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과 오르막

안나푸르나 트레킹 5편

by 바람

'촘롱'에서 히말라야 쪽을 바라보면 왼쪽의 구름 속에 보이는 산은 '안나푸르나'이고 오른쪽의 뾰족한 봉우리는 '마차푸차레'이다. 웅장한 두 봉우리를 마주할 수 있는 ''촘롱'은 삼거리이면서 히말라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바라보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듬직한 산 봉우리의 조화로움을 감상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야말로 산멍이 가능한 곳이다. 멋진 풍경을 담아보려고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는데 역시 눈에 보이는 것만큼 담아내지는 못하는 사진의 한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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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느껴지는 촘롱마을

'촘롱'의 마을길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간다.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간다. 멀리서 보였던 계단식 밭들을 이제는 옆에 두고 지나간다. 지금이 1월인데도 여기는 유채꽃도 많이 피어있고 밭도 푸릇푸릇한 곳이 많다. 역시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아래쪽이라 그런지 낮에는 이렇게 봄풍경이 느껴진다. 하지만 고도를 높이고 밤이 되면 겨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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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온만큼 올라가야 하는 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와서 얼마나 많이 내려왔는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어마어마하게 내려왔다. 결국은 계곡물이 흐르는 아래까지 내려와 물길을 건넌다. 아...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안에게 물어보니 이런 식으로 오르락 내리락이 좀 있는데 여기가 제일 심한다고 한다. 너무해! 결국 그 말은 아까 힘들게 올라온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높게,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흐엉....


계곡 아래에서는 돌 깨는 작업이 한창이다.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돌을 깨는 일을 아이들이 주로 하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강한 햇살 아래에서 땀을 흘리면서 그 작은 손들로 돌을 깨고 있다. 간혹 있는 이런 공사는 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좋은 일거리가 된단다. 생활 여건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먹먹해진다.




사진 228.jpg 닭과 신발

계곡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다.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누군가의 집. 거기에 닭 한 마리. 그런데 그 옆에 놓인 등산화 한 짝. 문득, 등산화 주인이 닭이 되었나?...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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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라가는 길

그리고 오르막길에서 만난 나무 요정(?)이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반겨준다. 또 망상. 다시 또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촘롱 마을이 보이고 아까 내려온 계단들이 야속하게 보인다. 여기랑 저기랑 다리를 놓으면 안 될까요? 촘롱에서부터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까지는 외길이기 때문에 내려올 때도 여길 지나야 한다. 즉, 이 오름과 내림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이지. 내가 내려올 때쯤에는 다리가 놓이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또 해본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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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강아지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에는 당나귀가 산다. 당나귀는 이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고 내린다. 당나귀는 생각한다. '나는 왜 여기서 살게 되었을까? 평지에 사는 당나귀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면 저 윗집의 강아지는? 쟤는 아무것도 안 해도 사랑받으니 얼마나 좋을까? 휴우... 나는 내일 또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와야 할까?' 갑자기 당나귀의 눈시울이 축축해진다.

당나귀의 윗집에 사는 강아지가 생각한다. '당나귀는 좋겠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는데 쟤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저 아래 평지에도 내려갈 수 있잖아. 아, 나도 평지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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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사람

강아지의 옆에서 모이통을 쪼고 있던 닭들이 생각한다. '아, 오늘은 무사히 넘겼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까? 매일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게 되어야 하는 닭으로 태어난 것이 한스럽구나. 저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구나. 저렇게 자유롭게 죽을 걱정 안 하고 다니니...'

숨을 헐떡대면서 힘들게 올라오던 한 사람이 말했다. "헥헥... 다시 올라올 길을 왜 내려갔던 걸까? 아, 한 치 앞을 못 보는 어리석은 인간은 정말 닭대가리보다도 못하는구나."

그러자 하늘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신은 강아지와 당나귀를 바꾸어 주고, 인간과 닭을 바꾸어 주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잔혹 동화 끝!




사진 239.jpg 트레킹 길목의 롯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이런 식당 겸 숙박시설이 많이 있다. 보통 롯지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밥도 먹고 해가 지면 숙소도 된다. 다만 롯지들이 많이 있는 마을도 있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롯지도 있다. 그리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 특히 고도를 올리는 난이도 등을 감안하여 가이드가 적당히 가늠을 하면서 리드한다. 성수기에는 롯지가 다 차서 잠잘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다음 롯지가 있는 장소까지 더 걸어야 할 수도 있단다.

아, 그리고 길가에 똥이 많으므로 조심해서 디뎌야 한다. 마을 부근일수록 그 빈도가 더하다. 어떤 구간은 발을 디딜 틈이 별로 없다. 마을에서 기르는 가축들과, 때로는 사람들의 분비물들이다. 좀 난감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여기의 살아가는 방식이려니 하고 걷는 사람이 조심해서 걸어야지.




사진 271.jpg 밀림 같은 길

다시 두어 시간 더 올라가니 갑자기 이끼가 많이 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지난다. 전에 '페루'에서 '잉카트레킹'을 할 때도 아주 건조하고 황량한 곳을 가다가 갑자기 이런 습한 지대를 만난 적이 있다. 산이 높고 깊으면 비구름이나 땅에서 올라온 습기가 산을 넘지 못하고 그 지역에 정체되어 이런 지대를 이루게 된다고 들었다. 여기도 그러한 현상이 있단다. 정말 갑자기 밀림에 온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자꾸 '페루'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그때도 '마추픽추'까지 올라가는 '잉카트레킹'을 했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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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원숭이

앗. 원숭이다. 히말라야원숭이란다. 마안의 말에 의하면 직접,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지나가던 트레커들도 멈추어서 한참 동안 원숭이 구경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이런 구경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덕분에 원숭이가 출몰한 이곳 길목이 잠시 정체구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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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와 내리막길

멀리 마차푸차레가 제법 가까이 다가왔다. 어? 산이 어떻게 다가오지? 내가 다가간 것이지. 다시 내리막계단이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이런 히말라야 산길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눈은 저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지만 두 발은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 길을 걸어야 한다. 다만 인생길은 한 번만 지나는 길이다. 다시 돌아올 수는 없지. 앞에 어떤 것이 펼쳐질지 모르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오르막도 만나고 내리막도 만나고 원숭이도 만나고 당나귀도 만나고...


오늘 저녁은 '밤부'에서 잔다. '밤부'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방이 있다. 단체로 온 팀들이 많으면 방이 없을 수도 있다는데 다행히 내가 묵을 방은 있었다. 그런데 여기 모두 한국사람들이다. 단체로 온 팀이란다. 갑자기 설악산 중청대피소에 와 있는 줄 알았다. 1월에는 한국사람들이 제일 많고 외국인들은 별로 안 오는 계절이란다. 그래서 마안이 안타까워했다. 이 지역은 꽃피는 봄에 오면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한다고 한다. 아까 오면서 '이 나무는 봄에 흰꽃을 피우고 이 나무는 붉은 꽃을 피우고... ' 설명하면서 봄이 제일 좋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도 좋단다. 가을에는 논밭들이 아름답고 나무에 열매들도 예쁘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랴, 한국의 직장인들이 봄이나 가을에 이곳에 오기는 쉽지 않은 것을...

내 방에 짐을 풀고 공동식당에 나와 저녁을 먹는데 한국의 교회에서 단체로 온 분들을 만났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로 다양하게 구성된 단체이다. 막내인 초등학생에게 이곳까지 온 것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였지만 막상 당사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별 반응이 없다. 아, 요즘 아이들은 무서워...

밥을 먹고 잠깐 밖에 나왔는데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안타깝다. 대신 내 눈에, 내 마음에 가득 담아야지. 별들이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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