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멀었지라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김민기의 봉우리

by 작은노래

적벽을 아시나요? 제갈량과 주유가 조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던 양쯔강의 적벽보다 더 아름답고 기묘하다는 화순의 적벽을 아시나요?

가슴 한 구석에 가야할 어떤 곳, 이루어야 할 어떤 일, 만나야할 누군가를 품고 계신가요?

산다는 것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문득 혼란스러우실 때가 있나요? 내 삶의 지향이 어딘지 물어볼 때가 있나요? 살았고, 일했고, 애썼지만 이루지 못한 수많은 것들에 문득 공허해질 때는 없었나요?

이런 물음들이 소용돌이칠 때 나는 김민기의 ‘봉우리’를 들어요.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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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다. 전라남도 일대의 절을 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단풍이 한창이던 11월 초. 어느 절인가 (송광사였던가) 절 입구로 가는 다리에 서서 단풍잎이 둥둥 떠가는 맑은 시냇물을 넋놓고 바라보았고, 화순 운주사에서는 말 못할 신비로움을 느꼈다. 절터 드문 드문 늘어선 불상과 집채만한 와불을 보며 미륵세상을 갈망했을 옛사람들의 자취가 느껴져 한없이 경건해졌었다. 장길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새벽이 오기 전에 거꾸로 누운 부처를 바로 세우면 미륵세상이 온다는 믿음을 가졌었대. 사람들은 힘을 모아 그 무거운 돌덩이를 돌렸지. 너무나 힘들었어. 고통스러웠지. 누군가 한 사람이 새벽닭이 우는 흉내를 낸 거야. 모두 힘이 빠져 쓰러졌지. 새벽이 왔다는 허탈감에... 아니라는 걸 알고도 사람들은 일어날 수 없었어. ...그래서 미륵세상은 오지 않았고, 그 부처는 이렇게 누워 있다는 거야."


그래 나 역시 역사 속에서 또 삶 속에서 늘 미완의 희망을 만났었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고난은 지금도 계속되는 거지. 대학 3학년생의 나는 와불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도 뭔가 가슴이 아팠었다.


어느 민박집 비슷한 숙소에서 평소 교수님들 앞에서 쑥스러워 말도 잘 못하던 내가 친일파 청산 문제를 이야기하며 격론을 벌였던 일도 생각난다. 구비문학을 전공하신 그 선생님은 과격할 수밖에 없는 제자들의 항변에 난감해 하시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조금은 뒤로 물리셨던 것 같다.


수학여행의 절정, 진수, 압권....은 적벽이었다. 화순 이서면의 적벽(그때는 이서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우리를 태운 버스가 적벽 앞에 섰을 때 졸거나 잡담을 나누며 흥겨웠던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 이런 데가 있었나. 우리 사는 현실 속에.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롭고 빼어난 풍경이 있었나?

단풍이 한창이던 때였다. 크기를 잘 가늠할 수 없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 타는 단풍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붉은 단풍에 뒤덮인 적벽 아래 초록빛 강이 흘렀다. 정말 초록빛이었다. 그 강에 타는 단풍의 벽이 자기 그림자를 드리우고, 흰 오리떼가 유영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 그 맑음... 붉은 빛, 초록 빛, 흰 빛이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어우러져 있는 광경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난데없는 여대생들의 방문에 적벽강(동복강) 뱃사공 소년의 얼굴은 단풍빛 만큼이나 붉게 물들었다. 열다섯이나 열 여섯쯤 되었을까? 옷차림은 허름했지만,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도시의 어느 미소년보다도 잘 생겼던 것 같다. 도시 아이들이나 뭔가 좀 배웠다는 아이들 같은 야무짐은 없었으나 자연 상태의 순박함, 원시성이 인상적이었다. (학교에 다닐 시간인데 노를 젓는 것으로 보아, 머리 모양이나 표정 등으로 보아 학교를 그만 두었거나 못 갔을 것 같았다.)

배를 강 기슭에 대어 누나뻘인 대학생들을 태우고 노를 젓는 그 소년의 흥분된 몸짓... 내 친구나 선배들은 통속적인 기준에 따른다 해도 동화 속 공주같이 예뻤다. (이쁜 사람이 많았다고 해야겠지...) 만화 속 주인공처럼 긴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말고 있던 친구가 있는가 하면, 탤런트처럼 또렷한 이목구비에 엷게 화장까지 한 친구도 있었고, 도시적이며 세련된 취향을 유감없이 내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난 그때도 좀 촌스럽고, 아이 같았지만...) 이십 명이 넘는 서울의 여자 대학생들 틈에서 노를 젓던 그 소년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멀리서 보았을 때는 길도 없는 절벽이라고 생각했지만 강을 건너 보니, 좁고 가파른 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적벽의 산길을 올라 불상이 있는 암자를 둘러보고, 산 위에서 너른 논밭과 푸른 강을 내려다 보았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곳, 그 빼어난 아름다움...


우리 여행을 안내하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곳이 물에 잠기게 된다고. 댐 공사로 물에 잠길 거라고. 이런 곳을 물에 잠기게 한다구? 그건 말도 안된다고 다 아우성을 쳤지만 댐 공사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수몰지구가 될 그곳에서 떠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수학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적벽의 장관은 환각처럼 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꼭 한 번 다시 가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3년 뒤 나는 거짓말처럼 다시 적벽에 갔다. 동료들과 여행을 하던중 화순 가까운 어느 곳에서 쉬게 되었을 때였다. 서울로 오는 길이었지만 꼭 그날 서울에 갈 필요는 없었다. 화순이라는 이정표를 본 나는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느껴져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적벽에 가요."


가는 길을 잘 몰랐다. 수학여행 때는 관광버스 한 대로 돌아다녔으니 가는 길을 알 리 없었다. 그저 화순의 이서리라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교통편도, 가는 길도...나는 일행들을 부추겨 가며 화순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겨울이었다. 왜 그렇게 추웠던지 로션을 바른 얼굴이 막 틀 정도였다. 화순 언저리에서 내린 나와 동료들은 이서리라는 팻말을 따라 그저 걸었다. 눈이 온 뒤였나보다. 눈밭에 빠지고, 매운 바람에 코가 얼고 발이 얼면서 적벽을 향해 갔다.

인적이 드문 들길에서 아저씨 한 사람을 만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아저씨, 적벽 멀었어요?"

"당 멀었지라. (아직 멀었지요)"

아. 그 말은 또 내게 화인처럼 박히고 말았다. 아직 멀었다. 나의 적벽이 아직 멀었다. 내가 가야할 적벽이 아직 멀었다. 그러나 가야할 곳이고 가고 말 곳이다.


논두렁을 걷고 살얼음 얼어 있는 냇물을 건너고, 산 모퉁이를 돌고 돌아 다시 찾은 겨울의 적벽은 또 달랐다. 강은 얼어 있었고, 뱃사공 소년도 배도 찾을 길 없었다. 타는 단풍으로 덮혀졌던 적벽 위에 '화순 군수 아무개'(왜 생각이 나지 않을까) 라고 새겨져 있는 것도 보였다. 마음을 설레게 했던 붉은 단풍, 초록 강, 푸른 하늘, 흰 오리떼... 물론 없었다. 그러나 언 강 위에 버티고 선 적벽의 위용. 나를 숨막히게 하는 의연함과 언뜻 비치는 서러움 같은 것은 그대로였다. 다행히도 적벽은 물에 잠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곧 물에 잠길 거라고 민박집 주인은 말했다. (정말 1년쯤 뒤부터 적벽은 물에 잠겨 25미터쯤 잠겨버렸다고 한다)


나는 적벽을 떠나며 또 오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올 때 강물에 몸을 숨긴 적벽을 보게 되리라 생각했다. 다시 만날 때면 흐르는 강물에, 추억처럼 잠겨 있는 적벽을 보게 되리라는 것.


적벽은 그 이후 내 삶의 상징이다. 김민기의 봉우리처럼.

삶에서 다시 가야할 그 무언가를 지닌다는 것. 다시 만나야 할 누군가를 마음에 둔다는 것. 이르러야 할 목적지를 갖는다는 것. 아직 나는 나의 적벽을 향해 간다.

당 멀었지라!


김민기 ‘봉우리’

https://www.youtube.com/watch?v=tuYB7E-EE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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