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아웃 2 리뷰, 폭풍 속을 방황하는 삶이어도 괜찮아.
길을 걷다 우연히 극장에 나붙은 제목에 설렌다.
INSIDEOUT 2 NOW SCREENING
픽사가 처음 인사이드아웃을 선보였던 그 해, 나는 아직 한국에 있었다. 그때도 여전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라는 것이 도통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지독히도 헤매고 있었다. 휴학 없이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길 바라던 엄마의 권유를 뒤로한 채 나는 휴식을 시작했다. 어른이 되는 게 무서웠고, 아무것도 아닌 어른이 되는 것은 더욱 두려웠다. 끝없는 유예 속에 숨어 자비 없는 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대로 시간 속에 박제되어 나아가지도, 뒤쳐지지도 않을 수 있다면.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 픽사는 두 살을 더 먹고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를 데리고 다시 우리에게 왔다. 8년이라는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 나는 지금 생각지도 않았던 먼 나라에 있다. 먼 곳에서도 자꾸만 다른 모양으로 고달프게 조여 오는 삶을 이고 지고 산다. 휴학을 하던 그날의 고민들은 잊을만하면 여전히 눈치 없이 떠들어대는 친구처럼 치근덕댄다. 나는 여전히 허둥댄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나는 잘 살고 있나. 이렇게 생을 보내며 나는 결국 어디에 닿을까. 오지 않은 날들의 불안에 짓눌려 연거푸 한숨을 쉬고, 하루하루 어린 날의 헛되고 귀여운 꿈들을 돌아보며 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 삶에 기쁨이 들어설 구석이 줄어드는 건가 봐."
기쁨이 들어설 구석이 마땅치 않아서, 억지로 찾지 않으면 기쁨도 나를 찾지 않을까 봐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종종 디즈니 영화를 찾고 픽사의 새 소식을 기다린다. 암전 된 영화관에 앉는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에 파묻힌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라일리의 이야기를 뚫어져라 본다.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감정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예고 없이 찾아든 공사팀은 통제센터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새로운 입주자들이 온다고 대뜸 통보한다. 새 감정들의 우두머리 격인 불안은 입주와 동시에 마음대로 라일리의 마음을 헤집고 다니며 혼란과 분노를 증폭시키고 공포를 극대화한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비롯되는 유대관계에 나를 고정시킬 수 없다는 불안. 불안은 통제불능 상태로 라일리를 이끌어 간다. 과거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굴곡 없이 쌓아 올린 자아의 균열을 맛본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는 충분한가.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나를 좌절시킬 것인가. 나는 나를 고립시킬 것인가. 내가 아닌 껍데기인 채로 군중의 틈에 섞여 살 것인가.
언젠가 똑 떨어지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인생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 속에 단순히 부피와 질량으로만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산다. 자아라는 형이상학적 존재의 속성을 본인에게 납득시키고자 무수히도 스스로를 부수고 다시 세운다.
라일리는 불안의 최고조 속에서 치른 하키 경기 중 2분 간의 짧은 타임 아웃을 맞이한다. 터질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지나온 자신의 시간을 돌이킨다. 무엇 하나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던 순간들을 더듬는다. 라일리는 안다. 그 모든 순간이 결국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미 벌어진 일을 없는 셈 칠 수 없다는 걸 알 때, 조이(Joy)는 엎지른 물을 주워 담는 노력을 멈춘다. 이미 라일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붉고 뾰족한 자아의 일부를 가만히 끌어안는다.
깔깔대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눈물을 훔친다. 주책이고 청승이지만 어쩔 수 없다. 눈물만큼 솔직한 것은 없다. 울어야 했던 순간 운 것이다.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손 쓸 도리가 없어진 순간 가만히 그 불안을 끌어안고 괜찮다고 말할 수 없어서 남의 것을 보며 대신 위로받는다.
영화관을 나서며 친구들에게 주책맞은 내 눈물 소식을 전하며 너스레를 떤다.
"많이들 울었다더라."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눈물을 훔친 어른이 나뿐이 아니라니. 안도감이 들면서도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다 우리는 사춘기의 소용돌이를 여전히 내 것처럼 아프게 느끼는지. 누구 하나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는 서로를 보듬을 여유도 없이 이리도 바쁘게 흘러왔는지. 말하지 못한 상처를 붙들고 아이들 사이에 묻혀 영화관을 찾는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손길에 위로를 받는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어른이 된 우리는 생의 기쁨을 소진해 가면서 여전히 사춘기의 변두리에서 산다. 이제는 필요할 때 달려가 숨을 친구도, 절대적인 조언을 주는 부모의, 선생의 몫도 사그라진 지대에 1인분 인생의 지분을 홀로 떠안고 서서. 가장 어리고 여린 나를 꺼내 놓고 핀잔도, 평가도 하지 않을 아동용 애니메이션 상영관 한 구석에 앉아 눈물을 훔치며.
전 편에 비해 만듦새가 촘촘하진 않다. 사춘기를 대표하는 감정 불안(Anxiety)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 준비되지 않은 미래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불안, 내가 믿을만한 인간 인가 하는 해소되지 않는 걱정--의 대책 없는 활약에 가려 함께 입주한 Envy, Embarassment, Ennui, Nostalgia 캐릭터들은 방황한다. 전편의 상상 속 친구 빙봉같이 인생의 한 시절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의 부재도 아쉽다.
밀레니얼과 Z세대의 추억을 자극할 2D와 3D 적절히 조합한 그래픽은 보는 재미가 있다. 납작한 평면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3D에 적응하며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가상현실의 시대를 사는 어른들에게 향수를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