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뜨거운 가슴 어디에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김광석 '서른 즈음에'

by 작은노래


대학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면 가슴이 시큰하다. 만나 이야기할 때는 한 마디 한 마디 나누는 이야기가 신이 나고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른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친구 얼굴을 눈 가늘게 뜨고 보다가, 웃다가, 손뼉을 치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가슴에 손을 대며 공감을 표시하다가…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만남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일어선다.


그러나 두어 명씩 짝지어 헤어지거나 나 혼자 남게 될 때 밀려드는 감정은 서글픔이라 할 수도 없고, 아쉬움이라 할 수도, 설움이라 할 수도, 안타까움이라 할 수도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다. 성석제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서글픔, 서러움, 안타까움, 아쉬움, 허전함 등을 '버무려 한 입 먹을 때 혀에 배어드는 그런 느낌'? 왜일까? 왜일까? 나는 오늘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가 그 물음에 어슴프레 대답을 던지고 있었다.


졸업 직후 나와 친구들은 그렇게 헤어지기가 아쉬워 '야인문학회'라는 걸 만들었다. 우리는 '야인'이란 말을 제도권 교육 밖에서 공부하는 사람, 또는 세속의 명리를 떠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썼던 것 같다. 야인문학회 발기문까지 거창하게 써서 서명까지 했던 사람은 다섯이었다. 그때 국문학과를 졸업한 사람은 30명쯤이었다.

우리는 한 주에 한 번 정도 모여 소설을 읽기도 하고, 문학사를 훑어가며 토론을 벌였다. 선배 도움을 받아 한문 강독을 하기도 했다. 신수동 K의 집 아파트에서 우리는 시를 읽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삶을 고민했다. K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숱한 음악 중 '1812년'의 장중한 선율이 지금도 기억난다.


한 주에 한 번 정도이던 모임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느슨해져갔고 하나 둘 결혼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자기 직업에 몰두하느라 뿔뿔이 흩어졌다. 어느 틈에 야인문학회는 무명무실한 존재가 되버리고 말았다.


친구들과 계속 만나기 위해 다시 모임을 정비했다. 회비를 내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는 모임이었다. 야인문학회 회원(?)뿐 아니라 조금 가깝게 지냈다고 여겨진 열 두엇 정도가 그 모임을 꾸려갔다. 한 달에 한 번, 그러다가 두 달에 한 번, 석 달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이제 친구들은 1년에 한 번쯤 모인다.

처음엔 같이 모이면서도 성향 차이가 분명한 친구들과는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비판 의식의 강도가 그 차이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20대 초반을 함께 했다는 공감대가 우리를 이어주었다. 내가 해직되었을 때 친구들은 몇 달 동안 후원금(?)을 모아주기도 했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눈시울이 뜨겁고, 미안하고, 내가 정말 빚을 많이 지고 산 사람이구나 느낀다)


친구들은 다양한 삶을 살았다. 교사가 가장 많고, 전업주부, 프리랜서, 학자, 부유한 친구도 많지만 평범하게 생활을 꾸려 가는 친구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뒤 슬픔을 느낀다. 그건 사라져가는 젊음의 빛깔 때문이던가. 누구나 투사였던 20대 초반 그 시절이 영영 돌아오지 않기 때문인가. 이제 찬란한 젊음이나 미래가 아니라, 스러져가는 노년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인가?


학교식당에서 철야농성을 할 때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나약함을 질타하던 J. 졸업 뒤 한동안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던 M과 H. 지성적이며 학구적이었던 K, 사회운동가로 살고자했던 W, 경찰에게 끌려가던 선배를 따라가며 울음을 터뜨리던 N….

그러나 우리는 생활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기르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늘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았다.


아무도 잘못 사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어긋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삶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없다.


그러나…. 나는 또 역접 접속어를 반복한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가 그 눈빛과 눈물은…. 함께 문학과 인생을 논하며 거창한 담론에 빠져들던 그 젊은 가슴들은….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시도하다가 조금씩 지치고 풀죽어가는 친구들은….

이 땅을 떠나 먼 나라에서 자기 삶을 가꾸는 친구들은 또 어찌 살고 있는 것인가?

어쩌다 우리는 많은 의무와 책임을 앞에 두고 나이를 먹어 가는 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며 그 야릇한 슬픔은 바로 나를 향한 것임을 알았다. 멀어져가는 내 젊은 날, 사라져가는 그 시절의 뜨거움 때문임을 알았다. '다가오지 않은 날들의 문을 경외감으로 조심 조심 연다.'라고 썼던 스무 살 일기장이 이제는 '지난 날들의 길목 길목을 다시 걸어본다'는 글귀로 바뀌고 만 때문임을 알았다.

나는 이제 다가오는 날들을 그저 비워두지 않으려고 힘겨운 몸짓을 하지만, 그것은 젊은 날의 열정이나 호기심, 그 가슴 터질 것 같은 떨림과는 다른 빛깔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지하철 한 구석에 서 있던 내 눈에 번져 가는 물기의 이유였던가보다.


* 사족-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떠오른 것 하나. 서른 즈음에 그런 노래를 불렀다니 김광석은 참 조로(?)했구나. 난 서른 즈음 인생의 전성기였는데. .


<서른 즈음에> 김광석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8p9QekWx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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