 주말을 보냈다. 아, 밀린 일기도 썼다. 일기를 쓰다보니 지난 주에 비해 안정적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지난 주 보다 나은 이번 주, 이번 주 보다 나은 다음 주가 될 것이다. 다음 주에는 귀가 조금 더 트였으면 좋겠다. 일단 다음 주의 목표는 교사의 말을 20% 정도 문장으로 알아듣기로 정하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