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김치찌개

안나푸르나 트레킹 4편

by 바람

트레킹 둘째 날 아침 8시 30분. '지누난다'를 뒤로 하고 출발한다. 그런데 숙소에서 한 발을 내딛자마자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정말 징허게 올라간다. 해발 1780미터인 '지누난다'에서 출발해서 해발 2170미터인 '촘롱'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해발 390미터를 더 올라가는 거니까 아주 많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체감은 다르겠지만 해발고도만 놓고 보면 보통의 동네 뒷산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해발 2000미터를 넘는다는 것은 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남한만 놓고 보면 해발 2000미터를 넘는 산이 없다. 참고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은 1950미터이다. 아직 고산증세가 나타날 타이밍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없는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 해발 2000미터를 넘어가기 위해 헉헉대며 올라간다.




사진 173.jpg 소원탑

오르막길에는 소원을 비는 탑도 있고 작은 쉼터도 있다. 쉼터에서는 차도 시켜 마실 수 있다. 차를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쉬고 싶어서 잠시 멈추어 차를 한 잔 시켜놓고 숨을 돌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천천히 올라가자. 천천히...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사진 189.jpg 히말라야의 계곡

계곡이 저 멀리 아래에 보이는 걸 보니 꽤 올라온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도 저 멀리 올라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다. 올라온 길보다 올라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하지만 경치를 보라. 힘든 것들이 싸악 물러난다. 아니 완전히 물러난다고 할 수는 없겠다. 힘든 건 힘든 거니까. 후후.




사진 193.jpg 왼쪽 설산은 안나푸르나, 오른쪽 설산은 마차푸차레

저 멀리 '마차푸차레'가 보인다. '마차푸차레'는 '안나푸르나'의 맞은편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다. '안나푸르나'는 사람이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마차푸차레' 정상에는 아직까지 올라가 본 사람이 없단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산. 어쩐지 멋지다.




사진 196.jpg 스쳐 지나가는 트레커들

올라가다 지나치는 작은 마을들... 그리고 수많은 트레커들... 길가에 앉아서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지만 아무도 없는 길에 앉아있는 것도 좋다.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시간, 그런 공간. 히말라야는 생각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마안'의 이야기로는 '안나푸르나'까지 갈 수 있는 빠른 길을 뚫을 수도 있단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연을 너무 많이 훼손하게 되고 길을 걷는 느낌도 많이 다를 것이란다. 그리고 계곡을 끼고 가는 거라서 위험하기도 하단다. 아마도 지금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만났던 계곡 사이로 길을 만들어 쭈욱 들어가서 갑자기 오르막을 오르는 방식이겠지?

그러고 보니 '페루'의 '마추픽추'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마추픽추' 가는 방법은 2가지이다. 오래된 잉카의 길을 따라 3박 4일 혹은 1박 2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걸어가는 방법이 있고,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 바로 아래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아마도 비슷한 방식일 듯하다. 오래된 트레킹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걸어가는 방법과 계곡을 끼고 '안나푸르나' 바로 아래까지 가서 한 번에 오르는 방법. 이 두 가지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될까? 하지만 그렇게 오르면 그건 트레킹이 아니라 관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길이 생기면 지금의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들도 타격을 입지 않을까?




사진 207.jpg 촘롱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촘롱'에 도착했다. 여기는 오늘 점심만 먹고 지나갈 것이지만 내려올 때는 1박을 할 장소이다. '촘롱'부터는 외길이라서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내려와야 한다.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올 때는 여기를 기점으로 해서 아까 올라온 '지누난다' 방향이 아닌 그 반대편 길인 '고레파니', '푼힐' 방향으로 갈 것이다. 즉, '촘롱'은 삼거리인 것이다. 촘롱 삼거리... 발음이 천안 삼거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역할도 비슷한가? 삼거리라는 것이 모이고 흩어지는 기점 같은 것이라서 비슷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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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맛있는 참치김치찌게

워낙 한국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여기저기 한국글씨들이 보인다. 게다가 여기 메뉴에 김치찌개가 있다. 사실 나는 해외여행을 해도 한식을 그다지 챙겨 먹지 않는다. 워낙 빵을 좋아하고 어지간한 현지음식에 적응을 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히말라야 산속에서 한국말로 친절하게 김치찌개라고 쓰여 있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시켜 보았다. 내심 크게 기대하지 않고 먹어보았는데 뜻밖에 너무 맛있다. 시장이 반찬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김치도 적당히 익었고 오래 끓인 맛이 난다. 게다가 칼칼하니 한국의 매운맛을 잘 살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다. 뜻밖에 장소에서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어서 너무 반갑고 행복하다.




사진 198.jpg 히말라야의 새

오면서 새들을 많이 보았는데, 겨울이라 추위를 피해서 고산 지대에서 내려온 새들이란다. 커다란 새는 독수리이고 그 밖에도 많은 새들이 산단다. 엄청 커다란 새가 높이 떠서 우아하게 날아올라 인간계를 내려다보며 지나간다. 흘깃 내려보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페루'의 '콜카' 계곡에서 보았던 '콘도르'가 생각난다. 여기 히말라야의 독수리도 멋지지만 나는 역시 '콘도르'가 최고인 것 같다. 히말라야 독수리, 의문의 일패!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취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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