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6편
'밤부'에서 아침을 먹고 8시경 출발한다. 더 일찍 서둘러 출발한 사람들도 있고 더 느긋하게 아침을 느지막이 먹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딱 중간쯤이다. 아마도 나보다 더 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곧 나를 앞질러 갈 것이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천천히 갈 테니까. 원래 산을 잘 타지도 못하고 평지에서의 걸음도 느림보라서 그러하다. 하지만 꾸준히 가는 것은 자신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딱 거북이라고 보면 된다.
어마무시한 짐을 메고 가는 포터들. 포터들은 정말 고생이 많다. 물론 이 일이 저들의 생업이다.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짐을 맡기지 않으면 밥줄이 끊긴다고 하고, 또 여기서 버는 일당이 다른 어떤 일보다 돈벌이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저들이 저렇게 큰 짐을 메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쓰럽다. 아! 만약 가이드나 포터에게 밥을 사주고자 한다면 트레킹 중간에 사주지 말고 차라리 나중에 현금팁을 더 주는 것이 낫다고 한다. 왜냐하면 롯지들에서 트레킹 하는 사람들과 저들에게 받는 가격이 다르단다. 만약 트레커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밥을 사주면 비싼 물가로 받는다. 차라리 나중에 현금팁을 따로 챙겨주면 훨씬 저들에게 유용하다. 다만 그것도 약간의 정도를 하는 조절이 필요하다. 한국사람들이 인정이 많아서 간혹 과하게 팁을 주곤 하는데 이 나라의 물가를 감안하여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올 사람들이나 저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어제 본 그런 숲길이 이어진다. 이 숲은 영화 '아바타'의 숲 모델이 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영화 '아바타'의 모델이 된 곳이라고 하는 장소가 무척 많더구먼. 어쨌든 여기도 그중 하나란다. 근데 내 눈에는 그다지 영화 '아바타'의 숲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습도가 높아서 이끼류가 많은 숲으로 보인다. 심미안이 부족해서 그런가?
또다시 계곡을 지난다. 그래도 저 아래쪽 계곡보다는 높은 지대이다. 그리고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다리를 건넌다. 만약 여름에 여기를 지난다면 이 다리는 떠내려가 없을 것이고 대신 물속을 걸어서 건너가야 한단다. 그래서 여름에 올 때에는 잘 마르는 옷도 필요하고 양말을 여러 켤레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름에 이곳을 지난다면 저 물속을 건너고 나서 거머리가 붙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붙어있으면 그냥 잡아당기면 안 되고 알코올이나 소금물을 부어서 떼어내야 한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여름에는 이곳에 오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만약 다음에 또 온다면 아름다운 봄이나 가을에 올 것이다. 그런데,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도반'에서 잠시 쉬어간다. 오르락내리락, 그러다가 산의 능선을 지난다. 숨은 계속 가빠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갈 만하다. '밤부'에서부터는 고산증세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마안'이 계속해서 나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있다. 올라올 때 얻은 '다이아막스'를 '촘롱'을 지난 후 반알씩 쪼개서 먹고 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증세가 없다. 가끔 머리가 띵할 때가 있지만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예전에 페루에서 잉카트레킹을 할 때에도 해발 4000미터를 넘을 때에도 괜찮았다. 난 아무래도 고산체질인가 보다.
갑자기 새떼들이 지나간다. 겨울이라 아래로 이동하는 중이다. 겨울은 추우니까 고도가 낮은 곳으로 피해 있다가 날씨가 풀리면 다시 올라간단다. 그런데 새들에게도 고산증세가 있을까? 새들은 이미 높은 곳을 날아다니니까 고산증세는 없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멀리 폭포 비스므레한 것이 보이고 그 아래에 물 웅덩이도 보이는데 물 색깔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대부분이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들이라서 그렇단다. 만년설이 녹고 바위틈을 흐르면서 여러 물질들이 녹아서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알프스에서도 비슷한 물 색깔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도 만년설이 녹은 물이었다. 그런데 만년설은 정말 만년동안 얼었던 건가? 만년은 어느 정도 시간이지? 인간이 100년을 산다고 치면 100년의 10배는 1000년, 1000년의 10배가 10000년... 아... 머리가 아프다. 고산증세인가?
엉뚱한 생각에 휘청휘청, 아직도 울창한 밀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끼류가 나무를 점령하고 있어서 모양이 모두 기괴하게 느껴진다.
저기 좀 멀지만 자세히 보면 절벽에 튀어나온 곳에 매달린 무언가가 보인다. 거기에 석청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채취하고 남아 있는 잔해란다. 석벌들이 부지런히 꿀을 모아놓은 벌집과 꿀들. 여기 석청이 꽤 유명해서 석 청꾼들이 저런 곳에 목숨을 걸고 올라가서 채취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전에 무슨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다. 그때 배경은 중국이었다. 저런 곳에 올라가는 것은 정말 목숨 거는 거다.
석청을 채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과 자기 몸뚱이만한 짐을 지어 나르는 짐꾼들. 모두 살기 위해 자신의 몸뚱이를,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뚱이로, 목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기 위해 무엇을 내놓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나? 갑자기 삶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