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밭 사이, 가느다란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2편

by 바람

우여곡절 끝에 포카라의 '놀이터(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놀이터'는 숙소와 식당을 겸하는 곳인데 여기서 트레킹 준비도 도와준다. 이곳에 한국에서부터 미리 숙박과 ABC 트레킹을 예약해두었다. 도착해서 우선 포터겸 가이드를 소개받아 인사를 나누고 전체 코스를 의논한 후 다음날 트레킹을 출발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겨울침낭을 가져갔지만 그것으로는 추울 것이라고 해서 좀더 두툼한 것으로 빌렸다. 가져간 짐 중에서 트레킹 도중에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숙소에 맡겼다. 이제 정말 히말라야로 걸어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안나푸르나길.jpg 바람의 ABC 트레킹 코스

드디어 트레킹 첫날이다. 트레킹의 시작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김체'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김체'까지는 합승지프를 타고 이동하였다. 참고로, 보통 예전에 트레킹을 시작하던 '나야풀'부터 '김체'까지 비포장도로가 뚫려서 트레킹 하기에 좋지 않아졌다고 한다. 물론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들이 있어서 중간중간 비포장도로를 피할 수는 있지만 건기에는 역시 비포장도로를 지나는 차들 때문에 먼지를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한단다. '김체'에서 시작해서 '지누난다'를 거쳐 '촘롱'으로 올라간다. '촘롱'부터는 외길이다.




사진 109.jpg 트레킹의 시작을 상징하는 다리와 짐을 나르는 포터들

이 다리를 건너 서서히 히말라야 산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대체로 한 장소에서 건너편 장소로의 이동을 의미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더 깊은 뜻을 가질 때도 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뜻을 가질 때도 있고, 결단을 내려 선택을 한다는 뜻을 가질 때도 있다. 때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는 뜻을 가질 때도 있다. 으잉? 왜 하필 그런 불길한 생각을... 돌탑이라도 있다면 돌멩이 하나 올리며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싶다.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넌다.




사진 114.jpg 계단식 밭과 작은 마을들

트레킹의 초반과 후반에는 엄청나게 많은 계단식 논들을 계속 보게 된다. 놀랍다. 히말라야 산에 계단식 논이라니.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밭이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돌멩이를 하나씩 쌓아서 이런 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계단식 밭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인생이란게 저런 것 아닐까 싶다. 하나씩 하나씩 축대를 쌓고 일구고 그렇게 돌탑을 쌓듯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중간에 건너뛰고 싶다고 해서 건너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내뜻과 상관없이 주어져 있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쌓인 것들이 내 인생이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밭을 차곡차곡 일구면서 살아왔을까? 마흔하고도 다섯해를 남짓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밭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사진 124.jpg 구비구비 이어진 실낱같은 길들

조금은 황량해 보이기도 하지만 간간히 마을들이 보이는 그런 길이 이어진다. 아직은 사람의 채취가 느껴지는 그런 길, 가느다란 길들이 끝없이 구비져 집과 집,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준다. 길은 참 좋은 것이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니까 말이다.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걸었을 것이다. 이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어갔을까?




사진 117.jpg 히말라야의 길과 잠시 쉬는 사람들

세계의 수많은 트레커들이 이곳을 찾는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왜 산에 가냐고, 왜 그렇게 힘든 곳에 가냐고. 이번 여행을 아는 수많은 지인들의 이러한 물음에 나는 뭐라고 답했지? 다른 트레커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대답도 "그냥... 좋아서... 걷는게 좋고, 산이 좋아서.."였다. 물론 그 대답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 하지만 그건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걷는게 뭐가 좋다고, 이렇게 힘든데...




사진 118.jpg 갑자기 빼꼼히 얼굴을 디미는 설산

잡다한 생각들을 하면서 걸어가다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설산! 내가 지금 설악산도 아니고 지리산도 아닌, 히말라야의 어느 곳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저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중이다. 세상을 등지고... 잠시 짜릿한 기분이 든다. 정말 8일동안 잘 걸어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히말라야를, 안나푸르나를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흥분이 더 크다.




사진 125.jpg 점심을 먹은 롯지겸 식당

숨호흡을 크게 하고 걷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중간중간에 롯지들이 있어서 트레커들이 편리하게 식사도 하고 잠도 잘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롯지들이 이렇게 예쁘다. 이곳 기후가 한국보다 따뜻하다는 게 신기하다. 위도로는 우리나라보다 아래쪽이니까 낮에는 더워서 초가을 옷차림이 적절하다. 하지만 밤에는 산속이라서 매우 춥기 때문에 겨울옷도 필요하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날씨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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