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째 자주 오는 손님이 또 오셨다. 반갑고 익숙한 마음에 안부인사가 툭 튀어나왔다.
"오서 오세요~요즘 날씨가 확 더워졌죠?."
"(멋쩍은 표정과 함께) 아아.. 네... 저... 아메리카노 한 잔... "
어색한 대답이 돌아왔다. 앗. 이게 아니었나? 순간 나도 뻘쭘해졌다. 인터넷에서 봤던 '단골 특징'에 관한 글이 떠오른다. 단골로 다니 던 가게의 사장님이 알아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가기 싫어진다는... 내 기준에서 ‘친절’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 뒤로 아는 척을 조금 자제하게 됐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손님도 계신다.
"사장님~ 저 오늘도 왔어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어제도 왔었는데."
이분은 아는척해주는 걸 좋아해 주시는 분이다. 그럴 땐 빨리 태세를 전환한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부담스러워할까 봐 모른 척 자제한 것뿐이었는데 그 손님이 이런 사정을 아실 리 없다.
극과 극의 반응 사이에서 처음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는데, ‘친절 농도’를 중간 정도로 맞춰놓고 단골 유형을 잘 파악해 뒀다. 모른 척하길 원하는 손님은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고, 주변을 더럽히지도 않는 데다 조용히 머물다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행동이나 태도가 심플하고 깔끔해서 나도 감정 소모 없이 음료만 정성 들여 준비하면 되니 나를 편하게 해주는 손님분들이다. 알아봐 주길 바라는 분들은 하루 종일 기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게임 npc 같은 나를 조금은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아무 교류도 없는 대화가 아닌 진짜 사람 대 사람으로 잠깐이라도 대화를 하고 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음료만 사고파는 것 같지만, 혼자 운영하는 동네 카페는 생각보다 정이 있고 온기가 있다. 오픈 초기, 허둥대는 나에게 천천히 만들어 주셔도 된다며 여유 있게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있어 카페 일이 손에 익을 수 있었고, 가끔 과자, 마카롱, 샐러드, 작은 꽃다발 등을 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꼭 '힘내라'라는 뜻으로 들려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적한 시간에는 마음 맞는 손님과 두런두런 고민과 걱정거리를 나누며 서로 마음을 토닥이기도 한다.
이전에 했던 소품샵은 지역 명소와 가까운 곳에 있어 분위기는 언제나 활기찼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지만 한 번 온 손님은 다음 계절에나 볼 수 있는 손님들이라 감정적인 교류는 거의 없었다. 지금보다 손님도 수입도 모두 많았지만 떠들썩하게 손님들이 가고 난 뒤 이상하게도 무인도에 떨어진 듯 가슴 한구석이 항상 공허하고 외로웠다. 지금은 수입은 적어도 꾸준히 같은 시간, 같은 메뉴로 오시는 분들이 있어 하루 루틴이 잡힌 듯 안정적이다. 근처 사셔서 집에서 입는 옷차림으로 후다닥 테이크아웃을 해가시는 손님, 점심시간 때면 우르르 오셔서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근처 직장인들,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사서 가시는 손님들까지. 익숙한 얼굴들로 사람 냄새나는 동네상권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장사에서 '돈'이 제일 중요할 수 있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이 불편하면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한다. 내 유리맨탈에 진상 고객만 가득한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었을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손님이 가볍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친절에 가끔은 다 놔버리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오늘만 살았던 내가 내일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 힘들어도 이런 맛에 카페를 하지.